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파리에서 만난 친구
에르메스는 경쟁적이지 않다. ‘최초의’, ‘유일한’이라는 문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공격적이지 않으나 능동적이다. 에르메스의 유일한 관심은 고객을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다. 런던과 파리에서 에르메스의 주 고객인 ‘남성과 말’을 위한 행사를 경험하며 그것을 확신했다.

남성을 위한 런던
요즘 남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라와 문화마다 다르겠지만, 에르메스가 제시하는 코즈모폴리턴 남성상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유 있고 세련된 스타일과 취향을 가지고 자유로우면서 보편적 정서를 배려하는 남성. 남성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이 준비한 2019년 S/S 컬렉션을 접하면 추측이 확신으로 바뀐다. 런던의 옛 우체국은 과거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주위를 감싼, 네덜란드 출신 만화가 요스트 스바르트의 작품을 담은 살아 움직이는 만화책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점잖은 런던 신사들이 무표정하게 뱉어내는 농담처럼 부담 없다.
몸에 자연스럽게 피트되는 블루종과 조거팬츠, 편안한 니트와 날렵한 슈트, 홀로그램이 연상되는 패턴의 가방과 활동적인 샌들, 스니커즈는 에르메스 특유의 차분한 무채색과 옐로 등을 통해 계절을 일깨운다. 특히 런던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발레리노이자 안무가 애크램 칸, U2의 베이시스트 애덤 클레이턴, 떠오르는 셰프 잭슨 박서, 발레리노 에드워드 왓슨 등이 특별히 모델로 나서 에르메스의 남성상을 구체화하는 데 한몫했다.
쇼가 마무리되자 각국 프레스와 VIP는 팝업 레스토랑에서의 시식, 가죽으로 손수 제작한 주크 박스 체험,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보는 이벤트, 커스텀 스카프 패턴의 만화책이 가득한 잡지 가판대 방문, 밴드 공연 관람 등 남성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재미로 가득한 광장으로 안내받아 런던의 밤을 맘껏 즐겼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소 에르메스 경기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축제의 한 장으로, 지난 2010년부터 개최되었다. 승패에 관계없이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어 벌이는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다양한 경기뿐 아니라 승마 관련 체험과 용품을 살펴볼 수 있는 행사도 펼쳐진다.
최초의 고객을 위한 파리
런던에서 흥겨운 밤을 보내고 다음 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점심때쯤 파리에 도착해 그랑 팔레로 향했다. 에르메스가 선보이는 승마 경기 ‘소 에르메스(Saut Herme‵s)’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에르메스는 늘 ‘우리 최초의 고객은 말’이라고 강조해왔다. 이는 마구 제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에르메스의 본질을 알려줌과 동시에 ‘말’을 만족시킬 정도로 세심한 디테일과 서비스를 내재했음을 뜻한다.
말은 에르메스에 브랜드의 동기이자 목적이며, 친구인 셈이다.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에르메스가 2010년부터 국제장애물 점핑 경기를 선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해도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그랑 팔레에서 소 에르메스가 열렸다. 프랑스승마연맹과 국제승마연맹이 공인하는 가장 높은 등급인 CSI(국제 장애물 대회) 별 5개의 난도에 해당하는 시합으로, 최고 기량을 갖춘 기수 50명과 신예 기수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경합을 벌였다.
그랑 팔레에 모인 수많은 관중은 기수와 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노부부와 부모 사이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말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어린이까지, 모든 연령층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장애물을 뛰어넘는 경기인 만큼 장애물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 스페인 출신 국제 경기 코스 디자이너 산티아고 바레라 우야스트레스가 설계한 장애물은 그 자체로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품위 있는 표정의 기수들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승마복을 입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기름과 빛으로 빗질한 듯 윤기 흐르는 갈기를 휘감은 말들이 도도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깔끔하게 장애물을 통과하는 말도, 간혹 장애물 앞에 멈춰 서는 말도 우아하기는 매한가지.
소 에르메스는 모두 아홉 경기를 치른다.
오프닝 경기 ‘프리 뒤 그랑 팔레/No.1’, 이 경기를 통과한 각각 10명의 남녀 기수가 메인 경기인 소 에르메스 CSI 5에 출전 할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프리 에르메스 셀리에르/No.3’, 10명의 여성과 남성 기수가 각축을 벌이는 1.6m 장애물 경기 ‘소에르메스/No.6’, CSI 5 스타 기수들이 2회전을 도는 1.5m 장애물 경기 ‘프리 드라 빌 드 파리/No.8’, 소 에르메스의 대표 경기 ‘그랑 프리 에르메스/No.10’ 등이 있다. 특히 대표 경기인 그랑 프리 에르메스 CSI 5에서는 에르메스의 파트너 기수인 시몽 델레스트르가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랭킹 19위의 시몽 델레스트르는 장애물 경기에 출전한 15명의 기수 중 가장 빠른 34초 68을 기록하며 두 번째 클리어라운드를 마쳤다. 2년 연속 우승한 시몽델레스트르는 자신의 말인 에르메스 라이언을 거론하며 “라이언이 너무 자랑스럽다. 라이언은 소 에르메스의 역사에 한획을 그은 말로,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에르메스는 이번 행사에서 새로운 점핑용 안장인 비바체를 선보였고, 마장술 아티스트 로렌조는 12마리의 루시타노 말과 함께 ‘르 앙볼’이라 명명한 화려하고 경쾌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말 등이 아닌 평지에 서 있는 듯한 로렌조의 균형 감각과 12마리 말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에르메스가 준비한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페가수스의 안장에 올라 헤드셋을 착용하면 누구나 그랑 팔레의 유리 천장 위로 솟아오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소수가 아닌 가족을 위한 스포츠, 그리고 그 중심인 말을 배려하는 행사에서 에르메스 고객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에디터 이윤정(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