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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트 신의 새로운 대안, 페컴 레벨스

ARTNOW

런던 남동부에 자리한 크리에이티브 허브, 페컴 레벨스를 둘러싼 우려와 기대.

페컴 지역 미술가 린다 스콧(Linda Scott)이 꾸민 페컴 레벨스의 외벽.

지난 12월 8일, 런던 남동부 서더크(Southwark)에 크리에이티브 허브, 페컴 레벨스(The Peckham Levels)가 문을 열었다. 53개의 예술가 스튜디오, 레스토랑, 요가 연습실, 헤어 살롱 등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이 공간을 두고 런던 미술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페컴 레벨스의 탄생 과정 그리고 논란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런던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재생을 유도하는 주요 동력이다. 하지만 이 산업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의 작업 공간은 런던의 살인적 렌트 비용으로 인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영국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런던 동부가 문화 예술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케이스. 특히 지난 2014년 이곳 버몬지(Bermondsey) 지역에 위치한 예술가 스튜디오 비스킷 팩토리(Biscuit Factory)가 아파트 재개발 사업으로 매매되면서, 이곳에서 작업하던 400여 명의 예술가는 갈 곳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런던시는 부랴부랴 예술가의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목받은 곳이 런던 남동부의 자치구 서더크의 페컴(Peckham)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 주차장 건물이다.

페컴 레벨스 전경.

페컴은 런던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 촉발한 2011년 영국 폭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기도 한 만큼 동네 평판 역시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영국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인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와 캠버웰 아트 칼리지(Camberwell College of Arts), 덜위치 픽처 갤러리(Dulwich Picture Gallery)와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 같은 유명 갤러리가 위치해 나름 아트 특구와 같은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또한 골드스미스의 컨템퍼러리 갤 러리가 올해 오픈을 앞두고 있어 페컴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와해된 런던 동부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페컴 지역에서도 주차장 건물이 주목받은 데에는 미술, 음악, 공연 등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비영리 예술 단체 볼드 텐던시스(Bold Tendencies)의 역할이 컸다. 지난 2007년 페컴 주차장 건물에 작은 사무실을 열며 자리 잡은 이들은 그곳에 루프톱 바를 열어 페컴을 런던 젊은이들이 찾는 힙한 지역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지난 2014년 주차장 자체를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선보이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이벤트를 벌여 페컴 주차장을 영국에서 ‘가장 진화한 주차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성과를 고려해 서더크 자치구 의회는 이곳을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만들기로 했고, 개발을 위한 디자인을 공모했다.

레벨 5&6에는 도심에 식물을 가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린 커뮤니티 어번 그로스 런던(Urban Growth London)이 꾸민 실내 정원이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을 디자인한 건축가 듀오 셀가스카노(SelgasCano)의 기획안이었다. 페컴 주차장의 터줏대감인 볼드 텐던시스가 운영을 맡고 런던에 코워킹 스페이스 붐을 일으킨 세컨드 홈(Second Home) 이 부동산 개발에 참여해 약 800개의 예술가 스튜디오를 비롯한 대규모 작업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테이트 모던, 서펜타인 갤러리 등 영향력 있는 미술계 관계자의 지지로 이 기획안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하지만 서더크 자치구 의회는 페컴 주차장이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주차장 일부 공간에 50여 개의 예술가 스튜디오를 만들고, 이외의 공간을 젊은 사업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사용하도록 계획한 부동산 개발사 더 컬렉티브(The Collective)의 기획안을 선택했다.
런던 예술계는 이 결정에 반발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할 대안으로 800개의 예술가 스튜디오 조성이 유력한 상황에서 단 50개의 예술가 스튜디오를 만든다니 그럴 만도 했다. 일부 젊은 예술가들은 ‘Car Park Reject’라는 문구가 적힌 에코 백을 메고 다니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의 반응 역시 좋지 않았다. 더컬렉티브와 함께 이곳을 운영할 단체 메이크 시프트(Make Shift)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미 페컴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브릭스턴(Brixton) 지역에서 페컴 레벨스와 비슷한 성격의 컨테이너 파크 팝 브릭스턴(Pop Brixton)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의 개성을 무시한 채 비즈니스적 측면만 강조해 주민을 화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페컴 레벨스는 컬렉티브의 주도 아래 문을 열었다.

페컴 지역 고유의 문화를 반영한 칵테일 바 니어앤 파(Near and Far).

콘크리트 주차장, 모두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진화
8731m2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페컴 레벨스는 총 7개 구역으로 나뉜다. 우선 입구로 볼 수 있는 그라운드는 주차장과 커뮤니티 가든, 지역 업체와 페컴 레벨스의 멤버를 위한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갖췄다. 이어지는 레벨 1&2는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종사하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이다. 런던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오픈 실크스크린 워크숍 서드 레일 프린트 스페이스(3rd Rail Print Space), 포토그래피 스튜디오 브라이트 룸스(The Bright Rooms), 도자 스튜디오 킬른 룸스(The Kiln Rooms) 그리고 뮤직 리허설과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사운드 레벨스(Sound Levels)가 자리했다. 이 모든 공간은 월 회원제로 운영하며, 이곳에서 작업하는 이들에겐 지역 공동체와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레벨 3&4에는 비디오 잡지 < Guap >과 디자인 회사 플레이데이트(Playdate) 등 아트, 디자인, 음악 관련 크리에이티브 멤버의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멤버의 75%는 페컴에 사는 이들이다. 또한 이 지역 소재 스타트업 비즈니스와 작은 기업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램프(The Ramp)도 오픈할 예정. 레벨 5부터는 일반 방문객이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뮤직 라이브 스페이스 고스트 노트(Ghost Note)와 헤어 살롱, 아이들의 놀이 공간, 런던 남부를 베이스로 한 카페와 레스토랑, 바가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레벨 6에는 요가 연습실을 마련할 계획.
페컴 레벨스의 미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행히 오랜 기간 페컴 레벨스를 이끈 볼드 텐던시스가 앞으로도 서더크 자치구 의회의 후원을 받으며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상주할 예정이다. 이들이 메이크 시프트와 어떻게 공존할지, 나아가 페컴 레벨스가 런던 아트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많은 이가 주목하고 있다. 페컴 레벨스로 런던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확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다양한 해결책 중 하나로 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문화 예술 콘텐츠로 꾸려나갈 페컴 레벨스가 런던 아트 신을 환기하는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