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설
수십 년 만에 부활을 선언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더없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
쿠레주 2016 S/S

파코 라반 2016 S/S

비오네 2016 S/S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안드레 쿠레주와 파코 라반을 기억하는가? 20세기 트렌드의 귀환을 소개하는 최신 잡지 기사에서 언급하거나 혹은 욕실 타월(그 이름만 헐값에 라이선스화되어 팔린 탓에!)에 새겨진 이름 덕분에 낯이 익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요즘 부활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엔 한때 패션계를 호령하던 디자이너 당사자도, 추억만 회상하는 낡은 모습도 없다. 대신 하우스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동시에 현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디자이너가 함께한다. 2013년 파코 라반이 영입한 줄리앙 도세나는 과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옆에서 발렌시아가의 부흥을 이끈 인물. 그는 파코 라반 특유의 SF적 관점은 살리되, 보다 오늘날의 여성에게 어울리는 컬렉션을 만들었다.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하우스의 상징인 체인메일(Chainmail, 메탈 조각을 고리로 이어 붙인 원단)을 비롯한 미래적 소재를 더욱 가볍고 일상적인 느낌으로 재탄생시키면서 말이다. 쿠레주의 재정비에는 세바스티앙 메예(Sebastien Meyer)와 아르노 바양(Arnaud Vaillant) 듀오가 힘을 보탰다. 이들이 처음 선보인 쿠레주의 2016년 S/S 컬렉션 쇼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대신, 흰 보디 슈트 위에 쿠레주가 50여 년 전 선보인 아이코닉 아이템을 하나씩 걸친 모델이 차례로 등장했다. 소재와 컬러만 다른 동일한 디자인의 재킷, A라인 드레스와 미니스커트를 포함한 15종의 의상만 무대에 오른 파격적인 컬렉션이었다. “역사적 하우스의 새로운 시작이 한순간에 완전해질 순 없습니다. 그래서 핵심적 아이템에 초점을 맞추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보고 싶었죠.”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한 쇼는 오히려 브랜드의 현대적인 변화를 금세 인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성스러운 드레이핑과 바이어스 컷으로 유명한 비오네는 지난 9월 후세인 샬라안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클래식하고 우아한 하우스의 오랜 관습에 도전하기에 그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영감을 얻은 가재 드레스처럼 초현실주의적 스타일로 이름을 알린 스키아파렐리 역시 작년부터 60년 만에 오트 쿠튀르 쇼를 다시 선보이고 있다. 발렌티노 쿠튀르에서 활약하던 베르트랑 기용(Bertrand Guyon)이 마르코 차니니에게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바통을 이어받아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톡톡 튀는 스타일을 모던하게 재해석하고 있다.
가장 최근 부활을 선언한 폴 푸아레는 국내 기업인 신세계인터내셔널에서 전격 인수를 밝혀 더욱 이목을 끈다. 아직까진 향수를 포함한 코스메틱 제품을 먼저 선보인 후, 본격적인 패션 라인을 런칭한다는 계획만 밝힌 상태. 1920년대에 하렘 팬츠와 기모노 코트처럼 과감한 디자인을 펼친 폴 푸아레의 미학을 현재로 불러들이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쯤 되면 추억의 가수가 TV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의 재등장은 하나의 현상이라 해도 좋을 듯. 그리고 이러한 소식이 반가운 건,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젊은 디자이너의 손길과 함께해서다.
에디터 한상은 (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