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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머물다

LIFESTYLE

제55회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발견한 디자인 트렌드와 미래적 디자인, 창의적 발상과 감성적 아이디어, 디자인을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세대 최대 디자인 축제의 현장에서 경험한 우리 시대의 디자인을 말한다.

불탑의 B3 주방 디자인

엘리카(Elica)의 루프(Loop) 후드

그린 키친을 선보인 아크리니아의 전시 부스

장식과 첨단 기술의 아름다운 조합을 엿볼 수 있는 스메그의 호브

주방 디자인의 트렌드를 읽다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는 격년으로 주방 & 욕실 또는 조명 전시가 함께 열린다. 올해는 유로 쿠치나(EuroCucina)의 해로, 미래의 주방 모습을 제안하는 전 세계 주방 브랜드의 키친 쇼케이스가 펼쳐졌다. 주방의 르네상스,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리빙 공간으로서 주방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청결과 위생을 상징하는 스테인리스스틸과 따뜻한 원목 소재를 결합하거나 스타일리시한 디테일을 더해 한층 우아한 가족 공간으로 변신을 예고했다. 알노, 팀 7, 톤첼리, 스나이네로, 리프라(RiFRA) 등 이탈리아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났다. 특히 아크리니아의 공간은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디자인했는데 아웃도어와 인도어의 경계를 없앤 ‘그린 주방’으로 이슈가 되었다. 독일의 불탑도 오랜만에 신제품을 들고 나왔다. 로피에라 전시장이 아닌 브레라에 위치한 오랜 성당을 무대로 골랐다. ‘가족 생활의 중심이 되는 주방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진지한 고민에서 새로운 B3 디자인이 탄생했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았을 때 주방의 조리 도구나 가전이 어지럽게 늘어진 모습 대신 깔끔하고 아름다운 벽을 볼 수 있게, 하나의 새로운 룸이 될 수 있게 조리대 벽면에 슬라이딩 패널을 달아준 것이 핵심이다. B1은 수전과 쿡탑, 수납 등 아일랜드에 필요한 기능을 필요에 따라 커스텀메이드로 구성할 수 있게 한 것. 일반적으로 주방 브랜드는 주방 가구만 만들지만 불탑은 수전과 쿡탑, 선반을 비롯한 작은 부속 하나까지 모두 직접 생산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로쿠치나의 한 섹션인 FTK(Technology For the Kitchen)에는 스마트한 첨단 기술이 집결했다. 앱을 통해 주방 가전이나 호브 시스템을 제어하는 것은 기본, 무엇보다 후드에 대한 연구가 돋보였는데,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조명을 겸하거나 천장이 아닌 벽에 설치하는 슬림하고 미래적 디자인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프라텔리 보피의 레부스(Rebus) 컬렉션

베르사체 홈의 메두사 체어

프라텔리 보피의 조각 같은 장식장, 굿 바이브레이션즈(Good Vibrations)

럭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
로 피에라 전시장은 15만㎡ 부지에 160개국, 1300명의 전시자가 참여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총 24개 홀, 올해는 격년으로 열리는 유로쿠치나 덕에 주방과 욕실 섹션이 있는 것과 별개로 새로운 변화가 눈에 띄었다. 기존 클래식과 (모던) 디자인으로 양분하던 홀 구성에 x럭스(xLUX)관을 추가한 것이다. 보르보네제(Borbonese), 페레, 로베르토 까발리, 엠마뉴엘 웅가로, 베르사체 등 하이엔드 패션으로 친숙한 브랜드의 블링블링한 홈 컬렉션과 더불어 애스턴 마틴, 토니노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 브랜드와 협업한 가구 브랜드가 한자리를 차지했으며 리츠 호텔도 자체 컬렉션으로 데뷔 무대를 치렀다. 그중 가장 눈에 띈 브랜드는 전통과 아방가르드, 직선과 곡선 등 이분법적 요소의 절충 스타일을 보여준 프라텔리 보피(Fratelli Boffi). 펄 그레이 벨벳으로 커버링한 데이베드, 커팅 에지의 진수를 보여준(마치 조각품처럼 깎아냈다) 콘솔과 테이블 등 럭스 가구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헤이의 라 페로타 전시장 전경

마리메코 2016년 F/W 컬렉션으로 꾸민 리빙 룸

이탈리아에서 만난 북유럽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이 뚜렷한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른바 ‘스칸디나비아풍’으로 유사성을 띠는 북유럽 브랜드가 과연 먹힐까 싶지만, 세계인이 몰려드는 디자인 축제인 만큼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리메코는 비아팔레르모의 아파트에서 북유럽 감성의 홈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눈이 닳도록 봐온 친숙하고 선명한 패턴이지만 이곳에서 보니 다르게 느껴진다. 이탈리아의 햇살은 북쪽의 그것보다 확실히 밝고 화사하기 때문이리라. 유독 퍼 제품이 많았는데, 2016년 F/W 시즌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패션쇼처럼 한 계절을 앞서 구성한 점이 색달랐다. 헤이는 2000㎡에 이르는 라 페로타의 드넓은 전시장에서 로낭 & 에르완 부룰레크, 슈테판 디츠, 도시 레빈 등 헤이와 협업하는 대표 디자이너 군단의 다양한 제품을 실제 공간처럼 연출한 멀티 룸을 선보였다. 한편에서 코펜하겐 스타일 카페를 운영하고 미니 마켓을 열어 현장에서 제품까지 구매할 수 있게 해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불러모았다. 조명을 특화한 롱런던(Wrong.London) 브랜드를 이 자리에서 새롭게 런칭했는데, 이곳을 찾은 인파를 보면 홍보 효과가 쏠쏠했을 듯하다.

스토코의 에코(Eko) 컬렉션

보피의 트위그 시리즈

욕실 디자인의 자유 선언
수년 전부터 우리는 거실을 끌어들인 주방, 이른바 ‘리빙 키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방이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는 공간이 아니라 대화와 학습, 여가 등을 즐기는 다목적성을 띠는 경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욕실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찾아볼 수 있다. 안토니오 루피는 거실의 한복판에 욕조와 세면대를 배치해 욕실 가구의 자유를 선언했다. 특히 카를로 콜롬보와 협업한 캐비닛의 경우 크기와 형태는 물론 우드와 알루미늄, 에칭 글라스 등 마감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비스포크’ 스타일을 표방해 나만의 디자인이 가능하게 했다. 테일러메이드 배스룸을 모토로 한 스토코(Stocco)는 세면대와 수납장 유닛을 공간과 취향에 맞게 구성할 수 있는데 행잉으로 할지, 바닥에 고정할지에 따라 욕실 공간의 레이아웃도 제안해준다고. 다케우치 케이지가 디자인한 보피의 신제품인 액세서리 컬렉션 ‘트위그’ 시리즈는 이로코(iroko)나무로 만든 감성 소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타월걸이, 토일렛 브러시, 옷걸이, 휴지걸이, 욕조 옆에 놓을 수 있는 작은 의자 등으로 단순하고 정적이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제르바소니의 새로운 인도어 컬렉션을 전시한 박람회장 부스

아트 갤러리로 변신한 카시나 쇼룸

우먼 파워 in 밀라노
그 어떤 곳보다 개방적인 디자인 분야에서도 ‘여성 디렉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번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2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유독 반가운 이유다. 먼저 스페인 출신인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그녀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 공간은 오랜 파트너인 모로소의 박람회장 부스다. 일본의 전통적 리셉션 룸 도코노마(tokonoma)를 차용한 구조로 디자인해 별다른 장식 없이도 아늑하고 집중도 있게 제품을 전시할 수 있게 했다. 카시나 부스도 그녀의 진두지휘 아래 한층 젊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1927년 설립해 90주년을 앞둔 이탈리아의 대표적 가구 브랜드 카시나가 최초로 여성, 그것도 외국인인 그녀를 아트 디렉터로 파격 선임한 것. 1950년대 중반 릿펠트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은 부스 디자인은 카시나가 모던 건축가의 가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비아두리니에 위치한 카시나 쇼룸 역시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마블링 효과를 접목한 벽 장식과 단 몇 점의 가구만으로 완벽한 갤러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스승인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마라룽가 소파에 대한 오마주로 십자형 지지대로 쿠션을 받치고 있는 빔 소파(The Beam Sofa System)도 출시했다.
파올라 나보네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이탈리아의 모던 가구 브랜드 알플렉스, 박스터와 협업해 국내에서도 에이스 에비뉴를 통해 그녀의 제품을 꾸준히 만나왔으니 이미 친숙하게 느끼는 이도 있을 터. 특히 제르바소니와는 1998년부터 아트 디렉터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제르바소니는 인도어와 아웃도어 컬렉션을 각각 박람회장과 비아두리니 쇼룸에 분리 전시했는데, 특유의 ‘유목민 감성’을 반영해 밝고 화사하게 단장했다. 내추럴한 소재와 패브릭에 대한 그녀의 폭넓은 이해로 ‘이국적이면서 편안한’, 자연 친화적 인테리어를 구현하는 최적의 선택이라는 평을 들었다. 슈퍼스튜디오 피우에서 베네치안 유리공예 기업 바로비에르 & 토소와 함께한 ‘컬러’ 프로젝트도 눈길을 끌었다. 무라노 유리로 장식한 5가지 컬러, 5가지 스타일의 유르트(몽골인의 이동식 원형 천막)를 설치, 무라노 유리의 컬러를 경험하는 환상 여행을 테마로 한 전시였다.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디자인한 모로소의 벨트(belt) 소파

 

Interview with Paola Navone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상의 사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죠. 그 사물의 괴상한 점 혹은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는 게 너무 즐겁거든요. 영감은 어디에서 얻죠? 언제 어디서나 내 주변의 모든 세상이 영감의 원천이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흰색과 파란색을 좋아하나요?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눈에 띄네요.
물과 공기의 색이 굉장히 매력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푸른색을 가장 좋아하죠. 부드러움, 강렬함, 화려함, 즐거움, 현대적, 전통적 등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주죠.

제르바소니의 신제품 중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NEXT136 테이블. 저는 재료와 기술을 혼합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테이블은 알루미늄 캐스트 다리 위에 우드와 카라라 대리석, HPL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상판을 매치할 수 있죠.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처음 봐도 친숙하고, 오래 두고 써도 질리지 않는 편안한 디자인.

향후 5년, 10년 후의 디자인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나요?
지구의 자원에 대한 경외감을 바탕에 깐,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거예요.

카르텔의 대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탐구한 ‘Talking Minds’ 전

라포 엘칸과 협업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전시한 비아투라티 플래그십 스토어

페루치오 라비아니가 디자인한 카부키(Kabuki) 플로어 램프

카르텔 제국
박람회 기간에 발길 닿는 곳곳에서 카르텔을 만날 수 있었다. 카르텔 회장으로,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가구협회 의장을 맡은 클라우디오 루티(Claudio Luti)의 디자인에 대한 애정과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할 정도.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가구를 생산한 기업 정도로 여겨왔지만 현지에서 카르텔은 ‘아이디어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최고의 디자인 기업’으로 인식된다. 박람회장에서 카르텔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11명의 아이디어를 들여다본다는 컨셉으로 디자이너 룸을 만들어 신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스위스 욕실 가구 브랜드 라우펜(Laupen)과의 협업을 통해서는 플라스틱 소재의 강점을 살린 컬러풀한 현대 욕실을 제안했다. 동시에 비아투라티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이탈리아 최고 멋쟁이 라포 엘칸(Lapo Elkann)과 협업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공개했다. 자사의 아이콘적 모델에 자동차 래핑 기술을 접목해 패셔너블한 컬러와 패턴을 입힌 제품이다. 비아산토스피리토에 위치한 N。21 부티크에는 페루치오 라비아니가 디자인한 새로운 타티(Tati) 레이스 램프를 전시했고, 몬테나폴레오네 시모네타 라비차 플래그십 스토어 윈도는 그들의 신상 포리시마 백과 함께 루이 고스트와 빅토리아 체어를 어울리게 디스플레이했다. 그 밖에 이탈리(Eataly)와 펙 같은 푸드 스토어에서도 카르텔의 사인과 제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카르텔 제국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케보의 토끼 의자

토요타의 셋수나 컨셉카

GTV의 푸리아

동심에 빠지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발견한 ‘동심’ 키워드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먼저 스테파노 조반노니가 새롭게 런칭한 케보(Qeeboo). 플라스틱으로 만든 25가지 가구와 조명, 오브제를 제안하는데 친밀함을 컨셉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스테파노가 직접 디자인한 토끼 의자는 앞뒤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으며(토끼의 귀를 손잡이 또는 등받이로 활용) 불이 들어와 조명까지 겸한다. 니카 주판츠(Nika Zupanc)의 리본 등받이 의자와 체리 모양 펜던트 램프는 많은 여성의 동심을 자극했다. 토넷 체어로 유명한 GTV에서 선보인 푸리아(Furia)는 비치목을 구부려 만든 우아한 라인의 현대적 목마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한편 토요타에서 선보인 셋수나(Setsuna) 컨셉카도 가족과 함께한 추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인 건축가 나오히코 미쓰이가 유년 시절에 경험한 가족의 첫 차를 상상하며 만든 것. 삼나무 패널을 활용해 보트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곡선 라인으로 완성했다.

특별한 전시 현장

넨도의 ‘50 Manga Chairs’ 전시

빛 받은 50개 의자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가 일본 만화 ‘만가’에 사용하는 추상적 라인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50 Manga Chairs’ 설치를 선보였다. 만가는 에도 시대(17~19세기) 일본에서 발전한 만화 혹은 만화 형태의 소설이다. 만가 컬렉션의 모든 의자는 광이 나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었으며, 만가의 디자인 요소를 적용한 것이 특징. 어떤 의자는 말풍선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또 다른 의자는 의자 뒤쪽에 여러 개의 막대를 부착하는 이른바 ‘효과선 장치’를 통해 땀이나 눈물 등의 감성적 상징을 표현했다. 넨도는 “만가는 한 페이지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며 “인물이나 배경의 움직임에 방향, 속도를 더하기 위해 그려 넣는 효과선을 본뜬 디자인 요소를 첨가해 의자 자체가 스토리를 지닌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만가가 색칠 없이 흑백으로만 표현하기에 의자에 색을 입히거나 텍스처를 표현하지 않고 ‘거울 마감’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마감 기법 덕분에 주변 사물과 환경이 의자에 반사되어 효과선이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빛반사 또한 극대화해 신비로운 느낌까지 자아낸 이색 현장이었다.

한스 판 벤텀이 재해석한 바카라의 메디시즈 베이스

브레라와 바카라
유서 깊은 예술대학 브레라에 등장한 바카라의 쇼케이스, ‘Baccarat, Lumie‵res out of the Box’.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목적으로 사용한 컨테이너가 그대로 무대가 되어 크리스털의 영롱한 빛을 풀어놓았다. 마르셀 반더스와 아릭 레비가 각각 바카라의 아이코닉한 제니스 샹들리에와 아르데코 스타일의 튈 드 샹들리에를 재해석해 선보였지만, <노블레스>가 주목한 인물은 조각가 한스 판 벤텀(Hans van Bentem)이다. “일반적으로 크리스털은 전통적이고 정적인 소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크리스털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뜨거운 열기와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죠. 우아한 아름다움에 내재된 열정과 혁신을 표현해줄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았습니다.” 바카라의 CEO 다니엘라 리카르디의 말이다. 한스 판 벤텀은 네덜란드 태생으로 헤이그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활동해왔다. 현대적 사물을 크리스털 같은 럭셔리 소재를 활용해 전통적 공예 기법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장기. 그의 손을 거쳐 1909년 프랑스 동부 국제박람회에서 에티오피아 황제가 구입해 유명해진 메디시즈 베이스가 크리스털 조각으로 뒤덮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메디시즈 베이스를 선택한 건 역사성 때문이죠. 게다가 1m 높이의 압도적 크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에스허르 박물관 프로젝트를 통해 새, 별, 우산, 상어 등 색다른 형상의 샹들리에를 만들었는데 베이스는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고요.” 바카라와의 협력 과정은 어땠을까. “바카라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명품 그 자체죠. 특히 커팅 기술은 바카라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 같아요. 빛을 찬란하게 산란시키고 크리스털을 보석처럼 표현해주죠. 그야말로 세계 최고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자비에르 마리스칼이 그린 론 아라드의 초상

론 아라드에게 경외를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모로소의 밀라노 쇼룸은 론 아라드의 제품으로만 채운 특별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25년간 돈독한 관계를 이어온 최고의 디자이너를 위한 브랜드의 헌정 쇼다. 모로소는 1952년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트리시아 모로소의 부모가 설립한 회사. 198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묘책으로 론 아라드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1991년 그와 모로소의 첫 합작품인 스프링 컬렉션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본래 금속으로 만든 그의 빅 사이즈 이지 암체어를 천으로 감싼 버전이었다. 스프링 컬렉션은 론 아라드 최초의 상업적 컬렉션인데 이를 통해 모로소는 업홀스터리 전문 기업에서 컨템퍼러리 가구 브랜드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시명은 ‘스프링을 기억하자(Spring in Mind)’. 어두운 입구를 지나 강렬한 레드 컬러를 입힌 스프링 컬렉션의 모든 암체어가 한꺼번에 등장해 조명을 받고 있는 메인 신이 압도적이었다.

‘Room of Origin’ 전시

에드바르트 판 플릿의 스시 체어

밀라노의 네덜란드 디자인
네덜란드의 텍스타일 & 퍼니처 디자이너 에드바르트 판 플릿(Edward van Vliet). 모로소의 스시 컬렉션 가구와 모오이의 카펫 컬렉션을 통해 알게 된 그를 만난 건 브랜드 쇼룸이나 전시장 부스가 아닌, 두오모 인근 팔라초 프란체스코 투라티의 한 파빌리온에서다. 자신의 25년 디자인 인생을 회고하는 의미를 담은 ‘기원의 방(Room of Origin)’ 전시를 통해 그의 인생 역작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했다. “텍스타일은 굉장히 감성적이고 따뜻한 매개체입니다. 공간의 맥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요.”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텍스타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드래건 등 동양적 요소와 아라베스크 같은 아랍의 이국적 요소를 접목한 그만의 우아한 지오그래픽 패턴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컬러는 블루. 모오이를 통해 델프트 블루 컬러로 일본의 하늘을 표현한 ‘더치 스카이 컬렉션’ 카펫을 새롭게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작품집을 출간한 데 이어 온라인 숍을 런칭했다. 디자이너의 도전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톰 딕슨과 시저스톤이 함께 선보인 팝업 레스토랑

지구를 맛보는 레스토랑
톰 딕슨이 인조대리석으로 유명한 미국 카운터톱(마감재) 브랜드 시저스톤과 함께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17세기에 지은 로톤다 델라 베사나 교회에 공기, 대지, 물, 불을 컨셉으로 한 4개의 키친 공간을 연출했다. 공기라 이름 붙인 첫 번째 키친은 도시 건축에서 영감을 얻었다. 화이트 컬러의 석재 선반을 세웠고, 음식과 공기가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설명해주는, 이를테면 머랭 같은 디저트류를 제공했다. 대지의 키친은 고대 로마의 아치를 본뜬 구조물을 배경으로 채소가 자라는 카운터톱을 등장시켰다. 대지의 색을 표현한 상판과 톰 딕슨의 원목 & 금빛 소품, 화이트 컬러 조명이 어우러진 공간. 불의 키친은 좀 더 어두운 톤의 시저스톤 석재를 활용했고, 골드와 코퍼 컬러 아이템으로 화염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물의 키친은 빙하가 깨진 것처럼 뾰족한 얼음덩어리를 연상시키는 장식이 특징. 시저스톤 매개체로 건축과 디자인이 서로 영감을 주는 협업을 진행하고 싶었다는 톰 딕슨. 음식은 이탈리아의 한 푸드 스튜디오가 맡아 진행했는데 굳이 음식 맛을 설명하진 않겠다. 컨셉이 더 중요한 공간이니까.

디모레 스튜디오의 인터미션 전시

감성을 자극하는 가구 한 점
밀라노의 아방가르드 기업 디모레 스튜디오(Dimore Studio)는 매해 디자인, 예술, 건축, 패션을 아우르는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전시를 선보여왔다. 브레라 예술지구에서 진행한 이번 인터미션(Intermission) 전시는 ‘최상의 장인정신’을 ‘휴식’의 정서와 결합해 표현한, 그들만의 색다른 전시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신제품인 금속 가구와 조명을 이와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패브릭, 벽지와 더불어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어두침침한 공간은 1960~1970년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 7가지 테마의 휴식 공간은 빛과 패턴, 음악과 질감 등 ‘오감’을 자극하는 서로 다른 디자인 요소로 채웠다. 스카르파(Scarpa)의 거대한 베니니 샹들리에가 인상 깊었고, 퍼의 일종인 에스팔리에 클로케(Espallier Cloqu′e)를 뒤집어씌운(그것도 핑크색으로) 암체어에서도 섬세하면서 절제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패션 브랜드의 새로운 소명

비아보르고스페소에 위치한 보테가 베네타 홈 부티크

2016 에르메스 메종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던 테아트로 베트라의 멕시코 파빌리온

의식주,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이 3가지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좋은 생활을 영위하는 조건이다. 그 때문일까, 많은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에서 의복을 넘어 주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루이 비통은 몬테나폴레오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마르셀 반더스와 함께한 오브제 노마드 신작을 선보였다. 오브제 노마드는 루이 비통이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와 협업해 만드는 가구 & 여행 액세서리. 캄파나 형제, 바버 & 오스거비 등에 이어 선정된 올해의 디자이너는 마르셀 반더스다. 개인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디자인 활동을 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휴대가 가능한 오아시스”라고 설명했다. 3개의 모듈을 퍼즐처럼 맞춰 하나의 긴 라운지 체어를 이루는 형태다. 첨단 탄소섬유로 제작해 아주 가볍고 강하다. 염색하지 않은 가죽을 씌워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한 멋을 더한다고. 보테가 베네타는 비아보르고스페소의 18세기 건물 안에 자리 잡은 홈 부티크를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공개했다. 고풍스러운 벽화와 석조 기둥, 대리석 흉상 등으로 꾸민 우아하면서 격조 있는 공간에 정제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마감, 장인정신을 발현한 제품을 전시했다. 깔끔한 라인이 특징인 루디 의자, 스웨이드를 덮어씌운 6단 서랍장, 인트레차토 모티브를 적용한 브론즈 소재 테이블, 애시 컬러에 테두리를 산화 처리한 은으로 마감한 자기 다이닝 세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옷과 액세서리로 여성을 가꾼 것처럼 실내를 아름답게 장식해야 하는 소명을 느낀다는 펜디. 펜디 까사에서는 건축가 마르코 코스탄치가 토속적인 가면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벨륨(Velum) 조명과 모피로 만든 태블릿 형태의 아트 피스를 소개하기 위해 박람회장에 부스도 지었다. 에르메스는 테아트로 베트라(Teatro Vetra)의 한 파빌리온에서 메종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임 아티스틱 디렉터 샤를로트 마코 페렐망(Charlotte Macaux Perelman)과 알렉시 파브리(Alexis Fabry)의 지휘하에 에르메스의 가치와 창의성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가구와 오브제가 등장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에르메스 이퀘블레 컬렉션 중 얇은 가죽을 겹쳐 팽이처럼 만든 오브제

Interview with Charlotte Macaux Perelman(이하 C) & Alexis Fabry(이하 A)
2014년 11월 에르메스에 합류한 후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소감은 어떤가요?
C & A 정말 흥미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라는 문구처럼 새롭지만 동시에 에르메스의 진정성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을 선보여야 했으니까요. ‘지속성’과 ‘재탄생’의 균형을 맞춰야 했죠.

이번 전시 공간의 컨셉은 무엇인가요?
C 멕시코 건축가 마우리시오 로차가 디자인한 이 파빌리온은 투포(tufo)라는 화산재로 만든 블록 1만7000여 개를 쌓아 완성했습니다. 중앙 파티오를 중심으로 4개의 방이 자리하는데, 3.7m 높이의 기둥 73개가 둘러싸고 있어요. 파빌리온의 구조가 약간 딱딱하고 기하학적이지만 화려한 장식 패널로 색감을 가미해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11년 에르메스 홈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런칭한 이후 제품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제품은 무엇인가요?
C 이퀘블레(Equilibre) 컬렉션이 우리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크기가 작은 오브제지만 정확하고 안정감 있는 비율로 한데 어울렸을 때도 더없이 조화롭죠. 북엔드, 잡지걸이, 휴지통, 돋보기… 20면체로 이뤄진 문진은 굉장히 기발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품입니다.

이번 시즌 가구 컬렉션은 어떤가요?
A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와 함께 오리아 데르메스(Oriad’Hermès) 컬렉션을 런칭했습니다. 바우하우스 양식인 튜브식 스틸 가구에 대한 오마주 같은 작품으로, 침착하고 균형감 있는 선이 특징이죠. 에르메스의 노하우와 최고급 소재를 통해 최상의 안락함을 구현했고요.

에르메스 홈 컬렉션이 전하고자 하는 에르메스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A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겸손함을 추구합니다. 또 에르메스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건축이 디자인보다 오래간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와 협업을 많이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라운지 체어

에디터가 뽑은 Brand New Design

Classicon
Pli Side Table 클래시콘은 아르데코 시대의 디자인 여제 아일린 그레이의 가구와 조명을 생산하는 독일 디자인 & 가구 브랜드. 올해 콘스탄틴 그리치치와의 협업 25주년을 기념해 그의 히트작인 다이아나 테이블, 비너스 체어, 오르쿠스 책상 등을 블랙 에디션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에디터가 마음을 뺏긴 제품은 프랑스 디자이너 빅토리아 윌모트(Victoria Wilmotte)의 플리 사이드 테이블이다. 각각의 분절된 금속판을 이은 것으로 환상적인 멀티 프리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Moooi
Perchlight Branch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조명이다. 종이의 조형미와 브라스 재질의 고급스러움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터키 출신 디자이너 우무트 야마크(Umut Yamac)가 2014년 플로어 램프로 첫선을 보인 디자인을 펜던트 램프로 새롭게 선보였다.

GTV(Gebrüder Thonet Vienna GmbH)
Rühering 마이클 토넷이 1850년에 디자인한 토넷의 가장 아이코닉한 제품 중 하나인 No.1 체어의 등받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라운지 체어다. 1904년에 처음 출시한 옷걸이의 요소도 차용해 멀티 기능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토넷의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오마주가 잘 드러난 제품. 우드 프레임의 블랙 래커칠과 붉은 가죽 시트의 컬러 대비도 강렬해 공간에 확실한 포인트가 될 듯.

Riva1920
Icon 어떤 장식이나 소재의 결합 없이 월넛 하나로 완성한 마스터피스. 이 테이블을 디자인한 마테오 툰은 “나무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리바1920은 공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목재를 가장 순수하게 사용하는 브랜드라며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가구 디자인 트렌드에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말을 보탰다.

Magis
Officina 망치로 두드려 철의 형태를 주조하는 오래된 기법으로 프레임을 제작한 로낭 & 에르완 부룰레크 형제의 오시피나 컬렉션. 지난해에 테이블을 런칭한 데 이어 올해는 의자와 스툴을 추가했다. 매우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그 안에 전통과 현대적 소재 및 기법의 만남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다. 인더스트리얼풍 가구 같은 느낌이 들지만 우아한 매력이 동시에 느껴지는 흥미로운 제품.

Baxter
Craklé Little Armchair 안토니노 쇼르티노가 디자인한 박스터의 새로운 아웃도어 컬렉션 가구다. 라인과 소재, 컬러는 모두 1970년대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올해의 패션 트렌드와 흐름을 같이한다. 무두질한 소가죽을 매치했는데, 야외용으로 쓸 수 있도록 물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표면을 처리했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디자인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