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두 바퀴로 달리는 여행

MEN

509일, 장장 17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45개국을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렸다. 시베리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달린 뒤 확인한 누적 거리는 10만km. 지구 두 바퀴 반을 달린 셈이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

모터사이클 여행의 매력
10여 년의 직장 생활,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다니던 대학원 졸업이 확정된 그때, 죽기 전 꼭 해보고 싶은 내 마음의 버킷 리스트 1번이 떠올랐다. ‘세계 일주’였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가 가능한 시대지만, 온전히 내 힘으로 길을 달리며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이런 여정을 위한 최고의 선택은 물론 두 발이다. 하지만 도보 여행을 감행하기엔 세상이 너무 넓고, 평생에 걸쳐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없는 노릇. 평소 좋아하던 자전거로도 이 긴 여정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이륜차, 모터사이클 여행이다. 자전거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자동차 못지않은 속도로 달릴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모터사이클 여행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터사이클 여행, 힘들지 않았나요?”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모로 참 어렵고, 고생스러웠다. 380km에 이르는 케냐의 오프로드를 달릴 때는 끝없이 이어지는 진흙탕 길에 미끄러지고 엎어지기를 반복했고,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선 속옷과 가방까지 홀딱 젖은 채 빗줄기를 뚫고 전쟁터처럼 달려대는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숙소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터사이클 여행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만의 매력 때문이다. 쾌청한 하늘 아래 지평선 끝까지 뻗은 도로를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상쾌함. 의도치 않게 만나는 절경. 이 세상이 아닌 듯한 풍경 속을 마음껏 누빌 때면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터사이클 여행은 선을 그리는 여행이다.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든다. 도시와 도시,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에서 보통의 여행자가 접하지 못하는 현지인의 삶, 그 현장을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버스 시간표, 기차 노선도 역시 잊어도 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난 바이크 여행이 좋다. 라이딩의 즐거움 외에도 모터사이클 여행의 장점은 또 있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의 동지애다. 서로 잠시 스쳐 지날 뿐인 라이더끼리 항상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여행 중인 라이더, 혹은 그 지역 라이더는 마치 형제를 대하듯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잠시 쉬었다 가라 하고, 문제가 생겨 길가에서 허둥대고 있으면 멈춰 서서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준다. 혼자만의 여행이라도 길 위에서 라이더는 외롭지 않다.

Episode1 > 최고의 라이딩 코스
시베리아 타이가 지대의 끝없는 자작나무 숲, 알래스카 툰드라 지대의 광활한 초원, 사하라 사막의 황량한 모래언덕, 알프스 산맥의 고갯길 등.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베스트 라이딩 루트를 달린 후 내린 결론.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최고다! 물론 개인의 취향 차이는 있다. 개인적으로 빙하 침식 지형을 좋아한다. 빙하, 피오르, U자곡, 혼(horn) 등이 어우러진 기괴하면서도 속세를 벗어난 듯 신비한 풍경은 언제나 나를 미치게 한다. 노르웨이 북쪽 끝 노르카프까지 갔다가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본 경치 역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신선이 살고 있다는 선계,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동을 준 곳은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가 유일했다. ‘창백한 푸른 탑’이란 이름에 걸맞게 2000~300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이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이나 남미 최고의 비경, 인간이 아직 망가뜨리지 못한 자연의 마지막 희망 등 수많은 수식어에 걸맞게 그 풍광이 압도적이다. 바이크를 타고 트레킹 코스를 달릴 수는 없지만, 공원 내 길이 잘 닦여 있어 라이딩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우유니 소금 사막도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소금 사막이 위치한 볼리비아 안데스 고원은 해발 4500m에 이르는 고지대라 숨쉬기조차 힘들지만, 환상적인 풍경은 계속해서 볼리비아의 자연에 감탄하게 한다. 이곳의 백미는 ‘거울 반사’다. 우기가 되어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고여 있는 부분이 반사작용을 일으켜 지구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 어디까지 하늘이고, 어디까지 지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시속 140~150km로 맘껏 달리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집트 아스완 나일 강

이집트 피라미드

탄자니아 바오밥나무

Episode2 > 태양의 나라, 아프리카
유라시아에서 유럽까지 횡단한 뒤 포르투갈의 로카 곶에 앉아 대서양 너머로 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봤다. 더 이상 서쪽으로 달릴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도망가는 태양을 따라 새로운 여정,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아프리카는 시베리아와 함께 가장 위험하고 여행하기 힘든 지역으로 꼽힌다. 그나마 시베리아는 러시아에 일단 입국한 뒤라면 국경 통과나 비자 문제로 까다로울 일이 없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려면 워낙 많은 나라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비자와 국경 통과 문제가 꽤 번거롭다. 기자 피라미드와 아부심벨을 배경으로 나일 강을 따라 달려 도착한 수단. 관광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모래에 반쯤 파묻힌 듯한 황량한 메로에 피라미드를 혼자 돌아다니며 사막의 모래바람을 여과 없이 맞았다. 아기자기한 유럽의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이곳에서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수단에서 에티오피아의 국경 메테마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면 풍요로운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이곳의 자연은 푸르름이 이어지고, 농사를 짓기에도 좋아 보였지만 수출을 위한 작물일 뿐 국민은 헐벗고 굶주린 상태였다.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사자와 기린, 하마가 뛰노는 세렝게티가 있는 탄자니아를 찾았다. 혼자 과거에 머물고 있는 듯 1960년대의 순박함을 간직한 말라위와 인도양 해안의 황홀한 풍경이 이어지는 모잠비크, 그리고 마치 북미 대륙을 달리는 것처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서로 다른 분위기와 풍광이 어우러진 아프리카 라이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케냐 마사비트

Episode3 > 위험한 순간
“너무 험해서 모터사이클로는 이 길을 갈 수 없어. 내 트럭에 싣고 이동해야 해.” 케냐 국경을 넘어 나이로비까지 380km에 이르는 비포장도로를 앞에 두고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와 말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은 상태라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발했다. 처음에는 진흙 진창길. 1단 기어로 기어가듯 미끄러지는 핸들을 부여잡고, 손과 발에 힘을 주어 모터사이클의 중심을 잡았다. 진흙길을 넘고 나니 이번에는 주먹만 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자갈길이 등장했다. 이리저리 돌을 튕겨내며 달리는 내내 제발 타이어가 버텨주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이어진 모래 지옥. 모래 깊숙이 바퀴가 박히면, 1시간은 고생해야 빼낼 수 있었다. 낮부터 시작한 여정은 험악한 도로 상황에 하루를 꼬박 달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스팔트 도로를 만날 수 있었다. 남미에서는 더한 상황도 겪었다. 마야 유적을 볼 수 있는 플로레스를 향해 최단 경로를 따라 달리는 길이었다. 최단 경로라 함은 여지없이 비포장도로. 200km나 남은 지점에서 이미 해는 졌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인가도 없는 국립공원 내 산길은 함께 달리는 차도 없는 외로운 길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중 느닷없이 도로가 끊겼다. 작은 강을 건너는 다리 공사를 위해 도로 옆으로 우회로를 만들어놓고, 직진 도로는 강물 앞에서 낭떠러지로 달리게끔 끊긴 상황. 3m 정도 높이의 절벽 아래로 바이크와 함께 그대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찰나 평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커다란 바위를 피해 자갈밭에 처박혔다. 라이딩 기어의 척추 보호대와 헬멧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자갈밭에 멍하니 누워 손가락과 팔다리를 꼼지락거리니 다행히 움직여졌다. 다리 건너 앞쪽 마을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PLUS TIP

모터사이클 선택 정답은 없다. 본인의 취향과 예산에 맞춰 선택하자. 단, 보다 편안한 여행을 위해 아래의 필수 고려 사항은 체크할 것.
1 신뢰할 수 있는 품질, 부품 수급과 정비가 용이한 글로벌 브랜드.
2 험한 지형도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엔듀로 혹은 듀얼퍼포스 바이크.
3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250cc 이상의 배기량.
4 장거리 라이딩에 필요한 대형 주유 탱크.
5 여행 예산 절감을 위한 높은 연비.

필요 서류 여권, 2종 소형 면허, 국제운전면허증, 영문 이륜차 등록 서류(모터사이클 제반 사항이 기록된 영문 서류. 모터사이클 등록 관청에서 발급한다), 일시 반출입 서류(국내에서 해외로 바이크 반출입 시 받는 서류. 출국 시 항구 또는 공항 세관에서 발급한다), 카르네(Carnet de Passages enDounane, 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 일부 국가는 바이크의 무관세 통관을 위해 까르네 보증 서류를 요구한다.)

에디터 홍유리 (yurih@noblesse.com)
글·사진 정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