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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여행자

LIFESTYLE

호텔 벽면에 중국의 화풍이 짙게 밴 그림을 그리거나 브라질 여행길에 구해온 세라믹을 사용해 레스토랑을 꾸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세계 곳곳을 탐험하며 얻은 디자인적 영감을 공간에 펼쳐내는 라사로 로사 비올란을 만났다.

사진 선민수

바르셀로나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라사로 로사 비올란(Lazaro Rosa Violan).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스페인에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급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현지인들은 새로 생긴 레스토랑이나 모던하다고 소문난 호텔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곳이라고 말할 정도.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각 나라를 돌며 독창적인 문화와 역사를 메모해 디자인에 반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아르누보 스타일에 카탈루냐 분위기를 더하거나 프렌치 스타일에 동양적 터치를 가미하는 식으로 여러 문화와 역사가 공존한다. 현대적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미션을 받아도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낸다. 스페인과 유럽뿐 아니라 미국, 아프리카, 중국 등 세계 곳곳으로 영역을 넓히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전파하고 있는 핫한 디자이너. 이렇게 숨은 보석 같은 존재를 한국에서 놓칠 리 없다. 라사로 로사 비올란은 현재 국내 굴지의 기업과 손잡고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무더위가 끝날 무렵, 한남뉴타운 산꼭대기에 위치한 카페에서 운 좋게 그를 만났다. 오래된 앰프에서 1990년대 가요가 흘러나오는 인더스트리얼 분위기의 공간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탐색하더니 연신 멋있는 곳이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여유 있는 표정과 말투로 여행기를 들려주듯 자신의 삶과 디자인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 고풍스러운 코튼 하우스 호텔의 로비 2 네온사인으로 포인트를 더한 페드라사 레스토랑

일상에서 깨달은 공간 디자인의 힘
스페인 북부 대서양에 인접한 항구도시이자 바스크 문화의 중심지인 빌바오(Bilbao). 문화 예술로 유명한 도시답게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이 미술, 패션, 건축이 발전한 곳이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이 도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라사로 로사 비올란은 틈만 나면 담벼락에 올라가 집 구경을 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예쁜 집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미적 감각을 길렀다고 말한다. 재능도 남달랐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벨기에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자신의 키보다 큰 그림을 내놓았고, 열두 살부턴 대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청강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 덕분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법조계에 있지만 아버지는 그의 예술 활동을 반대하지 않고 적극 지원했다.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과 건축을 공부한 그가 인테리어 디자인에 뛰어 들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밥을 먹을 때였어요. 그런데 근처 레스토랑은 대부분 인테리어가 엉망인 거예요. 식사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죠.”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에 사로잡힌 그는 1990년 스페인 이비사 섬에 있는 친구의 레스토랑을 개조한 것을 시작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업계에 발을 들였고, 2002년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첫 스튜디오를 열며 세계 곳곳의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현재 100명이 넘는 직원과 함께 전 세계 26개국의 호텔, 레스토랑, 리테일 숍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팀원과 자유로운 토론을 이어가요. 항상 같은 스타일의 건물을 작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공간에 적합한 재료, 컬러, 스타일링, 가구 등을 구성하기 위해 의견을 주고받는 거죠. 비난이든 질의응답이든 뭐든 가능해요. 논쟁 끝에 결론이 나오거든요. 우리 프로젝트를 보면 그 결론이 여기저기 다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퓰리처(Pulitzer) 호텔, 바르셀로나의 프락티크 베이커리 호텔(Praktik Bakery Hotel), 멕시코시티의 오거닉 이탤리언 레스토랑 알렉산데르(Alekzander), 워싱턴 DC에 자리한 앤티크한 분위기의 태국 음식점 망고 트리 등 호텔과 레스토랑을 비롯해 스페인의 패션 그룹 인디텍스(Inditex)의 리테일 브랜드 오이쇼와 풀앤베어의 내부 인테리어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작업을 했다. 그는 다작을 해도 매번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는 이유로 여행을 꼽는다. 자신이 여행한 도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지역적 관습과 문화를 인테리어에 녹여 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스코틀랜드에서 작업한 이베리카(Iberica) 레스토랑은 스페인과 스코틀랜드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담고자 바이킹을 컨셉으로 했다.

1 아마존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아마소니코 2 여러 금속 소재를 덧붙여 만든 프랭크 조명과 라사로 로사 비올란

공간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 철학
호텔과 레스토랑은 전혀 다른 공간이다. 호텔은 고객이 편안하게 잠들고, 대접받는 기분으로 식사를 하고, 스파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도시의 아름다운 뷰를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루를 보내도 특별한 경험을 누려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난해에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코튼 하우스 호텔을 레노베이션했어요. 사람들은 미니멀한 객실 디자인, 맥시멀리즘과 네오바로크를 결합한 로비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지만, 제가 중요하게 여긴 건 어떤 디자인 사조나 유행이 아닙니다. 그저 고객이 이 호텔에 투숙한다면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바에서 술 한잔하며 춤을 추고, 객실에선 꿀 같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룸은 소품을 최소화하면서 화이트 컬러로 미니멀하게 꾸몄고 로비, 레스토랑, 바는 보기만 해도 흥이 나도록 고풍스럽고 화려하게 디자인했죠.” 반면 레스토랑은 길을 지나가던 고객의 발길을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국내 유명 미식 블로거의 포스팅에 등장한 마드리드의 아마소니코(Amazonico)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레스토랑이다. 라사로 로사 비올란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더 유명해지게 해준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브라질 스타일의 피카냐(Picanha), 아르헨티나 정통 스테이크 등 남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입구에 놓인 화려한 바가 고객을 맞이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다이닝 홀이 이어지는 구조다. 천장을 메운 초록 식물과 새 형상의 조명, 호랑이 얼굴을 그린 접시와 새를 수놓은 메뉴판까지, 정글 한가운데에 있는 듯 신비로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Super Cool’이라고 표현한 그는 이국적이고 멋진 공간이라 스페인을 방문한다면 꼭 한번 들르라고 추천했다.
같은 공간에 똑같은 가구를 설치해도 어떤 조명을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라사로 로사 비올란이 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조명이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먼저 자연적 빛이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체크해요. 그리고 햇빛과 흡사한 간접조명을 사용하려 하죠. 조명은 공간을 따뜻하고 풍부하고 섹시하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차가운 분위기가 고급스럽다고 여기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따뜻한 조명을 정확한 위치에 제대로 사용하면 패브릭 질감과 색깔 등을 멋스럽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반면 조명을 잘못 사용한 예로 테이블 중앙에 두는 초를 꼽았다. 반대편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그림자로 얼룩진 걸 본 적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는 최근 유럽 조명 브랜드 메탈아르테와 협업해 조명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유려한 곡선의 대리석 스탠드가 여성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에바,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여러 금속 소재를 덧붙여 만든 프랭크는 그가 디자인한 제품답게 유니크한 매력이 돋보인다. “전 늘 새로운 작업에 흥미를 느껴요. PGA, NBA와도 협업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제가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죠. 기회가 된다면 박물관을 디자인하고 싶고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많은 프로젝트를 소화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라사로 로사 비올란. 한계를 모르는 그의 예술적 열정과 도전정신이 깃든 결과물은 늘 기대된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라사로 로사 비올란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