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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보물

LIFESTYLE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 그중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물건에 깃든 가치와 역사를 차곡차곡 수집해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이들이 있다. 낡은 인더스트리얼 조명과 옛날 TV를 수집하는 두 남자를 만나 그들의 취향을 탐구한 시간.

1950년 이전의 인더스트리얼 조명을 모으는 조명 수집가이자 조명 디자이너 배상필.

인더스트리얼 조명의 예술적 가치
성수동에는 본격적인 카페 거리가 생겨나기 전부터 갤러리 카페로 인기를 끈 ‘사진창고’가 있다. 붉은 컨테이너를 내부로 들여 카운터로 사용하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시멘트 벽과 낡은 오디오, 스피커, 필름카메라 등을 어우러지게 세팅해 아날로그 감성이 흐르는 공간. 얼마전 이 빈티지한 카페에 딱 어울리는 인더스트리얼 조명 전시가 열렸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조명 디자이너 배상필의 조명 컬렉션을 소개한 자리. 뉴욕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는 인더스트리얼 조명 수집가이자 조명 디자이너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머물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날 운 좋게 그를 만났다. 100년 전 역사 속 조명과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조명이 저마다 은은한 빛을 내는 공간에서 인더스트리얼 조명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나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뉴욕은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경제적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물가가 하락한 뉴욕으로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던 때. 배상필 작가는 이 무렵 형과 함께 뉴욕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일이 벼룩시장에 가는 것이었어요. 파푸아뉴기니 전통 탈을 수집하던 형을 따라 일요일마다 맨해튼 23번가에 위치한 앤티크 마켓을 찾았죠.”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어깨너머로 고물 속에서 보물을 고르는 법을 익힌 배상필 작가의 눈에 낡은 조명 하나가 들어왔다. “특별한 조명은 아니었어요. 저렴하고 심플한, 그저 책상 위에 올려두는 스탠드 조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도 기능을 지녀야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둠을 밝히는 동시에 오브제 역할을 하는 조명에 마음을 뺏겼다. 그렇게 차곡차곡 사들인 조명이 지금은 어림잡아 600여 점에 이른다.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는 명제를 내세운 바우하우스에 이끌려 주로 내구성과 실용성이 뛰어난 인더스트리얼 조명을 찾는 편. “1800~1950년에 만든 조명은 정말 견고해요. 조명 헤드만 해도 오랜 세월 동안 수천 번도 더 움직였을 텐데 부러지거나 망가지지 않고 튼튼하죠. 그 당시에 만든 제품은 고의적 진부화가 없어요.” 20세기 제조업에 영향을 미친 ‘고의적 진부화’는 제품의 수명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품의 디자인이나 성능을 약간씩 변형해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기업적 상술을 말한다. 그런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인더스트리얼 조명은 오래 사용해도 내구성이 뛰어나고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조명은 매크로스키(McCrosky)다. “조명 브랜드가 아니라 펜실베이니아에 근거를 둔 선반 회사의 이름이에요. 이 조명은 배배 꼬인 전선이 스탠드를 감싸고 있고, 스탠드의 각도를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요.” 배상필 작가는 기능적 구조에 이끌려 이 조명을 구입했는데 막상 어떤 이야기가 담긴 제품인지 정보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2002년에 조명을 들고 직접 펜실베이니아로 찾아갔죠. 매크로스키 그룹의 유가족을 찾을 순 없었지만 어릴 적 그곳에서 일했다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어요. 제가 이 조명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매우 놀라셨죠. 그분을 통해 1910~1940년에 사용했으며 판매용이 아니라 공장 내에서 쓸 목적으로 만든 조명이라는 귀한 정보를 얻게 되었죠.”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 그 물건의 역사를 찾고 개척하는 일, 인더스트리얼 조명을 수집하는 매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1 군용차 뒤에 달린 조명을 개조한 스탠드 조명   2 애덤스 배그놀의 아크 램프  3 LM 스트리트 펜던트 조명   4 매크로스키의 데스크 램프

티파니의 릴리(Lily) 조명과 애덤스 배그놀(Adamas Bagnall)의 아크 램프(Arc Lamp)도 그가 아끼는 조명이다. 예술사적으로 티파니 조명은 아르누보 양식의 화려한 장신구로 보석과 함께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에 반해 생소한 애덤스 배그놀의 아크 램프는 전구가 나오기 전에 발명한 희귀한 램프. 오리지널은 거의 박물관에 들어가 있을 정도인데, 2010년에 다른 컬렉터에게서 어렵게 오리지널을 손에 넣었다. 굵은 구리 선에 고압 전기를 흘려 보내 구리가 타면서 빛을 낸다. 이 작품을 구입하고 마지막 소원을 이룬 것처럼 큰 성취감을 느낀 배상필 작가는 요즘 애덤스 배그놀의 팬(fan)을 찾고 있다. 1920년도 제품으로 몸체가 회전하면서 그 안에 있는 2개의 팬이 함께 돌아가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디자인 거장의 작품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은 인정하지만 이름 없는 명작을 찾는 일이 더 재미있죠. 거장들도 결국 어느 숙련공이 필요에 의해 만든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인더스트리얼 조명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는 수집에 그치지 않고 직접 조명을 디자인한다. 2007년에 키메라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라이팅이라는 조명 브랜드도 만들었다. “오래된 조명이라 그런지 갓이나 부품을 한두 개씩 분실한 제품이 많아요. 조금만 고치면 더 편리하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수집한 조명의 먼지를 털어내고 조금씩 리디자인하기 시작했다. 헤드는 오리지널이지만 스탠드를 새로 디자인하거나, 형태는 그대로 두고 새로운 갓을 씌우는 식으로 보완한다. 수집한 조명을 재조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쇠를 깎고 주물을 부어 수작업으로 생산한 조명도 있다.
대부분의 컬렉터는 오리지널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숙명처럼 여긴다. 나사 하나라도 바뀌면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상필 작가는 다르다. “벽에 부착하던 조명에 스탠드를 더해 세울 수 있게 만들어요. 그렇다고 본래 조명의 기능이 달라지진 않죠. 오히려 사용하기 불편하던 조명을 일상생활로 끌어들일 수 있잖아요. 잃어버린 가치를 재탄생시켜 많은 이에게 전파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1 웨스팅하우스의 룩소라이트   2 고대의 무대 조명을 개조한 펜던트 조명   3 O.C. 화이트의 M 브래킷 조명

흑백TV를 수집하는 디자인 그룹 엇모스트의 수장, 정치호

흑백TV, 한국 산업디자인의 원류를 찾아
정치호.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포토그래퍼, 아트 디렉터, 산업디자이너까지 다양하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는 그중 어느 하나로 단정짓길 바라지 않는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신문사 사진기자로 5년간 일했는데, 사진 이외에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싶어 과감하게 신문사를 그만뒀다. 영상이나 사진 등 비주얼을 만들고, 책이나 가구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젊은 아티스트의 작업을 디렉팅하는 디자인 그룹 엇모스트(Utmost)의 수장까지, 그가 하는 일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컬렉터로서 그가 밟아온 긴 여정은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작은 볼펜부터 전자제품, 스피커 등 그의 컬렉션은 방대하지만 맹목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싫었어요. 부모님이 물건을 왜 모아두는지 물을 때마다 수집에 대한 명분을 찾다 보니 나름의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바로 디자인이죠.” 실용적 관점보다 미학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을 것. 그가 오랜 시간 쌓아온 수집품은 디자인을 통해 질서와 균형을 찾았다. 총기 제조사 엘카스코사에서 대공황 시기를 겪으며 정밀 기계, 제련 관련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조한 스테이플러와 연필깎이, 애플이 1984년 출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 128K, 최초의 휴대폰인 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 등 디자인적 가치를 중심으로 수집한 그의 컬렉션은 종류도 다채롭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3m 층고의 작업실 벽면을 가득 메운 흑백TV 12대.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화신소니, 동남TV, 대한전선, 골드스타 등의 브랜드 로고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총 30여 대의 흑백TV를 보유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모두 작동 가능하다. 일명 자바라 TV라 불리는 여닫이 방식의 TV, 다리가 달린 캐비닛 TV, 리모컨을 수납하기 좋은 서랍형 TV 등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인테리어 효과를 낸다. 작업실 겸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그가 직접 설계했는데 그동안 모은 TV를 수납하기 위해 층고를 높게 만들었다고 한다.

3m 높이의 벽면을 모두 차지한 정치호의 TV 컬렉션

그가 본격적으로 TV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신문사 사진 기자 생활을 그만둔 뒤다. 산업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가 제일 잘 만들고 있는 TV, 그 시작점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수집으로 이끌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무조건 일본 제품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불과 30년 사이에 한국은 일본의 소니를 넘어 초일류 TV를 만드는 나라가 된 거죠. 하지만 우리 이후의 세대는 흑백TV를 모르고 자랐어요. 디자인의 원류를 보존하는 것이 후배 디자이너를 위한 책임과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한 1970년대에 한국의 산업디자인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의 디자인을 답습하며 시작한 당시의 가전 디자인은 한국적 ‘촌스러움’을 대변하며 숨겨야 할 부끄러운 디자인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국산 TV가 세계에서 활약하는 현재, 그는 이 과거의 촌스러움이 한국 디자인의 원류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자 미래 디자인에 차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제조사별, 연도별로 특징이 다른 그의 TV 컬렉션은 시대의 기록이자 비교의 의미다. 옛날 TV라고 해서 수집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의 흑백TV, TV장이라 불리던 시절의 TV만이 컬렉션에 포함된다. 그의 연락이 닿은 고물상만도 수십 곳.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작동하는 TV가 있는 곳이라면 인천, 김해, 울산, 부산 등 어디든지 달려갔다. 화신소니, 동남전자의 TV는 작동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다리 4개가 온전히 붙어 있는 TV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TV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다리나 스위치, 트랜지스터, 브라운관 등 부속품을 떼어내 교체하는 용도로 구입한 TV도 셀 수 없이 많다. 이 때문에 일산에 위치한 그의 창고에는 조립과 재탄생을 기다리는 TV와 부속품이 가득하다. “수집가의 덕목은 보관이에요. 진짜 수집가는 잘 보관하고 있다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하게 보관해줄 후대에 전달하는 중간자라고 생각해요.”


1, 2 초창기 국산 TV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그가 디자인한 새로운 TV. 가구 브랜드 끌렘과 협업해 제작했다.
3, 4 습기와 휘어짐에 강한 호두나무 원목으로 제작해 내구성을 더했다. 가장자리를 이중 몰딩으로 처리해 브라운관의 느낌을 살렸다.

그는 수집가의 끝은 창작이라고 말한다. “수집이 모으는 것으로만 끝나면 재미없어요. 현재의 TV 디자인은 두께, 화질, 화소, 명암비 등 기능적인 것에 집중해 개성을 잃고 뻔한 디자인이 되어버렸어요. 컬렉터로서 안목이 생기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옛날 TV는 공간 장악력이 뛰어났죠. 차가운 가전이 따뜻한 오브제로 한 공간에 가구처럼 보기 좋게 놓였잖아요. 사실 TV는 보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아요. 그래서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전원을 켜지 않을 때도 아름답고 보기 좋은 TV를 만들죠.” 실제 그는 초창기 국내 TV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새로운 TV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LED 디스플레이와 1970년대 당시 상징적 디자인 요소를 접목한 감성 가전은 디자인 가구 브랜드 끌렘과 협업해 대부분의 공정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얼마 전 국립고궁박물관 근현대사관에서 전시를 위해 TV를 주문하기도 했다고.
TV를 만들면서 그간 도전하지 않던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수집은 인생의 원동력이 됐다. “수집을 하면서 취향과 안목이 생겼어요. 취향은 훈련이죠. 많은 것을 보고 비교해야 취향이 생겨요. 비싼 것이 귀한 것은 아니고, 귀한 것이 좋은 것도 아니죠. 좋은 것이 나만의 것도 아니에요. 디자인 관련 제품을 수집하지만 제가 소장하고 싶은 가치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입니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선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