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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언어

ARTNOW

유단 작가는 오래 봐온 사물에서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음식과 주얼리라는 언어로 풀어낸다. 음식 위 고명이 단순한 맛을 넘어 미학적 울림을 더하듯 주얼리 역시 한 사람의 정체성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화면에 놓인 작은 장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온 기억과 취향, 그리고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유단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호박 속의 호박’, 2025.

먼저 자기 자신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주신다면요? 안녕하세요. 저는 회화 작업을 하는 화가이자 수집가인 유단입니다.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예술을 접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예쁘고 반짝이는 것에 끌린 것 같아요. 진주나 금속 조각 같은 장식을 보면 한참을 응시했고, ‘이걸 그림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늘 상상했죠.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도 사소한 아름다움을 보며 표현 방법을 떠올렸고, 그렇게 쌓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길로 이어진 것 같아요.
한국화를 전공하셨죠. 전통 회화의 어떤 매력에 이끌리셨나요? 어릴 적부터 아름다움에 끌린 경험이 한국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사실적 묘사보다는 여백과 생략을 통해 전체를 드러내는 동양화의 표현 방식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다 그리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전해지는 정서, 그 안에 숨어 있는 과감한 색채 배치가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큰 화면에 인물이나 사물을 소박하게 표현한 경우도 많아 그 섬세한 결을 발견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늘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작업을 ‘또 다른 언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림을 통한 표현은 말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말은 짧은 순간에 생각을 담다 보니 종종 더듬거리거나 원하는 만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 그림은 시간을 두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쌓아 올릴 수 있죠. 그래서 한 장의 그림이 여러 마디 말보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제게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언어이자 진실한 표현 방법입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과 주얼리도 그런 언어의 일부일까요? 제가 실제로 먹은 음식은 작업의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제가 선택해 섭취한 것이 결국 제 피와 살이 되어 존재를 형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미국의 격언 “I am what I eat(내가 먹은 것이 곧 나다)’처럼 작품 속에서는 자아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주얼리는 여기에 덧입히는 일종의 고명 같은 존재입니다. 음식 위 고명이 빠졌다고 본질이 달라지진 않지만, 고명은 그 음식의 정체성을 한층 선명하게 보여주죠. 주얼리 역시 없어도 한 사람의 존재는 변함없지만 그걸 더했을 때 개성과 아름다움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주얼리를 작품에 차용했고, 음식과 주얼리로 표현한 작업은 결국 나 자신을 비추는 하나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개의 편도결석’, 2024.

‘Untitled’, 2025.

‘돌꽃’, 2025.

‘Gem Tempura Udon’, 2024.

주얼리에 대한 애정도 큰 것 같습니다. 요즘 특히 관심을 두고 보는 보석이 있을까요?저는 아름답게 세공된 금을 좋아합니다. 특히 앤티크 주얼리를 눈여겨보는데, 무광 처리한 표면이나 화려하고 섬세한 금세공 장식을 보면 감정이 크게 흔들려요. 그 감정의 동요가 자연스럽게 제 작업 속에 스며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영감이 스며드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을 그릴지 정하는 순간이 제 작업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주제를 정한 뒤에는 선택한 보석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하죠. 평소에는 먹은 음식을 기록해두거나 소재가 될 만한 음식은 사진으로 남기고, 특히 미각적으로 강렬한 경험은 감각 속에 저장해둡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석을 보러 가는데, 그 시간이 제게는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흥미로운 건 보석을 보면 불현듯 제가 먹은 음식이 떠오른다는 점이에요. 보석과 음식이라는 전혀 다른 두 대상이 제 안에서 연결되는 순간이죠. 예를 들어 빨간 산호를 보고 떡볶이를 먹던 추억이 겹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산호와 만나 화면 속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제 작업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곤 합니다.
일상의 사물에서 특별한 의미를 끌어내는 작업이 인상적인데, 최근작 ‘호박 속의 호박’ 역시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늙은 호박을 주문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겉은 이미 늙어 약해 보이지만 그 속에선 여전히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나 자신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습니다. 저 역시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며 제 안의 가능성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호박을 본 순간 제 삶과 작업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이번에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열리는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대학 시절 ‘평안’을 주제로 연작을 시도했어요. 당시에는 표현이 미숙해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지 못했고, 그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 안에는 꽃과 풀밭, 고양이처럼 사소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미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성숙하고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
사진 유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