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피와 오피, 그리고 강북으로 복귀하는 갤러리들
서울의 봄을 더욱 나긋나긋하게 해줄 3가지 뉴스가 있다.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드디어 베일을 벗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파크와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서울을 찾은 줄리언 오피, 그리고 한동안 강남에 머물다 강북으로 복귀하고 있는 갤러리들 이야기다. 그 어느 해보다 볼거리로 가득한 봄이다.
4만5000여 장의 알루미늄 패널이 들어간 디디피의 외관
디디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3월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파크(DDP, 이하 디디피)가 오픈한다. 오픈 두 달 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디디피는 겉모습부터 기존의 국내 건축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략 29세기쯤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은빛 외관은 4만5000여 장의 탄탄한 알루미늄 패널로 덮여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패널들의 모양이 각기 다르다는 것. 말하자면 디디피는 한 장 한 장의 독립적 패널이 모여 완성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외계적 건축물이다. 내부는 대형 미로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층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대회의장으로 쓴다는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알림터’로 들어가 구불구불한 길을 조금 걸으니, 전혀 다른 층의 공간이 나와 깜짝 놀랐다. 500m가 넘는 ‘디자인 둘레길’과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까지 이어진 유선형 계단은 ‘진격의 비정형’의 진수를 보여준다. 디자인박물관의 5개 기둥을 빼곤 실내에 기둥이 아예 없다는 점도 놀랍다. 또 천장은 어찌나 높은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창문도 꼭 필요한 공간에만 제한적으로 설치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느낌을 준다. 일반적인 건축이 수직과 수평으로 이뤄진 데 반해 디디피는 무엇이든 비정형, 다시 말해 ‘둥글둥글’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디디피의 전경
디디피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그녀는 곡선과 좌표를 중심으로 디디피를 완성했다. 그녀의 건축물은 시공하기 어려운 것으로도 이름나 있다. 해외에 지은 그녀의 작품 중 패널과 패널 사이가 어긋나 보기 흉하게 변한 것도 있다. 하지만 디디피는 건축적 완성도가 높아 그녀도 흡족해했다고 한다.
디디피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의 백종원 대표이사는 “살아 있는 박물관, 살리는 박물관, 삶이 있는 박물관을 지향한다”며 실내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대지 면적 6만2692m2(약 1만9000평), 지상 4층, 지하 3층, 총사업비 4840억 원. 5개의 공간(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디자인장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15개 시설(전시장, 카페, 공연장, 매장 등)이 모두 디디피 안에 들어갔다. 디디피는 3월 개관일에 맞춰 일주일간의 ‘서울패션위크’, 런던 디자인 박물관의 <스포츠와 디자인>전,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소품>전 등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한 해에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아 미술 애호가들을 애달프게 한 <간송미술관 특별전>도 예정돼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간송문화재단과 3년간 협약을 맺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80여 점의 국보급 전시를 개관전으로 확정했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에도 디디피만큼 큰 디자인 전용 문화 공간은 없다. 유선형 디자인의 극단을 시도한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 디디피는 앞으로 서울의 디자인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디디피가 하루빨리 디자인 허브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신사동을 테마로 한 줄리언 오피의 신작 ‘Walking in Sinsa-dong’
오피가 돌아왔다
영국의 대표 팝아트 작가 줄리언 오피의 개인전이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두 번째 전시를 위해 서울 사람을 묘사한 신작 ‘워킹 인 신사동(Walking in Sinsa-dong)’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는 이번 신작에서도 다양한 군중이 걷는 장면을 도식화해 묘사했다. 선 그리기를 최소화한 건 물론, 원색을 강렬히 배치해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이다. 그가 포착한 신사동 사람들은 얼굴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채 쇼핑백과 커피를 들고 ‘오피식’으로 앞만 보고 걷는다. 작품 속 어떤 요소는 그림문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미세한 디테일이 아닌 그가 걸친 모자, 안경, 스마트폰 등을 상징으로 표현하는 오피의 작품은 ‘21세기 세련’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국제갤러리의 전민경 디렉터는 “거리감과 친밀감이 동시에 작용하는 도시인의 독특한 정서를 예리하게 보여준다”고 오피의 작품을 평했다.
현재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에선 대형 포스터와 버스 광고, 지하철과 공항의 환승 통로 등에서 오피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앤디 워홀 이후 가장 대중적이고 예술적인 팝아트 작가로 꼽히는 줄리언 오피. 서울 시민의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간결한 이미지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3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청담동의 PKM트리니티갤러리와 통합한 안국동 PKM갤러리
강북으로 복귀하는 갤러리들
한동안 강남으로 떠나 있었던 갤러리들이 최근 다시 강북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 미술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강남 지역 땅값을 감당하지 못한 갤러리들이 강남 지점을 철수하거나, 2개였던 갤러리를 통합해 자연스럽게 강북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아라리오갤러리. 지난해 공간사옥을 인수해 수많은 뉴스에 오르내린 이들은 3월 6일 기존의 ‘아라리오갤러리 삼청’과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을 통합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을 새롭게 오픈한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새로운 전시 공간이 들어설 곳은 지난해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옆 골목. 김인배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강북의 미술 애호가들을 끌어모을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청담동의 ‘PKM트리니티갤러리’는 이보다 앞서 지난해에 안국동 ‘PKM갤러리’로 통합됐다. 이들은 2008년 국내 미술 시장 호황기에 강남의 중심 청담동에 분점을 냈지만 미술 시장의 불황 여파로 하나로 몸집을 줄였고, 올 하반기 삼청동에 들어설 새 갤러리의 오픈에 앞서 현재 임시 전시 공간인 안국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남동에 자리한 갤러리스케이프도 지난해 9월 소격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갤러리스케이프의 심소미 큐레이터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으로 소격동이 새로운 미술 특구로 떠오른다는 생각에 전략을 바꾼 것”이라고 갤러리 이전 이유를 밝혔다. 네이처포엠빌딩의 터줏대감 ‘갤러리2’도 최근 8년간의 청담동 시대를 끝냈다. 갤러리2의 정대호 대표는 “슬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올가을 부암동에 오픈할 예정인 새 갤러리 소식을 전했다. 이외에도 리안갤러리, 송원아트센터, 그리다갤러리, 본화랑 등이 지난해 말부터 북촌과 서촌, 종로구 북부 지역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강북 미술 시대’를 열어갈 그들을 응원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