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람을 품다
도심 속 거리와 건물, 그리고 그 사이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2025’ 총감독, 토머스 헤더윅.

도심 속 자연과 예술의 결합, ‘리틀 아일랜드’.
‘인간 중심 설계’를 철학으로 예술, 디자인, 공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적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그가 1994년에 설립한 헤더윅 스튜디오는 200명 이상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가 모인 창의적 집단으로, 세계 각지에서 도시와 사람을 잇는 상징적 공간을 만들어왔다. 뉴욕 허드슨 야드의 조각적 전망 구조물 ‘베슬(Vessel)’과 허드슨강 변의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대,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시드 캐시드럴(Seed Cathedral)’은 그의 상상력과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사람의 감각과 일상의 경험을 형성하는 공적 무대’로 바라보는 그는 이번에도 그 철학을 서울 한가운데에 구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토머스 헤더윅이 총감독을 맡은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2025’가 9월 26일부터 11월 18일까지 송현그린플라자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2017년 출범해 2년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도시와 건축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국제 무대다. 올해는 송현그린플라자를 중심으로 전 세계 24팀의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일상을 담은 거리의 벽들(Walls of Public Life)’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대규모 건물 단면이 공원 북측에 길게 늘어서고, 각기 다른 재료와 질감, 색채로 일상의 풍경을 재해석한다. 남측에는 길이 90m, 높이 4층 규모의 ‘휴머나이즈 월(Humanise Wall)’을 설치해 건축이 사람의 감정과 도시의 표정을 어떻게 바꾸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올해 주제는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Radically More Human)’으로, 폐쇄적이면서 일방적인 도시 건축의 구조를 넘어 시민의 감정과 경험을 존중하는 공론의 장을 지향한다. 헤더윅은 건축을 ‘공적 삶의 벽’으로 정의하며, 건물 외관이 사람들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재료와 질감, 색채가 빚어내는 감각적·정서적 경험을 탐구하고, 글로벌 콘퍼런스 ‘Emotional City’와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논의하며 대화의 장을 펼칠 예정이다. 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왜 지금 ‘더 인간적인 도시’를 이야기하는지 그에게 직접 들어봤다.

인간적 건축을 구현하는 토마스 헤더윅.
노들섬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와 코엑스 컨벤션센터 리디자인, 한화 갤러리아 리뉴얼 등 서울과 인연이 깊은데요.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30여 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저는 늘 주변 세상을 더 매력적이고, 너그럽고, 많은 사람에게 즐거운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에 이끌려왔어요. 처음에는 제 작품을 통해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프로젝트만으로는 영향이 한정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미술관이나 시청처럼 특별히 신경 쓰는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사무실, 병원, 요양원, 주거 시설처럼 지난 한 세기 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보통의 건물’ 속에서 이뤄집니다. 도시는 재미없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끼죠. 결국 중요한 건 ‘권력 구조’를 바꾸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지금 건축은 동종 업계 내에서만 이야기하는 폐쇄적인 구조예요. 이를 깨려면 더 넓고, 포용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건축가뿐 아니라 도시 관계자, 개발업자, 기획자, 그리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 말이죠.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건축 비엔날레’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서울이 다른 도시에 건물을 어떻게 하면 더 ‘소울적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이라는 주제로 전개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주제를 구상할 때 핵심은 앞서 말한 권력 구조를 바꾸는 데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소수 업계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대중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이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폭넓은 시민 참여와 권한 부여를 만들고 싶었어요.
다양한 작품과 프로그램 중 특별히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요? 송현그린플라자에 설치되는 ‘일상을 담은 거리의 벽들’이 가장 기대됩니다. 세계 각국의 창작자 24팀이 가로 2.4m, 세로 4.8m 규모의 건물 단면을 통해 건물 외관이 얼마나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프로젝트예요. 사람이 건물과 가까이 마주하는 순간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길을 지날 때인데,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건축 경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차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런 감정을 잘 들여다보지 않아요. 이 24개의 벽은 ‘건물 외관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지난 수십 년간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덮인 단조로운 외벽이 너무도 당연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훨씬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을 관람할 때는 각 벽 앞에서 1~3분간 서서 창작자가 의도한 메시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남기고 싶은 서울의 도시적 유산이 있을까요? 가장 대중적인 비엔날레를 만들고 싶습니다. 건물에 대해 지금껏 없던 가장 큰 대화를 촉발하고, 그 대화를 20~30년 뒤까지 이어가는 거죠.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인 지금,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지낼 수 있지만 이러한 여건과 반대로 현시대 우리는 ‘외로움’의 전염 속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점점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환경은 이제 단순한 미적 문제가 아니라 공중 보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이번 비엔날레가 사람들의 영감, 정서적 웰빙과 직결되는 전시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궁극적 목표죠. 나아가, 건축업계가 대중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사랑받는 건물을 만드는 데 더욱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도시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감상적인 만큼 도시 건축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대중은 스스로를 건축과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건축설계 전문가도, 도시 정책을 펼치는 관료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아무도 애정을 갖지 않는 건물이 생기고, 몇십 년 뒤면 허물어지는 거죠. 한국 상업 건물의 평균수명은 30년, 영국은 40년 정도예요. 엄청나게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인력까지 고려하면 심각한 낭비입니다. 영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3분의 2가 건설 분야에서 나옵니다. 건설업계가 숨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죠.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받지 못하는 지루하고 비인간적인 건물을 짓고, 30년쯤 지나면 다시 허물고 있습니다. 이제 멈춰야 해요.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관심 부족’입니다. 우리 사회가 건물에 충분히 애정을 기울이지 않는 거죠.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건물을 짓고, 보호하고, 적응시키는 문화가 정말 필요합니다.
그동안 건축, 조경, 도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해왔는데,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요? 오래전부터 거리와 마주하는 구역이나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업계에서는 여전히 건물 안 사람만 고려하는데, 사실 매일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항상 어떻게 하면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사회 전체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지금 우리가 조성하는 도시에 즐거움이 부족하다는 것도 고민 중 하나예요. 건물 외관에서 호기심이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죠. 꼭 과장된 형태가 아니어도, 세심한 디테일과 작은 배려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발전이 빠른 시대에 건축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현대 건설 기술은 사람과 소통하는 건축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중의 목소리가 없으면, 비용이 더 드는 인간적 요소가 가장 먼저 잘려나갑니다. 이렇게 ‘외로운 시대’에 거리가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집에만 머물게 됩니다. 많은 이가 과거보다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공공장소에 흥미와 개성을 충분히 담지 못한 탓이라고 봐요. 건물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공적 삶의 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도시 한가운데 건물을 세운다는 건 결국 그 건물의 외벽으로 공적 삶을 만드는 일이고, 그 순간은 건물 안 사람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책임이 따르는 거죠. 거리에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떠올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정말 살고 싶은 도시를 떠올리면, 그곳은 모든 메인 골목을 걸어보고 싶어질 만큼 흥미롭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걷는 속도는 우리의 시선이 매초 수백만 개 정보를 받아들이는 리듬을 만드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평평한 유리벽이나 알루미늄 패널 옆을 걷다 보면 시각적 다양성이 부족해 몸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 대부분 건물을 경험하는 시점에 맞춰 건물 하부에 장식, 조각, 장인정신처럼 창의성이 더해진 것을 보고 싶어 해요. 그래서 더 많은 예술가, 디자이너, 다양한 창작자와 협업하는 도시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건물 외벽에 단어들이 있었죠.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을 기록하고 전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이처럼 건물이 다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건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품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될 거예요. 저는 바로 그런 도시에서 우리 삶이 더 깊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곡선형 건물과 녹지 조경을 통해 ‘도심 속 마을’을 구현한 ‘아자부다이 힐스’ © Kenji Masunaga
에디터 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
사진 헤더윅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