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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미래지향적 건축은?

ARTNOW

자연의 법칙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 디자인을 시도하는 오늘, 건축계의 주요 디자이너들은 어떤 역사적 비평 의식을 바탕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을까?

1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 아부다비 루브르
2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의 그랜드 홀 전경
3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재단의 다중 파사드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건축 디자인을 보면 그 방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며 발전해왔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엔 기존 디자인을 기술력으로 덧씌워 내놓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세계적 건축 사무소는 자연의 모티브를 차용한 디자인을 마치 새로운 트렌드인 양 내놓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과연 미래지향적인 것일까?
20세기 이전의 디자인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명의 발전을 구현하는 디자인’은 거의 언제나 과거에 흥성한 특정 문명의 가치를 되살리는 형태로 나타났다. 예컨대 18세기 말 신고전주의 건축은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을 탐구하고 그 이상을 재구현한다는 망상에 기초한 것이다. 반면 20세기에 들어서며 잠시 대두했다가 사라진 아르누보는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을 구현하고자 애쓴 괴상한 유행이지만 자연을 따르는 디자인이 미래지향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아르누보가 몰락하고 본격적으로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보다 현대적 자의식이 나타났고, 미국 현대건축의 아버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년)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묘한 말을 남겨 진보적 조형을 향한 후대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다.
루이스 설리번은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꼽히지만, 사실 그가 유럽의 모더니스트에 상응하는 현대적 의식을 지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강의실에선 문제적 인물이 여럿 나왔다. 그중 건축가로서 가장 크게 성공한 인물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년)로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유기적 건축은 인류의 문화가 진보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구현하는 것을 뜻했다. 반면 루이스 설리번의 제자 중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은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년)다. 그는 장식을 거부하는 기능주의 디자인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장식과 죄악’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장식을 구사하는 디자이너들을 비문명적 충동을 실천하는 현대사회의 죄인으로 낙인찍었다. 알려진 대로, 장식타파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적 디자인 운동의 거점인 바우하우스로 이어졌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년)가 등장했다.
전후 모더니즘 건축이 자연에서 추출한 수리적 질서를 그리드로 구현하는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아웃사이더형 건축가였지만 벅민스터 퓰러(Buckminster Fuller, 1895~1983년) 같은 인물은 수리적 구조체의 실험을 통해 유기적 건축을 진일보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런 이상주의적 접근은 프라이 파울 오토(Frei Paul Otto, 1925~2015년) 같은 건축가에 의해 계승돼 잠시 주류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체로 오래도록 마이너리그에 남아 있었다. 벅민스터 퓰러의 망상을 이어받은 그레그 린(Greg Lynn, 1964년~) 같은 건축가는 알고리즘에 의해 자가 생성되는 블롭젝트(blobject)의 건축 구조를 탐구했지만, 기술 환경의 미발달로 기술과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자동 성장시키는 그의 디자인 방법론은 오래도록 가설적 망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접근 방식이 업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한 예로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기존 건축 문법에서 벗어난 제롬 세두-파테 재단(The FondationJ erome Seydoux-Pathe)의 건축설계는 그레그 린의 자가 생성 블롭젝트 실험을 참고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어려운 결과물이었다.
벅민스터 퓰러가 주창한 과학주의에 기반을 둔 유기적 디자인의 이상은 19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지난 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던 조형 감각이 하이테크 건축의 진일보한 엔지니어링 기술과 결합하면서 비로소 구현되기 시작했다.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 건축부가 <해체주의자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이라는 기획전에서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 1932년~),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5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년),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년~) 등을 한자리에 소환했을 때 이는 컴퓨팅 설계와 시뮬레이션 작업 환경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4 헤어초크와 드 뫼롱이 설계한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의 남다른 위용
5 연구용으로 제작한 그레그 린의 블롭월 파빌리온(Blobwall Pavilion), 2008

핼 포스터(Hal Foster, 1955년~) 같은 비평가는 프랭크 게리의 괴물 같은 건축이 ‘21세기의 아르누보’라며 맹공을 펼치기도 했지만 사실 정말로 21세기의 아르누보를 추구한 건축가는 자하 하디드였다. 프랭크 게리는 건물의 파사드에서나 해체주의적 조형 실험을 시도했을 뿐, 대부분 건물의 내부 구조는 박스 형태의 조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장 누벨도 ‘아부다비 루브르’에서만큼은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한 이중 구조의 돔으로 ‘또 다른 하늘이 되는 외피’를 구축하고 그 아래 박스 형태의 건축물을 배치하는 수법을 구사했다. 하지만 여타 경쟁자와 달리 자하 하디드는 건물의 내·외부를 하나로 연결, 통합하며 유기적 시뮬레이션의 동세를 구현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종종 큰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21세기의 건축 디자인은 이렇게 알고리즘을 통해, 기술과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도출하는 새로운 아르누보의 세계에 도달했다. 이것은 여러 시도가 하나로 결합된 결과물이다.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고 모방하는 르네상스적 행위의 재현이고, 특정한 과거를 고전으로 삼아 그 정수를 부활시킴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려는 것이며, 아르누보의 미래주의적 성격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자연과 기술 환경을 결합된 형태로 연구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영향에 의해 기술과 자연의 공진화를 고찰하고 유기적 형태를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과정 자체를 알고리즘화함으로써 탈인간적 비전을 구현하고 있다.
때마침 기존의 역사적 건물을 보존한 채 첨단 건축물을 증축의 형태로 구현하는 헤어초크와 드 뫼롱의 초호화 건축물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Elbphilharmonie Hamburg)가 문을 열었다. 예산 초과와 공사 지연으로 구설에 오른 사업이지만 개관 연주회 이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의 공간을 재생한다는 설정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래 구식 알리바이에 불과하지만, 이를 구현한 방식은 지금까지의 성취를 집대성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베르너 칼모르겐(Werner Kallmorgen, 1902~1979년)이 설계한 옛 창고 위로(실제로는 옛 건물의 외피만 보존한 것이지만) 범선을 연상시키는 매스를 가볍게 올려놓은 형태의 이 설계안은 사실 내·외부 모두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 1893~1972년)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을 모방한 것이다. 특히 콘서트홀 내부 디자인의 경우 “알고리즘을 활용해 최적의 음향 구조를 찾아내는 선택으로서 디자인 메소드를 구사했다”고 홍보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실제론 베를린 필하모닉 홀의 구조를 21세기 스타일의 유기적 디자인으로 표현하려 한 장 누벨의 실패 사례(필하모니 드 파리)를 참고해 더 나은 결과를 뽑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향 설계 과정에서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과장이며, 최고의 음향을 뽑아낸 진짜 주인공은 산토리 홀의 음향 설계를 맡은 도요타 야스히사다.
왜 2010년대의 인류는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이토록 복잡한 언어를 사용해가며 알리바이를 설정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하나다. 21세기는 문명의 진보를 부정하는 가운데 20세기를 데이터베이스로 삼는 상위 레이어로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런 21세기의 현실은 내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에겐 꽤나 다루기 힘든 오늘이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