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연금술사
38년간 한결같이 쇠를 녹이는 주물장이로 살아온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 그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건 수많은 작품이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그의 열정이다.

흙투성이의 푸른색 작업복, 약품에 얼룩진 투박한 손, 우렁찬 목소리. 공간미술 박상규 대표는 언뜻 보기엔 푸근한 시골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그의 모습은 어린 시절 보던,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길을 오르던 동네 아재였다. 하지만 그는 야무진 손재주를 바탕으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완도 장보고 동상, 국회 로고, 부산국제영화제 핸드 프린팅 등 전국의 수많은 금속 조형물을 제작하고 7년 전 붕괴 위기에 놓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수한 솜씨 좋은 주물 장인이다. 이외에도 조각가 최규원의 ‘탄생’, 조각가 박석원의 경북도립미술관 전시 작품을 제작해주는 등 울산, 대전, 이천 등지의 지역 조형물까지 합하면 38년 동안 그가 제작한 금속 조형물은 1만 점을 넘는다.
박상규 대표가 주물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청동 조형물을 만드는 주조 공장 동신미술을 운영하던 사촌 형 때문이었다. 열다섯 살 무렵 형의 공장에서 어깨너머로 작품 제작 과정을 구경하다 주물 작업에 매료된 것. 별다른 특색 없는 고체의 금속이 물처럼 녹아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계속 봐도 질리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멋진 동상을 만드는 일이 그의 인생 목표가 됐다. “힘들어도 38년 동안 주물 작업을 해온 이유는 정말 재미있어서예요. 고체의 금속을 한데 섞어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건 여전히 너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재미있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었던 박상규 대표는 순천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주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학교를 졸업한 후엔 창틀의 새시를 만드는 일진금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4년쯤 일했을까. 1990년 그를 주물 세계로 인도한 사촌 형이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형님이 함께 힘을 모아 주물 작업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형 작품도 제작할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을 확보하고 최신 장비도 구입했습니다. 둘이 힘을 모으니까 일감도 많이 들어오고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우리에겐 10년 내에 주물 전문학교를 만들자는 원대한 꿈이 있었거든요. 매일 일을 마치고 둘이 모여 학교 짓는 이야기를 하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죠.”
그렇게 꿈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던 무렵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사촌 형은 세상을 등졌고 그는 홀로 불상 공장, 종 공장 등을 전전하며 4년간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기술이 있으니 다른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갈 순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낙오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혼자라도 형님과 함께 꿈꾸던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1 2009년 제작한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2 전남 완도 장보고 동상
2000년 경기도 김포에서 자본금 300만 원으로 시작한 그는 하루에 4시간씩 일하면서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공장이 군사보호지역에 위치한 터라 2008년 이천시 설성면으로 다시 작업장을 옮겨 새롭게 출발해야 했다. 그동안 고생하며 어렵게 일궈온 터전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막막했지만 박상규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5000평 부지에 일반 주조부, 디자인부 등 제대로 된 부서를 갖추고 국가의 정식 허가를 받은 현대적 주물 공장을 설립했다. 깔끔한 주물 솜씨는 물론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공장이라는 이점이 작용해 2008년 회사 설립 이후 전남 완도 장보고 동상,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 동상은 제 주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동상이 10~20년 감상하고 버릴 물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동시대를 대변하고 대대손손 전해질 문화유산이니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청동 22톤을 사용할 정도로 엄청난 대작이었습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은 합금인데, 주석을 제대로 넣어야 부식을 막고 작품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청동은 주석의 함량이 높을수록 품질이 우수한데 3종, 2종, 7종, 6종, 1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3종은 주석이 11%, 2종은 9%, 7종은 7%, 6종은 6%, 1종은 4%로, 작품을 만들 땐 무조건 3종을 사용합니다.”박상규 대표는 모든 금속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스테인리스 주물 제작에 독보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1990년부터 스테인리스 주물을 주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2013년에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스테인리스 주물 이전에는 조형물을 제작할 때 백동을 사용했는데 너무 뿌연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스테인리스는 녹는점이 굉장히 높아서 1650~1700℃가 돼야 주조를 할 수 있어요. 손으로 가공할 수 있는 구와 같은 매끈한 조형물을 만들 때는 1650℃, 지문, 머리카락과 같은 세밀한 표현을 하고 싶을 땐 1700℃로 맞춰 주조합니다.”
3억 원이 넘는 용해로와 5000만 원가량의 금속 성분 분석기를 갖췄다 해도 정확한 합금 비율과 온도에 맞춰 주물을 붓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스테인리스 작품을 제작한다 할 때, 스테인리스와 망간 등 금속 재료를 넣은 후 1650~1700℃까지 온도를 올려 완전한 액체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금속이 제대로 녹지 않으면 주물이 부어지지 않아요. 설사 완벽하게 녹았다 해도 작품에 맞는 적정 온도를 맞춰야 하고요. 물론 온도 측정계가 있지만 세밀한 온도는 기술자가 직접 주물의 상태를 보면서 정해야 합니다.”
직원들과 흙먼지 앉은 밥을 먹으며 38년 동안 주물 일에 매진해왔으니 이제 여유를 누려도 되련만 여전히 그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주물 작업과 사촌 형과 함께 세우기로 한 주물 학교 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 이미 안성에 1만 평가량 땅을 구매해 공간 설계 작업에 매진 중이다. “주물 제작 과정도 보여주고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부스도 만들려고요. 에밀레종을 만든 우리 선조의 업적부터 현재의 발전 과정까지 주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죽기 전에 꼭 이루었으면 좋겠어요.”
쇳물장이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바람대로 머지않아 ‘안성에 주물 박물관이 개관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 희망을 품어본다. 그는 스스로 주물에 미친(狂)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높은 궤도에 미친(及) 마이스터로 정정해야 옳을 듯싶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