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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생, 두 가지 교훈

LIFESTYLE

선수 시절 오로지 자신의 기록과 컨디션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면, 은퇴 후 장미란은 처음 겪는 일을 해나가며 새로운 삶에 적응 중이다. 물론 그녀답게, 꿋꿋하게 긍정적으로!

 

국가 대표 선수 은퇴 후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을 내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오후 3시면 선수촌에서 훈련을 위해 스트레칭을 마치고 막 봉을 잡을 시간인데, 밖에 나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유롭게 다니는 일상이 색다르고 재미있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10년 동안 반복적으로 해온 일과니 달라진 하루하루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뀐 일상의 중심에 2012년 2월에 시작한 장미란재단이 있다.
재단 설립 이후 내 이름 석 자 앞에 이사장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동시에 즐거운 부담인 직함이 붙었다. 선수 시절부터 나중에 은퇴하면 전·현직 운동선수를 돕고 스포츠 꿈나무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연하고 먼 미래라고 여겼다. 생각이 여물기에는 나이도 어렸고, 운동과 개인 성적 관리에 매진하느라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선수 생활에 충실하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준비할 당시, 나는 공식 스폰서인 비자카드에서 각 나라별 운동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TEAM VISA 소속 선수로 선정됐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내가 처음 멤버가 된 것이다. 우연히 재단 설립에 관한 내 계획을 알게 된 비자카드 측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 특별한 인연을 계기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사실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어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바쁘더라도 시작을 했기에 은퇴 후 바로 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진다.
장미란재단을 시작하면서 ‘운동을 좋아하고 앞으로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를 가장 먼저 고민했다. 내가 선수 시절 무엇을 원했는지 떠올려보며 생각한 결과, 아이들에게 현직 국가 대표 선수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면 동기부여도 되고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전·현직 국가 대표 선수와 함께하는 ‘로즈 운동회’, 2박3일 일정의 ‘정규 캠프’, 다양한 종목의 선수와 함께하는 ‘찾아가는 스포츠 교실’을 운영 중이다. 현재 10여 명의 전·현직 선수가 장미란재단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은퇴 후 재단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정도 흐른 지금, 나는 두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첫 번째는 내가 응원하고 도와주려 한 학생들에게 더 많이 배운다는 사실. 한번은 역도부가 있는 여고에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강연 후 아이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대개 비슷비슷한데 그날은 한 여학생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저는 오라는 대학교도, 실업 팀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순간 어떤 답변을 해줘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했다. ‘아이들이 실제로 하는 고민은 막연한 미래가 아닌 이런 실제적인 것이구나.’ 운동이 전공인 학생, 특히 지방에서 운동하는 아이들 앞에 놓인 미래는 대학과 실업 팀, 그 두 길이 전부다. 다양한 길을 생각해볼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그 여학생은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겨우 열아홉 살의 나이에 스스로 실패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무궁무진한데 말이다.
“지금은 네가 친구에 비해 실패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더 빨리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셈이야. 역도 선수의 커리어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지만 운동과 관련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운동 경력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답했다. 고백하자면 당황한 탓에 생각나는 대로 그렇게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동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 아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운동선수의 재활을 돕는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선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좋은 물리치료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줬다. 그리고 이 대화는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꼭 메달을 따고 성적이 좋아야만 체육인이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이 스포츠 관련 분야에 계속 몸담을 수 있게, 이 분야를 서포트하는 체육인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주면 된다.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으면 체육계 인프라도 단단해질 거라고 믿는다.
두 번째는 뜻을 함께하는 든든한 친구들의 소중함이다. 재단을 시작하면서 가까운 전·현직 선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또 재단 활동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함께하고 싶다고 말해준 고마운 이들이 모였다. 역도 선수뿐 아니라 탁구, 배구, 배드민턴, 펜싱, 레슬링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가 함께하고 있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10년 동안 쌓은 우정을 다른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다. 이는 나에게 또 다른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평생 혼자 운동하고 기록에만 신경 썼는데, 그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는 지금의 시간이 나에겐 무척 뜻깊고 재미있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개인적 이야기를 했는데,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재단을 위해 논의하고 선수들이 주축이 돼서 이끌어나간다. 종목별로 장학생을 찾아 선정하고, 찾아가는 교실을 진행할 학교를 정하고, 재단이 해야 할 많은 일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장미란재단이지만 나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함께 운영해간다. 나 혼자 고민할 때보다 훨씬 다양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다들 잘하는 분야가 달라서 더 발전적이다. 가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그들도 진심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은퇴한 후 교류가 없던 동료 선수들을 만나 소통하고 함께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 같아 나도 무척 기쁘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운동 실력을 썩히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고, 그런 긍정적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시간이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미란재단을 시작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당연히 앞으로도 겪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바쁘게 지냈다면, 올해는 한 박자 쉬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기반을 다지고 있다. 무언가를 새로 개척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재단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재단 운영은 행정 업무부터 사업 구상까지, 모든 것을 한글 배우듯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힘든 건 당연하다. 역도도 힘들었지만 힘든 것을 금세 잊어버리고 또다시 해냈다. 지금은 아이들을 만나고 동료와 함께하며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인생의 제2막을 열고 한창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그들 덕분이다.

장미란 선수는 …
1983년 강원도 원주 출생.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금메달(세계 신기록 달성)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역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그녀가 마지막 용상에서 170kg 에 실패한 후 바벨에 손키스를 남기고 기도하는 모습은 국민의 가슴속에 남았다. 2013년 은퇴 후 장미란재단을 세우고 스포츠 꿈나무를 응원하며 또 다른 삶을 시작한 그녀는 여전히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디터 고현경
장미란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