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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하모니

LIFESTYLE

첼리스트 양성원과 몽블랑 코리아 지사장 실뱅 코스토프의 랑데부는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어느 봄날, 두 남자가 만나 들려준 삶과 예술, 우정 그리고 존경의 하모니.

5월 30일, 첼리스트 양성원이 KBS교향악단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만난다. 레퍼토리는 멘델스존과 슈만, 차이콥스키다.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지난 3월 13일 서울시향, 첼리스트 주연선과 함께 오른 무대 이후 두 번째 자리다. 올해 체임버홀의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선정된 양성원은 총 4개의 실내악 프로그램을 ‘기획’해 여섯 차례의 공연을 펼친다. 9월과 12월에 열릴 네 차례 연주에선 그가 속한 트리오 오원(Trio Owon)의 멤버와 피아니스트 엔니코 파체(Ennico Pace)가 양성원과 앙상블을 선보인다.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는 몇 가지 측면에서 독특하다. 먼저 ‘레지던트 아티스트’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다. 아티스트에게 특정 공간을 내주거나 작품 제작비를 제공해 그곳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험한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아티스트를 위한 일종의 방공호인 셈이다. 게다가 유명 연주자나 오케스트라를 섭외한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공연이 대세인 클래식업계에서 한국 최고의 첼리스트가 선보이는, 500석이 넘지 않는 체임버홀 공연이다. 이번 시리즈는 명품 브랜드 몽블랑 코리아의 성심을 다한 후원이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했다.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한국의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첫 행사가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포스터 한쪽에 몽블랑 산에서 본뜬 육각 별 모양의 ‘몽블랑 스타’가 훈장처럼 반짝이는 이유다. 양성원과 함께 색다른 ‘도전’을 과감히 감행한 인물은 몽블랑 코리아 지사장 실뱅 코스토프(Sylvain Costof). 2009년 11월 피아제 지사장으로 부임하며 한국과 연을 맺은 그는 열정적 예술 애호가로 잘 알려졌다. 양성원은 그가 한국에서 만난 둘도 없는 친구다. 두 남자를 어느 봄날에 만났다. “세종문화회관, 몽블랑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주체가 박자를 딱딱 맞춘 거죠.” 양성원은 양 손가락을 깍지 낀 채 말하며 실뱅 코스토프를 바라봤다. 그의 한국말에 실뱅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가 동시에 오간 인터뷰였다.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는 두 남자가 나눈 진지하면서 유쾌한 대화를 공개한다.

실뱅 코스토프_ 카키색 스웨이드 블루종 점퍼 Corneliani, 감색 팬츠 Boglioli, 흰색 옥스퍼드 셔츠는 개인 소장품, 스웨이드 로퍼 Loake
양성원_ 체크무늬 재킷 Lardini by Sanfrancisco Market, 흰색 피케 티셔츠 Orian by Sanfrancisco Market, 감색 팬츠는 개인 소장품, 태슬 로퍼 Unipair

두 분이 본래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양성원 알고 지낸 지 4~5년 정도 됐죠? ‘술(와인)친구’입니다.(웃음) 제 공연에 실뱅 부부가 와서 인사 나눈 것이 첫 만남이었어요. 실뱅 그래요. 그동안 많은 것을 함께했죠. 좋은 와인과 좋은 예술.(웃음) 양성원 실뱅은 훌륭한 컬렉터입니다. 많은 사업가를 만났지만 실뱅처럼 일을 많이 하면서도 사진, 그림, 음악 등 예술 작품에 완벽히 집중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웃음) 현대인은 점차 본연의 감각에서 점차 멀어지는 삶을 살잖아요. 실뱅은 그런 면에서 정말 대단해요.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첫 공연 이후 반응이 뜨거웠어요. 소감이 궁금합니다.양성원 비발디, 하이든, 차이콥스키까지 모두 성공적 연주였어요.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거야 잠깐이죠. 저는 연주자라 그런지 음악을 말로 표현하면 그 매력을 잃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요. 그래서 늘 다음 공연만 생각해요. 소감은 실뱅이 얘기하면 되겠네요.(웃음) 실뱅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공연이 끝난 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에 공통점이 있었어요. 빅 스마일(big smile)! 서울은 모든 게 ‘빨리빨리’잖아요. 청중의 표정이 무척 느긋하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 이거구나 싶었죠. 미스터 양이 프로그램을 정말 잘 만들었어요.
5월에 열릴 공연도 기대가 커요. 봄의 끝자락에 듣는 멘델스존과 슈만입니다.양성원 KBS교향악단 단원과 멘델스존의 현악 8중주를 연주해요.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으로 시작해 슈만의 협주곡으로 넘어갑니다. 원래 슈만이 현악 4중주를 썼는데, 지금은 악보가 사라졌어요. 이번에는 현악 파트가 반주할 수 있도록 의뢰했습니다. 새로운 시도죠. 슈만의 음악은 ‘인터머시(intimacy)’와 ‘인텐시브(intensive)’가 충돌해요. 그 틈에서 마술과 같은 아름다움이 나타나죠. 그런 곡을 연주하기엔 체임버홀이 딱 맞습니다.
곡을 위한 최적의 장소와 형식이 이번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매력인 것 같네요.실뱅 맞아요. 한국에서 체임버 공연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습니다. 몽블랑은 연주자와 관객이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형적이지 않은 독창적인 프로그램을요. 양성원 음악을 어디에서 듣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치 3~4명이 친밀하게 저녁을 먹는 것과 20여 명이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의 차이처럼요. 세종문화회관에서 내게 공연을 제안했고, 평소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실뱅에게 후원을 부탁했죠. 보통 후원을 하면 크게 판을 벌여 티를 내려고 하죠. 빅 이벤트, 빅 컴퍼니, 빅 클라이언트!(일동 웃음) 이건 1년에 6개의 작은 콘서트를 무대에 올리는 기획입니다. 애초에 접근 방법 자체가 달랐어요. 실뱅은 이번 공연이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라 했지만, 저는 한편으로 체임버 공연을 사랑하는 마니아를 위한 공연인 것도 같아요. 몽블랑이 마니아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
몽블랑의 문화 예술 후원 활동은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첫 후원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겠어요.실뱅 몽블랑과 예술은 오랫동안 함께해왔습니다. 몽블랑 문화재단은 1992년부터 문화 예술에 헌신한 후원자를 기리며 ‘몽블랑 문화 예술 후원자상’을 수여해왔습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몽블랑은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을 닮았죠. 그래서 몽블랑은 화가, 작곡가, 음악가, 문학가 등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받아 특별한 에디션을 제작해왔어요. 올해 주인공은 세계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입니다. 양성원 예술가에겐 항상 후원이 필요해요. 기업의 후원 활동을 무조건 마케팅으로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연을 여섯 번 정도 후원한다고 브랜드 매출이 확 오르진 않겠죠. 몽블랑의 후원은 참 겸손해요. 동시에 우아하죠. 몽블랑은 펜이 유명하잖아요. 작곡가가 펜으로 남긴 악보를 보고 제가 연주한다는 측면에서 몽블랑이라는 회사와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되네요.
경영자로서, 연주자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으로서 각자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요.실뱅 제게는 3가지 키워드가 중요해요. 호기심(curiosity), 참여(engagement), 로열티(royalty). 이 세 단어는 무엇을 하든 연결됩니다. 한 번 사는 삶이잖아요. 호기심을 갖고 많은 것을 보고 맛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지식을 쌓아야 해요. 예술도 내 삶의 일부입니다. 저는 프랑스인이고, 아내는 한국인이며, 가족은 캐나다에 있어요. 이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20대, 30대, 40대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것이 보입니다. 장 가뱅(Jean Gabin)의 노래 중 ‘주 세(Je Sais)’가 있어요 ‘나는 안다’는 뜻이죠.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대에는 무조건 “주 세! 주 세! 주 세!” 하고, 나이가 들어 조금 성숙해지면 확신이 안 서도 “주 세!” 하죠. 그런데 더 나이가 들고 보니 정말 아는 게 하나 있는데, ‘내가 몰랐던 거’더라고요. 저는 무엇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보다,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양성원 저는 연주자와 교육자를 완벽히 분리해요. 선생으로서 저는 학생이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죠. 연주를 할 때는 저를 완전히 잊어요.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면 첼리스트 양성원이 아니라 베토벤의 정신이 관객에게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거죠. 양성원이고 첼로고, 다 잊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스타일 에디터 김지수(kjs@noblesse.com)  사진 유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