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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이야기

LIFESTYLE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할 만한 생명권을 지닌다는 ‘동물권’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유기견 ‘네모’를 엘리제 궁에 들였고, 외국 정상을 맞을 때도 항상 동행하며 동물권을 지지하고 있다.

2012년 7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계의 저명한 신경학자와 신경과학자, 인지과학자 등이 모여 동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모든 포유류와 조류, 그 밖에 문어를 비롯한 다른 생물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이들은 이런 입장을 공식화하기위해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The 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이란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이 발표를 주목하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새나 두족류(오징어나 낙지같이 머리에 다리가 달린 동물) 등 다른 경로로 진화한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동물에게 뭔가를 분별하는 인지능력이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수년 뒤,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데우스>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 돼지를 착취하고 죽이는 건 윤리적인가? 인간은 더 높은 지능과 더 강한 능력에 더하여 돼지, 닭, 침팬지, 컴퓨터 프로그램과 구별되게 해주는 마법의 광휘라도 가졌나? 갖고 있다면 그 광휘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인공지능이 그런 광휘를 획득하지 못한다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오로지 인간만 특별하고 동물은 인간과 전혀 다르다는 휴머니즘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주장. 사실 이들의 논조는 지금 전 세계에 일고 있는 사람과 동물의 동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동물권(animal rights)’에 관한 화두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격앙된 예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우리 사회의 동물이 처한 실정에 대해 말해보자. 2017년 현재 한국에선 생각보다 많은 동물이 물건 취급을 받고 있다. 오늘도 끔찍한 동물 학대 소식이 SNS를 장식한다. 사료에 약을 타 작은 동물을 독살하는 일은 거의 매일 일어나며, 길고양이 600마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담가 고양이탕을 만들려고 했다는, 구석기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TV를 틀면 ‘열 받아 옆집 개를 잡아먹었다’는 황당한 뉴스가 뜨고, ‘먹고 보니 3000만 원 짜리 진돗개’라는 더더욱 황당한 기사도 버젓이 전파를 탄다. 수백, 수천 마리의 닭과 오리, 소, 돼지 등이 오늘도 공장식 사육장에서 힘겹게 알과 새끼를 낳고, ‘생산’ 능력이 없으면 도살되는 나라, 바로 한국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실정에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돈 벌자고 키우는 동물인데, 돈이 되지 않으면 빨리 없애버리는 거지,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한데 우리가 인간과 다른 생명을 이렇게 다뤄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는 사실 여기에서 시작된다. 거북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과학’으로 증명한 이 문제의 핵심은, 사실 우리가 먹는 고기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풍부한 감성과 지적 능력을 지닌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였다는 데에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을 먹어야 하는 잡식동물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생명체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 사라진 지금의 시스템에 대해선 전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
해외엔 이미 헌법에 ‘동물권’을 포함시킨 나라도 있다. ‘반려문화 선진국’인 독일이다. 이들은 1990년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을 민법에 명시했다. 동물에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한 것. 또 2002년엔 세계 최초로 헌법에 동물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기도 했다. 독일 헌법 20조엔 ‘국가는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고 쓰여 있다. 영국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영국에선 어린이 승객 요금을 내면 반려동물도 ‘정식으로’ 대중교통 탑승이 가능하다. 타이완의 경우 동물에게 신체 훼손에 상응하는 고의적 학대를 가한 이에게 최고 50만 타이완달러(약 1800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것은 물론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간 이 땅에서 일어난 숱한 동물 학대 처벌 사례의 대부분이 벌금 수십만 원에 그친 것에 비하면, 현재 동물 윤리에 관한 세계적 경향은 동물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추세다.

‘동물해방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호주의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와 그의 대표작 <동물 해방>.

덧붙여 최근엔 동물권이 없는 사회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최근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살충제 달걀 사태가 좋은 예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등 감염병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공장식 축산. 대부분의 공장식 축산 시설은 동물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규모다. 인간으로 치면 관 크기만 한 곳에서 사는 셈. 그러니 그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도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동물을 어떻게 사육하느냐, 즉 그들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따라 인간의 건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에디터도 동물권을 전면 인정하자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의 삶과 동물권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깝다. 일단 동물들이 뛰노는 그런 ‘자연’은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방송 밖엔 존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생닭 한 마리를 마트에서 3000원대에 살 수 있는 건 공장식 축산 덕분이라 여기고 있다. 또 이렇게 윤리적 사육의 일반화는 최소한 현재로선 가난한 누군가에겐 고기를 빼앗는 것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기값을 좀 더 내릴 수 있다고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아직 드물고, 빈곤층까지 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으니 공장식 축산을 당장 끝내야 한다고 단언할 사람도 현재로선 없다. 말하자면 대부분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셈. 공장식 축산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누구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윤리적으로 사육한 고기만 소비할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는 둘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져 아예 채식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지금의 형편이 아닐까 싶다.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1 동물권과 생명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영화 <옥자>.   2 동물 권리 변호사의 ‘동물권’에 대한 도전을 다룬 영화 <철창을 열고>의 포스터.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으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그는 닭고기를 먹으려면 닭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홉 살 이래 ‘간헐적’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고등학생 땐 단지 튀어보려고 ‘더 자주’ 채식주의자가 됐다. 하지만 채식주의가 만연한 대학에선 오히려 고기를 더 먹었다. 약혼 후 다시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가끔은 햄버거와 닭고기 수프, 훈제 연어를 먹는다. 그는 2011년 출간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이지만 가끔 거짓말을 하고, 배려심 깊은 친구지만 가끔 눈치 없는 짓도 한다. 우린 가끔씩 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들이었다”라고.
누구에게도 돼지나 소, 고양이 등 동물의 생명을 인권처럼 여길 것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대할 권리 또한 없다. 이 단순한 논리는 반려동물을 한 번이라도 키워본 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엔 접촉해본 적이 거의 없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의 동물이 자신의 이불 위를 사뿐사뿐 돌아다닐 때의 그 경악스럽고도 경이로운 감정. 그 동물이 자신의 가족과 얽히고설키며 불러오는 일상의 독특한 균열. 그런 감정이 바로 동물이 결코 도구나 물건이 아니라는 증거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