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둘 다 하고 싶어요

LIFESTYLE

두 가지 글쓰기를 동시에 하는 작가가 있다. 시로 시작해 소설을 쓰거나 소설로 시작해 시집을 내고, 또는 기자로 시작해 몇 편의 소설을 내고 지금은 언어학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의 근작을 각각 한 권씩 소개한다.

 

시인 이장욱이 지난겨울에 출간한 소설 <천국보다 낯선>은 ‘빛바랜 필름’ 같다. 날씨로 말하면 안개가 잔뜩 끼고, 싸라기눈이 내리는 오후다. 이 소설은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모티브로 삼았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함께 공부한 ‘A’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네 인물(A에게 은밀한 동성애를 느낀 ‘정’, A를 사랑했지만 기이하게도 그녀의 친구와 결혼한 ‘김’, 유일하게 대학에 남아 사회학 강사로 강단에 서는 ‘최’ 그리고 홈리스로 전락한 ‘염’)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서로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는 구성이다. 화자 넷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말은 서로 엇갈리고 뒤섞이며, 행적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 시인 출신 이장욱은 이 소설에서 일관된 전개 대신 장기인 우연과 혼돈이라는 ‘시적 장치’로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고, ‘낯설게 하기’라는 시작법을 통해 독자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미 4년 전 첫 소설집 <고백의 제왕>을 내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마술적 묘사’라는 평을 들은 이장욱은 이 소설에서 더욱 능글맞고 단단해졌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소설에 대한 해설에서 “우리 시의 미래에 이장욱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 소설의 미래도 이장욱을 가졌다”며 그를 칭찬했다.

한편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의 소설로 사랑받아온 소설가 한강도 최근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냈다. 누군가는 ‘소설로 못다 쓴 얘기를 시로 푸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녀는 소설보다 시로 먼저 문단에 나온 시인 출신이다. 그녀의 시는 거의 모두 아주 느린 속도로 전개된다. 또 아주 오래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도 ‘서랍’과 ‘저녁’이 등장하는가 하면 겨울, 거울, 바다, 시간, 빛, 어둠 같은 단어를 차곡차곡 모아 시를 지었다. 이미 여러 권의 소설에서 인간의 본질적 고통을 조명해온 그녀는 이 시집에서도 죽어야 벗어날 것 같은 인간의 캄캄한 고독을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읊는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독자를 어루만질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이 시집에서 소설에서 다 채우지 못한 어떤 심약한 마음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일찌감치 소설가로 겸업을 선언한 기자 출신 고종석도 책 한 권을 냈다. 제목은 <언문세설>. 이 책은 14년 만에 나온 개정판으로 <기자들>, <독고준> 등의 소설을 써낸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보인 우리 모국어에 대한 탐구를 에세이로 풀어낸 것이다. 한글 자모 스물네 자에 대한 발랄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매우 주관적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사실 누군가에겐 무척 재미없고 딱딱하게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따금 나오는 예상외의 예(그의 유년기 이야기, 인상적인 시 구절)를 통해 ‘가장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그의 모국어에 대한 ‘흐뭇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글에 대한 고종석의 아주 개인적인 ‘사전’이자, 그가 즐긴 한글 스물네 자와의 ‘놀이’다. 한글에 대한 애정만으로 이토록 개인적인 사전을 써내다니, 이 책의 출판은 세계 문자 역사를 따져본다 해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아니, 후무(後無)까진 몰라도 전무한 것은 확실하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