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서울의 희망곡
건축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생각이고 또 방법이다. 배형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공동 총감독이 이번 비엔날레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건축물을 전부 빼버린 이유다.

지난 9월 2일부터 오는 11월 5일까지 메인 전시장인 서울 DDP와 돈의문박물관마을, 세운상가, 동대문, 청계천 일대에서 열리는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도시와 건축을 화두로 한 국내 최초의 글로벌 축제다. 이 축제의 산파는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의 큐레이터를 역임한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의 배형민 교수. 그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 알레한드로 사에라-폴로와 공동 총감독을 맡아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00여 개에 이르는 전시와 현장 프로젝트,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선보이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아직 가보지 못한 이가 이 축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형민 총감독이 하나하나 찬찬히 소개한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며 서울시 도시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뉴타운·재개발·재건축을 원점에서 재검토했죠. 알다시피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도시 속 건축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고도성장 시대엔 건축이 건설의 도구였지만, 앞으론 환경문제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거였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역시 그런 고민을 세계의 다른 도시와 나누자는 취지로 탄생했습니다.
좋은 의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누군가는 세상에 이미 수백 개나 존재하는 기존 비엔날레와의 차별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거의 매일 세계 어딘가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니까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기존 비엔날레와 기본적으로 형식과 정신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그 틀에서 기존 비엔날레와 차별화한 지점이 분명 있죠. 기존 비엔날레가 전문가나 예술가들의 고유한 작업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도시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세계가 공통으로 겪는 도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을 우선으로 합니다. 다시 말해 ‘도시 이슈’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거죠.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국가관이 있는 것처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도 도시관이 있습니다. 일례로 현재 <도시전>이 열리고 있는 DDP에 가면 서울을 비롯한 로마, 런던, 마카오, 멕시코시티, 뭄바이, 평양, 샌디에이고, 파리, 자카르타 등 세계 50개 도시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시의 정책 방향을 한눈에 알 수 있죠.
이번 비엔날레의 첫 번째 주제가 ‘공유 도시’입니다. 공유 경제는 익숙하지만, 공유 도시는 생소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태계가 파괴되어 공기와 물까지 사고파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누가 물을 사 먹느냐고 웃었지만, 지금은 물은 물론 공기까지 사고파는 시대가 됐죠. 공유 도시는 이처럼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한 공기와 물, 불, 땅의 4가지 공유 자원과 만들기, 감지하기, 움직이기, 다시 쓰기, 소통하기의 5가지 공유 양식을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젠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공유와 보전을 통해 도시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우리 삶과 도시 공간을 바꿔나가야 할 때임을 알리려는 거죠.
지금 서울이란 도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제조업의 쇠퇴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1980년대만해도 종로 일대와 세운상가는 제조업의 ‘메카’였습니다. 세운상가를 한 바퀴 돌면 항공모함도 만들 수 있단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곳이 전부 활기를 잃었습니다. 낙후한 상가를 허물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죠. 한데 이런 사례는 이미 20~30년 전 뉴욕이나 런던 같은 선진국 도시들이 겪고, 결국 ‘도시 중심의 제조업 이탈’ 같은 전형적 사례로 이어진 사회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들 도시에선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그 기반이 와해됐죠. 한데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제조업이 도시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죠.
그건 향후 도시문제에 직면할 후진국만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첨단 산업이 자리 잡은 선진국 도시에도 해당하는 문제인가요? 물론입니다. 런던만 해도 현재 도심 제조업을 어떻게 다시 살려내는가가 정책 목표 중 하나니까요. 그것이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기도 하고요.
다행히 서울은 아직 제조업의 ‘이탈’까진 이르지 않은 듯한데,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이에 대한 예방 차원으로 무언가를 제시하기도 하나요? 네, 마침 그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서울시의 봉제 산업이라든지 을지로 세운상가의 전자 부품 산업 같은 현장에서 ‘똑똑한 보행 도시’라는 이름으로 ‘뇌파 산책(뇌전도 측정기를 머리에 쓰고 도심을 걸으며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것)’이나 국내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생산 토크’, 어린이 비엔날레 도시 워크숍 ‘도시 탐험대’ 등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해 도시 제조업이 단순한 3D 업종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새로운 생산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죠.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만약 이를 통해 시민들이 제조업의 중요성을 깨닫는 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말씀해주신 시민 참여 워크숍을 포함해 체험형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듯한데요, 뭔가 의도한 점이 있는지요? 저는 그동안 건축전을 여러 번 기획했습니다. 다행히 늘 반응이 좋았죠. 제 건축전엔 기본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일상의 물건은 전시장에서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번 비엔날레 또한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와 거주 공간에 관한 것이기에, 모든 차원에서 시민이 직접 그것을 경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공간에 들어와 뭔가를 보고, 만져보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요.
기존의 해외 건축비엔날레에 없던 방식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개막식 이후 수천 명의 시민이 여러 프로그램을 즐기고 돌아갔습니다. 이를테면 메인 전시장인 DDP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선 국내외 건축가들이 건축과 과학을 결합한 관람객 체험형 작품을 선보이고 ‘식량도시’라는 이름으로 도시 안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보여주기 위해 서울에서 양봉한 꿀로 만든 차를 판매한다든지, 따로 주제를 정해 해산물의 유통 경로 등을 체험하도록 하죠. 주말마다 유명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푸드 페스티벌도 있고요. 즐겁게 먹고 마시면서 도시문제를 체험할 수 있는 거죠.
메인 전시장인 DDP도 그렇고 돈의문박물관마을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비엔날레가 건축물 그 자체는 별로 소개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맞습니다. ‘도시건축비엔날레’라는 이름에 많은 이가 건축물을 떠올릴 테지만, 건축물은 거의 보이지 않죠. 적어도 저는 ‘건축’이 ‘건물’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생각’이기도 하고,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 대부분도 마찬가지죠. 세계가 주목하는 현대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토마스 사라세노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카를로 라티, 독일의 국립조형미술학교 교장 니콜라우스 히르슈 등 수십 명의 건축가가 모두 건축을 업으로 삼았지만 전면에 그걸 내세우진 않죠. 대신 ‘공유 도시’에서의 공기와 물을 비롯한 공유 자원, 또 그걸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공기는 다 함께 마시지만 그걸 어떻게 시민의 입장에서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등을 고민하는 거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아직 한 달 이상 남았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이루려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들어왔으면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나와 차를 타고 학교나 학원에 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따르고 있죠. 저는 이번 비엔날레가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도시 현장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비엔날레가 끝나더라도 없어지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만든 공간과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서울시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