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아티스트의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
고유한 작품 세계 속에 녹아든 미의 형상,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남긴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 각자의 언어로 ‘아름다움’을 재정의하며,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Pumpkin, 1991.
© Yayoi Kusama.
Yayoi Kusama
“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주에는 태양, 달, 지구 그리고 수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
쿠사마 야요이는 점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끝없는 우주를 구축한다. 평생에 걸쳐 펼쳐낸 점의 세계는 유년 시절부터 반복된 환각과 강박에서 비롯한 고립된 자아를 해체하고, 불안을 다스리는 의식이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감각을 연결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작품 속 점은 자아와 세상의 경계를 지우고 그 일부로 스며드는 ‘자기 소멸’ 행위로, 서로를 반사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별과 행성처럼 무한한 연결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는 10월 12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유럽 최초 공개 작품을 포함한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쿠사마의 70여 년 예술 세계를 조명할 예정이다.

IKB 3, Monochrome Bleu, 1960.
© Centre Pompidou, MNAM-CCI / Hélène Mauri / Dist. GrandPalaisRmn. © Succession Yves Klein c/o ADAGP, Paris, 2025.
Yves Klein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다음에는 깊은 무(無)가 있으며, 그 후에 푸른 심연이 있다.”
이브 클랭에게 푸른색은 무한한 공간과 의식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다. 그는 모든 것이 사라진 ‘무’의 상태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그 빈자리에 푸른 심연을 불러들여 미가 태어나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시그너처 색상 IKB(International Klein Blue)는 형태를 규정하지 않고, 끝없이 확장되는 공간과 감각의 진동을 품은 열린 장으로 존재한다. 그 속에서 아름다움은 물질적 표면이 아닌 존재의 근원과 맞닿으며, 비어 있음과 충만함 사이의 미묘한 긴장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이브 클랭의 작품은 세계 곳곳의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색채’를 주제로 한 퐁피두 센터의 최근 전시 〈Couleur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예술적 조명을 받고 있다.

All Clear, 2024.
Photo by Thomas Lann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gosian. © James Turrell.
James Turrell
“빛은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자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제임스 터렐에게 빛은 사물을 비추는 수단이 아니라, 감각과 존재의 본질을 여는 창이다. 그는 공간과 시간의 감각을 걷어내고 오로지 빛만 남겨 그 자체와 마주하게 한다. 빛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의 작품을 통한 예술적 경험은 단순한 시각적 감각을 넘어 인식의 근원을 흔드는 내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다양한 색채와 에너지를 발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는 빛은 감각의 근원과 의식의 깊은 층위에서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한다. 최근 발표한 주요 설치 작품을 한 공간에서 소개한 가고시안 르부르제 개인전 〈At One〉에 이어 서울을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을 페이스갤러리 서울 전시 〈James Turrell: The Return〉을 통해 9월 27일까지 선보인다.

25-Ⅲ-69 #46, 1969.
© 환기재단 · 환기미술관.
Kim Whanki
“예술은 생명이고, 생명은 아름답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찾고 싶었다.”
김환기에게 예술은 생명과 맞닿은 하나의 숨결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 바람, 별빛 같은 자연의 요소 속에서 삶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는 이를 점과 색의 언어로 화면에 담아냈다. 자연과 생명이 끝없이 이어지고 진동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은 생의 리듬과 우주의 호흡을 품은 공간으로 작동하며, 예술과 생명 그리고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일깨운다. 그렇게 그의 붓 터치는 생명의 무한한 확장성과 아름다움의 영속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된다.

Harbor Number 1. 1957.
Photo by Jonathan Muzikar. © 2023 Agnes Martin.
Agnes Martin
“예술을 생각할 때 나는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다. 아름다움은 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완전함에 대한 인식이 있다.”
애그니스 마틴에게 아름다움은 눈에 비친 외부 세계를 감상하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깊은 내면에서 조용히 깨어나는 섬세한 인식의 순간에 가깝다. 화면을 가득 채운 절제된 선과 미묘한 색의 진동은 어떤 재현에도 기대지 않고 고요한 의식으로 이끈다. 화려한 형태나 장식이 아닌, 존재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 조율과 정신적 감응은 잠들어 있던 의식을 잔잔히 깨우며, 마음 깊은 곳의 평온과 완전함의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마틴의 작품은 2024년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 〈The Artists of Coenties Slip〉에서 만나볼 수 있다.

The Ten Largest No. 3, Youth, 1907.
Courtesy of the Hilma af Klint Foundation.
Hilma af Klint
“익숙한 삶을 뒤로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삶은 끊임없이 확장되는 아름다움과 완전성의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러나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유와 감정 모두에서 고요함이 필요하다.”
힐마 아프 클린트에게 예술은 내면의 정적 속에서 깨어나는 영성을 통해 우주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시각화하는 행위다.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것보다 의식의 변화와 영적 감각의 확장에 집중했고, 사유와 감정이 차분히 정렬될 때 드러나는 내적 진동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회화 속 기하학적 형태와 유동하는 색채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고요함이 열어주는 또 다른 차원의 언어이며, 영적 울림을 통해 서서히 도달하는 초월적 세계와 그 여정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예술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Hilma af Klint: Proper Summons)〉이 부산현대미술관에서 10월 26일까지 열린다.
에디터 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