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미술 시장에도 봄은 오는가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2016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가 열렸다. 세계 미술 시장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옮겨가는 가운데, 이번 행사에서는 컬렉터의 힘이 자국의 미술계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시아의 현대미술 시장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매우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이며 뉴욕, 런던에 이어 홍콩이 세계 3대 아시아 미술 시장으로 우뚝 자리매김했다. 2008년 <아트 뉴스페이퍼>가 발표한 도표는 이를 더욱 확실히 나타낸다. 2008년 전 세계 현대미술 시장 중 뉴욕 39%, 런던 29%, 중국(홍콩, 베이징) 7%, 나머지 25%로 구분되던 마켓 지표는 2015년을 기점으로 뉴욕 28%, 런던 22%, 중국(홍콩, 베이징) 25%로 그 방향성을 달리했다. 중국을 기반으로 하는 아시아 미술 시장의 확대는 지난 10년간 두드러진 현대미술 시장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에 설치한 엔탕 위하르소(Entang Wiharso)의 ‘Promising Land #2’
이러한 시점에 싱가포르는 2011년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를 창립하면서 ‘홍콩 이후의 중요한 아시아 미술 시장 거점 확보’라는 국가정책적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가장 강력한 정부 조직인 경제발전국(Economic Development Board, EDB)은 라이프스타일과를 만들고 현재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 관장인 유진 탄(Eugene Tan) 박사를 영입해 새로운 상업 갤러리 지구를 개발했다. 예전 군 부대로 사용하던 길먼 배럭스라는 지역으로, 국제적 갤러리들이 싱가포르에 들어와 월 200만~300만 원 정도의 낮은 임대료로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상업 갤러리 플랫폼이다. 2011년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가 개막할 때 많은 사람이 작은 도시 싱가포르에서 과연 이런 국제 아트 페어가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새로 생긴 길먼 배럭스라는 상업 갤러리 공간이 과연 임대가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이 시점에 싱가포르는 홍콩 다음으로 중요한 아트 시장의 거점이 되었다. 더구나 싱가포르 정부는 미술 교육의 개혁도 동시에 이루고 있다. 여러 싱가포르 미술대학이 영국의 골드스미스, 첼시 등의 대학과 연계를 시작했고 새로운 미술 교육과 미술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기본기’ 찾기에 착수하고 있다. 미술에 기반을 둔 산업을 다지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싱가포르는 예술 작품을 보관 및 운송하는 시포트(SeaPort) 비즈니스 등 아트 연계 산업도 육성 중이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콘텐츠가 미래 산업이라고 믿은 리콴유 총리는 미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타일러 프린트(Tylor Print)의 인쇄 프린터를 1980년 당시 300만 달러에 구입했고, 지금은 현대미술 작가들과 커미션 작품을 제작하는 STPI라는 비영리 갤러리 기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루디 아킬리의 프라이빗 컬렉션. 아누사파티, ‘Size Don’t Matter’
싱가포르의 이러한 노력과 미술 정책의 방향은 더 나아가 동남아 미술 시장의 확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의 중요한 경제적 동력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기도 하거니와 막대한 인구와 자본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세계적 컬렉터를 많이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 더구나 싱가포르에도 없는 소더비의 이브닝 세일즈가 자카르타에서 열린다는 건 인도네시아의 아트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예다. 동남아시아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작가가 대부분 인도네시아 작가라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맥락을 통해 탄생한 2016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의 창립은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를 만든 로렌초 루돌프가 맡았고, 새로 개관한 간다리아 쉐라톤 호텔의 주인이자 유통업체 회장인 알렉스 테자(Alex Tedja)가 후원하면서 약 40개의 아시아 주요 갤러리가 참여했다.
나는 지난 5~6년간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동남아시아 작가들과 미술 시장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초청으로 이번 페어에 참가하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약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로 미술 또한 그 영향을 받은 반둥학파와 로컬 특징을 보이는 욕야카르타파로 나뉘어 발전한, 독특한 미술 언어를 구축한 국가다. 그 때문에 동남아의 그 어떤 나라보다 작가 수가 많고 국제적 인지도도 높다.
이번 행사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규모의 부티크 페어였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바로 ‘컬렉터들이 만든 페어’라는 것이다. 우선 소더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박수근’으로 불리는 아판디 (Affandi)의 초상화를 출품한 비판매 특별 전시를 열어 인도네시아 모던 회화의 역사적 기량을 보여주었다. 작품만 봐도 이 전시를 위해 소더비가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에게 소장품을 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아직 국립 미술관도 대관 프로그램으로 주로 운영하고 있는 상황.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수의 아판디 작품을 모은 건 페어의 아카이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컬렉터들이 각자 소장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품만으로 특별전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유명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루디 아킬리(Rudi Akili), 젊은 컬렉터 톰 탄디오 (Tom Tandio), 페어에 참가한 갤러리스트와 작가 200여 명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연 데디 쿠 수마(Deddy Kusuma), 페어 개최 장소를 후원한 알렉스 테자는 각자 소장품 중 핫한 현대미술 컬렉션만 뽑아 전시를 열었다. 그곳에 걸린 작품들은 단지 거실을 예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작가의 천재성과 상상력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게 많은 설치 작품을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고, 그것을 전시를 통해 공개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로 인상적인 건 이번 행사가 국제 아트 페어지만 페어 기간에 만난 대다수의 컬렉터가 인도네시아, 즉 자국 작가 컬렉션에 기반을 둔 국제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도네시아 컬렉터의 집이나 미술관 등 가는 곳마다 다양한 인도네시아 블루칩 작가의 크고 작은 작품이 있었는데, 이는 컬렉터들이 자국 작 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 컬렉터 루디 아킬리가 설립한 뮤지엄 입구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를 찾은 컬렉터 알렉스 테자와 방문객들
요즘같이 비엔날레와 아트 페어가 범람하는 시대는 없었다. 아트 글로벌 노매드 투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세계적 이벤트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올여름 자카르타에서 시작한 작은 아트 페어를 보며 페어 기간 내내 자국의 작가를 아끼고 육성하는 컬렉터들을 보유한 인도네시아가 부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 작가가 마켓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200명의 컬렉터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자국 작가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다시금 본격적으로 시작해야할 것이다.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쉐라톤 그랜드 자카르타 간다리아 시티 호텔에서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남아시아의 회화, 조각, 설치, 비디오 작품 등 비주얼 컨템퍼러리 아트에 초점을 맞춘 ‘2016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가 열렸다. 아시아의 5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페어에는 자카르타 소재의 앤디스 갤러리(Andi’s Gallery), D 갤러리, 레드베이스 갤러리(Redbase Gallery), 선라이즈 아트 갤러리(Sunrise Art Gallery), 홍콩의 펄 램 갤러리(Pearl Lam Gallery), 미즈마 갤러리(Mizuma Gallery), 가자 갤러리(Gajah Gallery), 마닐라의 드로잉 룸(The Drawing Room), 쿠알라룸프의 G13 갤러리 등이 함께했으며 한국의 조현 화랑에서는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여러 차례 해외 아트 페어에 소개되어 솔드아웃된 강강훈 작가의 신작과 김지원, 손동현, 유정현, 이소연 작가의 작품을 들고 참여해 관람객의 호응을 얻었다. 갤러리 부스와 프로젝트, 총 2개 섹션으로 나누어 선보인 이번 행사는 인도네시아 주요 컬렉터인 알렉스 테자, 루디 아킬리, 톰 탄디오, 멜라니 세티아완 등이 나선 컬렉터스 쇼(Collector’s Show)까지 마련해 기존 아트 페어와의 확실한 차별성을 부여하며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만의 특별함을 어필하기도 했다.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 이지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 사진 제공 |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