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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새로운 예술 허브

LIFESTYLE

세계에서 동남아시아 현대미술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가 개관했다. 싱가포르 문화 예술 역사계에 한 획을 긋는 화제의 현장에 직접 다녀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하루 종일 전시, 공연,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독립 50주년을 맞이해 싱가포르의 역사와 동남아시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대규모 미술관을 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싱가포르는 ‘교통·금융의 중심지’, ‘오밀조밀한 광역도시’라는 타이틀을 뛰어넘어 문화 예술을 통해 전 세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교두보가 될 것입니다.” 지난 11월 23일,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의 오프닝 전야제 파티에서 리셴룽(Lee Hsien Loong) 싱가포르 총리의 축사가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고위 인사들과 문화 예술계 관계자, 아시아 전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언론인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미술관 개관을 축하했다.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는 1929년에 문을 연 시청과 1939년에 지은 대법원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과거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그 사이에 건물을 이어주는 다리와 기둥을 설치하고 천장과 외벽을 유리로 덮어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완성했다. 2008년 프랑스 건축 회사인 스튜디오 밀로 아키텍처(Studio Milou Architecture)가 설계를 시작한 이후 정부가 줄곧 강조한 것은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 대법원동(supreme court wing), 시청동(city hall wing)으로 불리는 건물은 돌기둥과 대리석 바닥, 대법원의 원형 법정과 집무실, 쇠창살을 그대로 남긴 구치소까지, 예전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싱가포르 작가 추아 엑 카이(Chua Ek Kay)의 특별전 이 열리고 있다.

대법원동 3층에 자리한 원형 도서관 ‘Rotunda Library’ 내부 전경

“구(old)와 신(new)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건축물에서 싱가포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정면에는 관람객이 쉴 수 있는 공원이 펼쳐져 있고, 선텍시티와 마리나베이를 비롯한 화려한 금융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것도 큰 장점이죠.” 미술관의 공간 기획을 담당하는 수스마 고(Sushma Goh)는 작품을 관람하기 전 건물 자체의 기운부터 느껴볼 것을 강조했다.
미술관 최대 후원사이자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UOB와 DBS의 이름을 건 2개의 메인 전시장에서는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 지역 현대미술의 시대적·주제적 서사를 아우르는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선언과 꿈 사이에서(Between Declarations and Dreams): 19세기 이후의 동남아시아 미술>전을 진행 중인 UOB 동남아시아 갤러리는 19세기부터 1990년대까지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에 따라 구성했다. 19세기 자바 예술 작가 라덴 살레(Raden Saleh)의 ‘상처 입은 사자(Wounded Lion)’, 말레이시아 출신의 바틱 미술가 추아 티안 텡(Chuah Thean Teng)의 ‘아침(Morning)’ 등의 회화 작품부터 필리핀 출신 작가 데이비드 메달라(David Medalla)의 ‘구름 협곡(Cloud Canyons, No.24)’, 에드거 탈루산 페르난데스(Edgar Talusan Fernandez)의 ‘키누폿(Kinupot)’ 등의 현대 조각 및 설치 작품까지 400여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은 동남아시아 예술가들이 역사, 이데올로기, 정치적 상황과 개인의 예술적 동기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과 경험을 담고 있다. 연대기에 따라 층을 오르면 마지막 순서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영상, 설치, 사진 작품과 기록물을 만날 수 있다. 시청각 기기를 활용해 작품을 체험하고 설치 공간에 직접 들어가 관찰하는 등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아트워크 위주의 전시다. 3층에 놓인 연결 브리지를 건너 한 층 내려가니 DBS 싱가포르 갤러리에서<시아파 나마 카무?: 19세기 이후의 싱가포르 미술(Siapa Nama Kamu?: Art in Singapore since the 19th Century)>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전시명은 싱가포르의 대표적 미술가 추아 미아 티(Chua Mia Tee)의 1959년 작 ‘국어 수업(National Language Class)’ 속 칠판에 쓴 글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를 의미하는 말레이시아어다. 1900년대 싱가포르 초기 미술부터 1930년대 신흥 난양 예술, 문화 정체성이 발현하기 시작한 1960년대와 전통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1980년대 등 6가지 주요 테마로 싱가포르 예술계의 발전 과정을 함축한다. 이 전시는 지속적인 조사와 학문 연구를 통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미술관을 대표하는 두 편의 전시를 살펴보고 나면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우관중(Wu Guan Zhong)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다다른다. 공공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인<우관중: Beauty beyond Form>전은 중국 예술과 서양 모더니즘을 결합한 작가의 작품 중 싱가포르에서는 처음 전시하는 잉크화와 유화도 공개한다.

대법원동 외관 전경

싱가포르 작가 추아 미아 티의 작품 ‘국어 수업(National Language Class)’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의 컬렉션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예술과 역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확실한 매개체로 보인다. 공식 소장품만 해도 8000여 점. 동남아시아 현대미술품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 규모다. 미술관은 작품뿐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시청동 1층에 위치한 케펠 예술 교육 센터(Keppel Centre for Art Education)에서는 작가와 큐레이터, 미술관 에듀케이터가 진행하는 짜임새 있는 미술 교육을 통해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다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쉽고 친절한 최첨단 디바이스. DBS 싱가포르 갤러리 입구에 마련한 대형 터치 테이블 ‘소셜 테이블(Social Table)’과 무료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 애플리케이션 ‘Gallery Explorer’는 이곳을 처음 방문한 관람객과 어린이, 노년층도 쉽게 사용할 있도록 오랜 고심 끝에 완성한 콘텐츠다. 가이드나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관람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역사적 특성을 고려해 설계한 건물부터 대규모 소장품, 미술관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문화 시설과 콘텐츠는 독립 50주년을 맞은 싱가포르가 짧은 역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준다. 동남아시아 예술의 허브가 되기 위한 싱가포르의 노력은 이제 막 시작됐다.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로 인해 급물살을 타고 성장할 동남아시아 문화 예술계의 미래를 기대해보자.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제공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