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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스튜디오

ARTNOW

언젠가 마련했으면 하는 근사한 창작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 설치, 드로잉,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저마다 꿈꾸는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홍승혜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하다 보니, 내게 ‘꿈의 작업실’은 곧 ‘꿈의 주거지’다. 컴퓨터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내 작업의 전부이므로 넓은 공간도 필요 없다. 도심이지만 고요했으면 좋겠고, 햇빛 가득 들어오는 큰 창을 통해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녹지가 보이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누리는 일체형 삶을 꿈꾼다.

김소희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지만 복층 구조의 작업실이면 좋겠다. 1층은 동판화 제작을 위한 공간, 2층은 많은 영감을 주는 고양이와 함께 조용히 묘화 작업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한쪽에는 판화 작업을 하는 동안 종이를 깨끗이 다룰 수 있는 테이블과 동판화 작업을 위한 테이블, 에디션용 케이스가 있고 작업실 중앙에는 프레스 머신, 그리고 다른 쪽 벽면에는 수도 설비와 잉킹 작업을 하는 테이블을 놓고 싶다. 수납 설비와 작업 테이블은 사람의 손때가 타면 반들반들해지는 원목으로 갖추고 싶다.

구현모
내 경우엔 건물의 구조나 시설보다 어느 동네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상업지구보다는 문화·향락지구면 좋겠다. 작업실은 대부분 (나무를 마음껏 잘라 쓸 수 있는)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실내 공간을 위한 구조물은 복잡한 거리와 숲의 경계에 있었으면 한다.

이원우
월세 안 내는 작업실!

김도균
항온·항습 장치를 갖춘 수장고, 10인분 이상의 음식을 만들고 편하게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주방, 실내와 실외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 아날로그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는 암실, 조그마한 메자닌 구조의 스튜디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장고다. 무빙 월을 설치해 작품을 ​전시장에서처럼 볼 수 있고 동시에 정리도 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에디 강(강석현)
시내 뒷산 정도의 숲 속에 재미난 형태의 외관이 눈길을 끄는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동경한 마법사나 착한 마녀의 숨어 있는 오두막 같은 건물로, 주차장에서 작업실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마법에 의해 움직이는 문지기 골렘(golem)처럼 내 조각품이 곳곳에 자리한 작은 정원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도착한, 예티(‘눈사나이’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동물)의 얼굴을 지붕처럼 얹은 건물 주변에는 어닝이 설치되어 있어 길 잃은 작은 짐승들이 비를 피할 수 있다. 사각형 건물의 입구는 300호 사이즈의 작품도 한 번에 이동할 정도로 큰 철문. 내부 1층은 작업 공간인데, 천장이 높고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그림을 걸어두기 좋고, 작업실 중앙에서 위로 이어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예티의 머리 부분이다. 쉬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개인 공간. 예티 머리 밖의 발코니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다.

백정기
작업실 위치는 신설동이었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풍물시장이 가까이 있고, 작업 재료를 구하기 쉬운 청계천에서도 멀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하는 공간과 사는 공간을 함께 마련하고 싶고, 조각이나 설치 작업을 하면서 이동하기 쉽도록 작업실 공간은 1층이 좋겠다. 편하게 장을 보러 가거나 작업 재료를 구입하러 가기 위해 스쿠터도 한 대 마련하고 싶다.

이경미
주말에나 조금씩 작업하던 시절 바란 작업실이 힐링과 재충전의 장소였다면, 전업 작가가 된 후의 이상적 작업실은 ​기능성이 뛰어난 작업실이다. 예전에는 막연히 넓은 서재와 시원하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넓은 창, 고양이들이 이리저리 ​ 뛰어다닐 수 있는 벽 선반, 그리고 큰 통유리창과 잔디가 깔린 화단을 꿈꿨지만 전업 작가가 된 지금은 ​높이 꽂힌 책은 잘 안 보니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는 낮은 책꽂이와 테이블을 겸한 허리 높이의 책꽂이가 좋다. ​쉴 때는 채광이 되면 좋지만 오래 작업할 땐 외부 차단용 셔터 시스템을 갖춘 창과 항시 균일한 조도의 조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업 중 말라 죽어가는 화분을 보며 마음 불편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스프링클러가 자동 세팅되는 전방위 시스템의 정원이 아니라면 나는 화병의 꽃 정도로 만족할 테다. 고양이들에겐 미안하지만 함께해야 하는 불가분의 관계로 자동 급식 시스템과 자동 대소변 거름 화장실을 마련하고 싶다. 좋은 세면 시설과 소파, 제습 시스템이 작동하는 큰 작품 보관 창고도 필요하다. 낭만이라고는 없는 작업실 같지만 오랜 시간 많은 것을 거쳐본 나만의 결론이다.

심래정
높지 않은 언덕에 위치하고, 앞뒤로 난 큰 창문이 있어 채광이 좋고 바람이 잘 들며 담배 냄새가 잘 빠지는 곳.
​여름에는 풀 내음이 진하게 나며, 겨울에는 약간 추워서 옷을 몇 겹 껴입게 되는 곳.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장비,
​드로잉 도구가 널브러져 있어도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큰 책상이 자리 잡은 방. 이 작업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큰 책상이다. 밥도 먹고, 작업도 하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눠야 하기 때문에.

함진
평소 작업실이 없어서 카페를 전전하다 보니 미래의 내 작업실에도 카페처럼 좋은 커피 머신이 있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있으면 좋겠다. 벽면에 선반을 설치해 작업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중간중간 케이크와 빵, 과자를 넣을 수 있는 유리 냉장 케이스도 놓고 싶다. 또 냉장고에는 홍삼과 로열젤리 등 피로 해소와 면역에 좋은 것이 가득 차 있으면 좋겠다. 작업실 한쪽 구석엔 담배 연기를 외부로 배출시키는 기계가 있었으면 한다(일본 레지던시에서 보고 첫눈에 반했다). 요즘은 개를 키우고 싶은데, 쓸쓸하지 않게 개와 함께 매일 작업실로 출퇴근하고 싶다.

정영도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관찰한 것이 작품에 자연스레 묻어나므로 작업실은 창작 활동의 장소이면서, 소통을 위한 무대가 될 수 있는 곳이 이상적이다. 지리적으로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동화 속 호수의 성 같은 터를 꿈꾼다. 오래된 건물의 옛 정취를 그대로 보존한 채 부분적으로 기호에 맞게 변형하되, 복층 구조의 건물에서 페인팅과 각종 스트레이너/패널 제작, 그라운드와 도색 작업을 할 수 있는 방과 생활공간,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옥상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환기장치나 조명 등이 공간의 아름다움보다 우선시되어야 하고 동무가 되어줄 고양이까지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유목연
도심 한가운데서 만나는 오두막집. 복잡한 거리의 날 선 사람들을 지나면 나타나는 나무집이 내 작업실이다. 자투리 공간에는 박제나 해골, 버려진 물건들이 자리하고, 낡은 갱지에 그린 드로잉과 미스터리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이는 사진 작품들이 놓여 있다. 그 공간에 도시의 역사 아래 흐르는 어두운 사적 기운이 ​섞여 있길 바란다. 개인의 역사를 간직한 만큼 흥미로운 기록을 덧씌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떠돌며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는 내 작업처럼 작업실 또한 오랜 기억 속 물건으로 가득한 아웃사이더의 박물관 같길 바란다. ​- 종이로 만든 집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 45가지 중 하나의 설명서

천성명
작업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공간. 이 작업실은 망토를 두르고 땅 위에 누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지면에서 보면 곡선으로 이어진 성벽 같지만 다리 부분에 낸 입구로 들어가면 몸통이 전시장이며, 양팔은 수장고와 자료실, 머리 부분은 작업 공간으로 일체화된 건물이다. 이 거대한 사람 형상의 건축물은 하늘에서만 그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조각상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