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심미안
삶의 질이 높아져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치화할 수 없는 이 가치 있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선 도시의 본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대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그의 시선은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이 분 단위로 나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는 자리. 회의 하나를 마친 그는 시장실로 돌아오다 복도에서 마주친 일행에게 짧은 눈인사를 건넨다. 바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놓치지 않고 다음 일정과 만날 사람을 먼저 챙기는 눈빛에서 주어진 시간을 그 이상으로 살아내기 위해 순간에 몰입하는 이의 일면을 읽었다. 그 짧은 느낌은 인터뷰에서 보다 명확히 이어졌다. 시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어조는 신중했고, 화제를 옮길 때마다 적절한 예를 꺼내놓으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에디터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품고 있는 소탈한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는 그것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했으니 그가 이 대도시의 수장 자리를 맡은 지도 4년째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초부터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만큼 다방면에 귀를 열어두고 많은 것을 바꿔왔다. 그리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지난 임기 동안의 성과를 인정받고 더 큰 비전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성과는 꼭 서울시 부채 탕감이나 복지시설 확충처럼 숫자로그 결과가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포괄적인 비전,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당장 가시적 결과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정책을 통해 차근차근 진행해가는 중이다. 기본부터 다지겠다는 생각으로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개선할 것을 찾고 지적하는 통에 초기에는 워커홀릭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도 했다. 과거 경력이나 당선 이후의 행보나 여러 면에서 누가 봐도 남다른 시장이긴 하다.
2018년까지 임기를 생각할 때 지금은 전체 레이스에서 중반을 조금 넘어선 지점. 달려온 시간 동안 부침도 많았을텐데 그는 오히려 해결할 일이 많아 즐겁다고 말한다. “서울시는 1000만 시민이 살아가는 어마어마한 도시죠. 온갖 갈등과 시대적 과제가 중첩되어 있는데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 역시 쏠쏠합니다. 사실 어찌 보면 저는 시장이 될 사람이 전혀 아니었죠. 정치인도, 공무원도 아닌 저에게, 늘 한편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개척하려 한 시민운동가에게 서울시장을 맡긴 것을 시대적 트렌드를 이끌고 실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시대가 원하는 것, 제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 늘 성찰하려고 합니다.” 그 결론은 변화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서울시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어왔는데 지금이야말로 큰 전환을 꿈꿔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전환은 고도성장과 물량 중심, 하드웨어 중심 사회에서 사람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방향성을 달리하는 것이다. 곧 도시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내실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했거나 향후 개최할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행사는 서울에 대한 세계적 주목도뿐 아니라 서울 시민의 문화적 수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것을 방증한다. 그는 문득 집무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서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난 3년간 추진해온 일을 정리한 두꺼운 서류철 중 ‘아시아 패션 수도’라는 제목을 단 파일을 가리키며 ‘서울의 품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죠.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옮겨가고 있는데, 패션이나 예술 분야를 포함한 고급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성장을 독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공감이죠. 베이징 시장을 만났을 때, 돈을 얼마나 들이면 서울시향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더군요. 전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을 즐길 줄 아는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 가능한 일이니 문화는 시민의 공감 속에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박원순 시장이 소중한 가치를 두고 있는 정책들 역시 서울의 품격을 높여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2000년 역사·문화 자원을 보존하는 정책이 그중 하나로, 대표적 활동이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 또 여러 장르의 전용 공연장 건립과 공예문화박물관, 시네마테크 등 문화시설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물론 모든 일에 완벽한 동의를 얻긴 어렵다. 그의 말대로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도시 아닌가. 본질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당장 결과가 드러나거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일이라도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일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은 잠재 가능성이 큰, 우수한 도시라고. “서울을 재활용이 일반화된 도시, 생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또 지난 3년 동안 서울시의 에너지 자립도도 높여왔어요. ‘원전 하나 줄이기’라는 이름으로 원자력발전소 하나만큼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겠다는 정책이죠. 우리의 이런 환경 정책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가 이런 실험과 변화를 눈여겨본 걸까. 그는 얼마 전 세계 1200개 도시가 가입된 국제환경도시연합회 ‘이클레이’의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과제고, 도시 공동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질적 과제라는 점에서 박원순 시장이 맡은 역할은 크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 대도시와 비교할 때 그곳에는 있지만 서울에는 없는 것이 뭘까? 대도시의 풍경이 서로 비슷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타국에서 부러워한 몇몇 요소를 떠올려보면 서울살이의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그는 보행로, 자전거를 꼽은 데 이어 전기차를 언급하며 친환경 도시 서울을 그렸다. 현재 서울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서울역 7017 프로젝트’도 자동차 중심 도시를 벗어나자는 의도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일상. 그것이 곧 글로벌 도시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서울과 서울시민 그 자체가 도시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세계 어느 곳이든, 그곳이 ‘도시’라면 휑한 장소엔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쇼핑하고 머무르는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는, 바람직한 도시다. 그런 면에서 서울이 마이스(MICE) 산업 육성을 통해 세계 4위 국제회의 개최 도시로 선정된 것은 큰 성과다. “서울의 먹거리를 고민하다 답은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소득 비즈니스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게 바로 마이스 산업이죠. 현재 세계 오피니언 리더의 모임이 1년에 540개 정도 개최되고 있고, 곧 세계변호사대회를 유치할 계획인데 약 1만 명이 참석해 서울에 머무를 예정이에요. 그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코엑스 일대에 마이스 단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는 ‘사람이 모이는 도시’는 결국 일부러 찾아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와 다름없다. 2018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가 바라는 모습이 얼마나 갖춰질지 묻자, 그는 그때까지 적어도 큰 방향을 잡고 제대로 초석을 다져놓겠다고 답했다.
문화와 역사부터 국제적 비전까지 각 방면에서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그는 ‘도시의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유럽의 역사적 도시를 걷다 보면 천년 전에 닦은 길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보도블록 하나를 제대로 놓는 것처럼 도시 인프라의 기본부터 다지는 것이 중요하고,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서울이 확실히 선진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7년이라는, 서울시장으로서는 가장 긴 임기를 달리고 있는 그가 말하는 품격 있고 지속 가능한 도시는 탄탄한 기본에서 출발해 빛을 발할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시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을 보며 한때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기 삶의 질을 포기하며 일에 매달리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가서 드라마 한 편을 볼 정도의 여유를 누리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다고 하니 그 또한 시장에 대한 한 가지 오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잘 들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생각에 다방면의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며 여가 생활을 즐긴다. 그러고 보면, 첫인상에서 느낀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시정은 물론 일상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 듯하다. 그간 알지 못한 박원순 시장의 균형 잡힌 삶의 모습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스타일 에디터 김지수(kjs@noblesse.com) 사진 강태욱 헤어 & 메이크업 송춘희 의상 협찬 에스티 듀퐁, 브라운 OC, 알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