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 Kunstakademie Düsseldorf
독일 명문 예술학교라고 하면 단연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가 1순위다. 특히 오늘날의 독일 사진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의 주도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는 1733년에 건립한 독일 최고의 공립 예술대학이다. 그간 요제프 보이스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드레아스 거스키 같은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했으며, 한동안 백남준이 교수로 재직한 곳이기도 하다. 19세기엔 회화 학교로 당시의 걸출한 화가들이 이 학교를 택했다. 현대에 들어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 하인즈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우커 등의 미술가를 내세워 그 명성을 이어갔다. 1990년대엔 이 학교를 졸업한 예술가와 아카데미 교수들의 예술 작품이 최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특히 2012년 에릭 클랩턴이 런던 소더비에 내놓은 이 학교 출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 ‘809-4’는 당시 생존 예술가 작품의 최고가인 약 363억 원에 거래돼 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소개하며 사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부터 사진가로 작품 활동을 하다 1976년 이 학교의 교수로 초청돼 온, 유형학 사진(대상을 실험실에서 관찰하듯 뜯어보는 형태의 사진)의 모태인 베른트 베허(훗날 베른트 베허의 부인인 힐라 베허 또한 남편과 함께 교단에 섰다)는 독일 미술대학에선 처음으로 이곳에 사진 강좌를 개설했다.
사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요제프 보이스를 필두로 한 행위예술과 해프닝이 주를 이루었기에 사진 강좌는 전체 학교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허 부부는 1996년까지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보수적이고 콧대 높은 뒤셀도르프 회화 학파에 맞서 예술의 한 장르로 사진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안드레아스 거스키, 토마스 슈트루트, 토마스 루프, 칸디다 회퍼, 악셀 휘테 등이 전부 부부의 제자다. 이들은 ‘베허 학파’ 1세대 작가로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을 통해 현대사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면, 세계의 어느 예술학교보다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예술가를 교단에 직접 세우는 것이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학교의 학장이자 동시대 독일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마르쿠스 뤼페르츠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마르쿠스 뤼페르츠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학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국제 전시를 통해 활발히 활동해온 예술가다. 그는 게오르크 바셀리츠, 안젤름 키퍼 등과 함께 ‘신표현주의 회화’를 탄생시켜 예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화가, 무대 디자이너, 시인, 음악가, 편집자 등으로 점점 영역을 넓혀 폭넓은 예술 활동을 선보이는 그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본관 1층에 각인된 ‘늘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라는, 아카데미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문구와도 잘 들어맞는 인물이다. 이 학교 출신인 정주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가 오랫동안 세계적 수준의 예술학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에 대해 “학교의 오랜 역사와 전통에 교수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도 각자 아티스트 기질이 뛰어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방법은 마페(포트폴리오+어학 시험)로 서류 테스트에 지원해 합격하는 것이다. 일단 마페로 서류 테스트에 합격하면 30~40명쯤 되는 신입생 전체를 1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게 하고, 이후 다시 시험(교수의 주문에 따른 개인 작업)을 치른 후 통과한 사람에 한해 원하는 교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유학생의 경우 대학에서 학기 인정을 받아 편입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에서 다닌 대학 학기를 인정받고 편입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퍼포먼스 예술가인 이 학교의 퍼클라우스 링케 교수에게 수학한 원성원 작가는 “입학은 비교적 순조롭지만 졸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학교가 바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라며 “동기 중에 무려 20학기를 다닌 친구도 있다”고 학창 시절을 회상했다.
한편 학과로 분류되는 한국의 미술대학과 달리 독일은 주로 교수제로 대학을 운영하기 때문에 반마다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해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가끔은 어떤 학생의 작품이 담당 교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담당 교수의 의도가 학생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탓도 있지만, 학생 스스로 교수의 명성과 스타일에 편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학교생활에 임하는 것이 이곳에서 실패하지 않는 학창 시절을 보내는 지름길이다. 한편 최종 졸업 시험은 자신이 그간 해온 작업을 걸어놓고, 여러 전공의 교수 앞에서 공개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이때 담당 교수가 학생의 졸업 여부를 결정한다.
세계적 사진가 베허 부부의 영향과 그의 제자인 안드레아스 거스키,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슈트루트 등의 활약으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는 미국 최고의 사진학교인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이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 작가를 교단에 세우는 아낌없는 지원과 재학생의 예술적 재능이 빚어내는 시너지가 만들어가는 독일 최고의 예술학교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오늘날 독일 사진이 힘을 내고 있는 이유를 이 학교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창립 연도 1733년
학과 구성 사진, 회화, 순수미술, 무대미술, 조각, 건축, 비디오, 설치
졸업까지 기간 5~6년(신입생 기준)
등록금 무료(단, 학교가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생카드를 사려면, 한 학기에 200~500유로를 내야 한다)
©Robert Herrmann, Berlin
경영학 전공자의 사진학과 이야기베허 부부의 마지막 제자 요제프 슐츠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대해 말한다.
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갔나? 이 학교의 전설인 베허 부부의 사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기능이 형태를 지배하는 건축물에 매력을 느꼈는데, 그 기능적 건축물에 접근하는 베허 부부의 사진이 나를 이곳에 오게 했다. 또한 나보다 먼저 여길 거쳐간 안드레아스 거스키와 토마스 슈트루트, 칸디다 회퍼 같은 작가가 이곳에서 수학한 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발표한 것도 내가 이 학교에 지원한 이유다. 유럽에서 사진을 예술로 공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교가 바로 이곳이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몇몇 사람에게 경영자와 예술가 중 하나를 고르라 하면 그들이 대개 무엇을 택할 것 같으냐고. 아마 독일인은 대부분 예술가를 택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예술가를 택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얌전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학생도 아니었다. 늘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그들과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작업했다. 이 질문에 답하며 생각해보니, 꽤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웃음)
원래부터 사진작가가 꿈이었나?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유화나 수채화 같은 전통 회화의 표현 방식보다 사진 같은 새로운 매체로 만든 작품에 끌렸다. 정확히 이 학교에 지원하기 1년 전, 어딘가에서 1960년대에 찍은 단순한 풍경 사진 하나를 접했는데, 그 사진이 나를 이곳에 지원하게 했고, 사진작가의 길을 가게 했다.
유럽에선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처럼 도제식 수업을 하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 도제식 수업은 옛 유럽 학교의 방식을 따온 것이다. 독일의 많은 예술학교가 여전히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걸 즐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도제식 수업은 학생의 창의력과 예술적 심미안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폴란드 출신인 내겐 도제식 수업이 그리 생소하지 않다.
요제프 슐츠가 학창 시절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자홀리헤스 시리즈 중 ‘Halle blau-grun’(위), ‘Halle rot’(아래)
졸업할 때 발표한 작품은 무엇이었나? ‘자흘리헤스(Sachliches)’ 시리즈였다. 산업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물류 창고나 공장 등을 디지털로 작업한 것인데, 기하학적 구성과 파스텔 톤 색으로 전시 기간 내내 다른 회화와 계속 비교되었고, 그게 꽤 기분 좋았다. 나는 그 작품에서 사진 예술의 현 상태와 실체를 담는 사진의 기능을 잃어버릴 미래에 대한 의문을 표현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가 당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아마 이곳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 예술을 하고 있지 않을 거다. 지금처럼 긴 자유 시간을 즐길 수도 없을 테고, 내 생각과 판타지를 따라주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일도 하지 못했을 거다. 난 지금 기업 CEO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최대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교내의 국제적 환경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의 다양한 나라에서 많은 학생이 오는데, 이는 아주 특별하고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어준다.
작품을 위한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건 무엇인가?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늘 마음속에 나만의 작은 길을 만들고, 그걸 지키며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주 굳건하게.
김도균이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w.pl-03’
그 시절, 그 사람들, 그 장소김도균 작가가 하고많은 대학 중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택한 이야기.
어떻게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가게 됐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출신 작가들의 유형학 사진을 좋아했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늘 괜찮다고 여긴 작가도 전부 이곳 출신이었다. 그래서 사진 유학을 준비할 때도 제일 먼저 알아봤다. 입학 허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나는 한 번의 낙방으로 비교적 쉽게 입학했다. 이곳은 재수나 삼수의 노력을 들인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학생이 입학을 지원한다.
학교에서 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기말이나 졸업 작품보다는 기업과 함께한 작업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지멘스라는 회사의 직업 교육생들과 함께 지멘스 소유의 건물을 찍는 아트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몇 주 동안 수십 명의 학생이 독일 여기저기를 사진 찍으러 다닌 날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 특유의 도심 분위기와 빛 등 여러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을 받은 탓에 학교의 도제식 수업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무얼 더 배워야 하는지 아는 이라면 더없이 좋은 게 도제식 수업이다. 내 경우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 방식이 꽤 잘 맞았다. 도제식 수업의 최고 장점은 교수와 일대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거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외국에서 동양인 학생은 대체로 조용하다. 언어 실력이 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조용하고 성실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되는 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덕에 술과 마약 등 여러 가지 나쁜 유혹을 견뎌낼 수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엔 무엇을 했나? 주로 사진 작업을 하러 야외로 나갔고, 작업이 끝나면 거기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암실에 갔다.
졸업 작품으론 무엇을 준비했나? 그간 오랫동안 건축물의 외관을 찍었지만, 졸업 작품으론 건축물의 내부를 찍은 ‘W’ 시리즈를 소개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벽을 봤는데 모서리가 튀어나와 있는 건지, 움푹 들어간 건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몇 개의 선이 모여 만들어낸 작품으로 화려한 조명이나 장식은 없지만 전시 당시 꽤 주목받았다.
오랫동안 공간을 모티브로 작품을 발표했는데, 사진으로 표현하는 공간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공간엔 늘 새로움이 존재한다. 일상에선 보이지 않던 것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전혀 새롭게 보인다. 공간의 매력은 실제 공간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의 재발견을 통해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일에 흥미가 있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지금 누리는 작가의 삶 중 8할은 학교에서 축적한 거다. 이 정도면 학교가 인생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학교를 나왔다는 자부심보다는 그 시절, 그 사람들, 그 장소에 있어서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크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