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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의 고수

LIFESTYLE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이기진 교수를 인기 아이돌 그룹 2NE1의 씨엘 아빠가 아닌, ‘딴짓’의 고수로서 만나본 이야기.

 

이기진 교수의 삶은 단순 그 자체다. 아침엔 학교에 나가 전공인 마이크로파 물리학 연구에 열중하고, 점심엔 학교 밖 식당에서 동료들과 반주 한잔, 저녁엔 퇴근하자마자 학교 근처 헬스장에서 반전 몸매를 꿈꾸며 그날 남은 칼로리를 모두 소진한다. 그는 옷차림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옷 고르는 게 귀찮아 1년에 단 한 번 쇼핑한다. 청바지도 한 브랜드만 수십 년째 입고 있다. 티셔츠도 색깔별로 왕창 사서 돌려 입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찾는 카페에선 점원과 눈빛으로만 대화하고, 대학 때부터 다닌 술집을 지금도 다닌다. 이 정도면 가히 ‘심플 라이프’의 아버지인 스티브 잡스도 울고 갈 판이다. 그가 잡스처럼 유명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심플함의 단정함을 넘어선 어떤 ‘딴짓’의 욕구가 그의 맘속 깊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이 교수의 딴짓에 대해 한번 말해보자. 그는 앞서 말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지면 외국으로 훌쩍 떠나 몇 달간 여행하고 돌아온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부업이 돼 그간 동화책을 포함해 10권이 넘는 책을 펴냈으며, 그가 만든 도자기 소재 로봇은 파리 화단에서 실제로 고가에 거래되었다(프랑스의 유명 배우 에리크 쥐도르가 그의 작품을 약 700만 원에 샀다).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은 또 어떤가. 그는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어울리기 위해 서울 서촌의 낡은 한옥 한 채를 사들여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갤러리를 열었다. 내년에는 정식으로 웹투니스트로까지 데뷔하겠다고. 이렇듯 물리학자로서 늘 연구에 빠져 고리타분한 삶을 사는 그는, 연구실을 빠져나오면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무수한 딴짓에 빠져든다.

두 딸과 함께한 일본 유학시절의 한 때를 그린 그림

지난 30년간 물리학만 공부해온 이 교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쓰고 그리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어쩌다 보니’ 물리학의 <맛있는 물리>, <보통날의 물리학>, 어린이 동화의 ‘깍까’ 시리즈, 에세이 <꼴라쥬 파리>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한두 해마다 한 권씩 내놓는 작가가 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라는 이름의 에세이도 냈다. 그는 책에서 수십 년간 해온 골동품 수집에 관한 즐거움을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물론 과학자가 쓴 책임에도 과학 이야기는 전혀 없다. 대신 4050세대가 마땅한 취미(대부분 골동품 수집에 대한 이야기)와 설렘이 없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빼곡하다. “물리학만 온종일 팔 수도 있지만 이따금 다른 걸 하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근데 딴짓을 해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건 싫었어요. 뭔가 공부를 하고 싶었죠. 골동품 하나를 사도 그 배경에 깔린 역사를 파헤쳐 나만의 관점을 가지려 노력했어요.” 골동품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말해보자. 그는 골동품 수집 부문에서는 이미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교수 생활을 하며 틈틈이 세계 곳곳의 벼룩시장에 나가 얘깃거리가 있는 물건이면 뭐든 사 모은 덕이다. 하자가 있는 물건도 마찬가지. 손잡이가 깨져 다시 고친 전기 포트, 나무로 만든 낡은 개집,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를 튀니지의 호랑이 조각 등 온갖 물건이 날마다 그의 집과 연구실 책상 위에서 우아한 보물로 거듭났다. 그 수가 대략 얼마냐고? 자그마치 500여 개! “오래된 것에는 저마다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 사람의 정성과 흘러 온 시간에 대한 역사가 담겨 있어요. 그리고 그게 바로 제가 골동품에 빠진 가장 큰 이유고요.” 최근 그는 골동품 수집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감정을 깨달았다. 좋은 물건을 보고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물건을 모으는 열정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거창한 취미나 컬렉션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취미를 공유해줄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풀면, 보는 사람의 시점이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증거가 되기에, 관찰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 빅뱅을 보고 증거가 되어준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골동품 수집이 물리학과 전혀 관계없는 취미가 아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딴짓을 즐긴 걸까? 딴짓 고수 이 교수의 ‘기원’을 알아보려면 그의 청년 시절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나이 서른 즈음인 1980년대 후반, 그는 실로 여러 나라를 쏘다니며 유학했다. 1980년대 말에는 공산권 붕괴 직후 내전이 벌어지던 아르메니아에 수년간 머물렀고, 파리의 허름한 다락방에서는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불 한 채 들고 건너간 일본의 대학에서 7년을 머물 땐 글을 못 읽는 딸들을 위해 그림책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어려운 살림에 고생도, 좌절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긴 외국 생활로 그는 인생관이 크게 바뀌었다. 그는 책상에서 할 수 없는 인생 공부를 현지 사람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했다. 지천명을 넘어선 그가 꾸준히 ‘딴짓’을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시 터득한 ‘어떻게든 삶은 살아진다’는 어떤 경험에 근거한 가치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의 활동이 정해진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 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 그의 부모님 덕이 크다. 역시 물리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느닷없이 날짜 하나를 주며 “그날이 집안 행사인데 시간 있으면 오든지” 하고 말한 뒤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물리학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누가 피아노를 치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따라 치듯이’ 그가 물리학을 시작했을 뿐이다. 부모님을 통해 터득한 그의 교육법은 어린 딸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자유롭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게 하되 결코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 교육법. 그의 큰딸 채린(씨엘)이 데뷔 초 유난히 또래 아이돌보다 자유분방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 건 이 교수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잘하는 게 없어 물리학자가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교수지만, 세계적인 국제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저명한 물리학자다. 비록 지난해 초 신청한 연구비가 승인되지 않아 밀려오는 슬픔보다 모처럼 떠난 여행에서 괜찮은 골동품 하나 건지지 못한 슬픔이 더 크다고 말하는 그지만, 언젠가는 그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연구 성과로 지금보다 더 괜찮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평범한 이 시대의 가장이다. 올겨울이 끝나기 전 포르투갈로 기나긴 골동품 여행을 떠난다는 그가 어떤 진귀한 물건을 가져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왼쪽부터_ 오래된 것엔 저마다 역사가 숨어 있다고 믿는 이 교수의 골동품들. 연필이 깎이면서 빨강, 노랑, 파랑 불빛이 순차적으로 켜지는 연필깎이, 파리의 화단에 데뷔한 경력이 있는 도자기로 만든 로봇, 해외 벼룩시장에서 구한 강철 와이어로 만든 달걀 커터, 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실밥 터진 야구공, 파리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빈티지 커피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