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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트 통신

LIFESTYLE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런던 프리즈를 구석구석 들여다봤다. 그 근처에서 열린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도 놓치지 않았다. 환호할 만한 점도, 아쉬운 점도 있다.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후자에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1 프리즈 아트 페어에 참가한 막스 헤츨러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
2 관람객들이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국제 미술계는 런던의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 오프닝에 주목했다. 지난 11년간 런던을 국제 현대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한 주인공 ‘프리즈’. 영국의 화이트 큐브와 리슨 갤러리를 비롯한 미국의 메리언 굿맨과 데이비드 즈워너, 독일 갤러리 막스 헤츨러, 터키의 로데오, 아랍에미리트의 서드라인 갤러리, 한국의 국제갤러리 등 전 세계 30여 개국의 쟁쟁한 퍼스트 티어 갤러리 152개가 참여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며 참여를 희망하는 전 세계 마스터 딜러들의 웨이팅 리스트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 프리즈 런던의 자매 페어로 두 페어 모두 리젠트 파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는 고전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 그리고 런던 프리즈에 참여한 대부분의 현대미술 팬에게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는 인기를 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문명 이후 최초 회화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작품부터, 400년 만에 처음으로 관람객에게 공개한 17세기 북구 유럽의 거장 피터르 브뤼헐의 회화 작품 ‘The Census at Bethlehem’,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네, 툴루즈 로트레크, 시라, 휘슬러, 파카소,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작품이 대거 등장해 또 다른 미술사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두 페어의 VIP 오프닝을 포함해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페어가 열린 6일 동안 모든 입장권이 매진되는 이례적인 사례를 남기며 총 7만여 명의 관람객을 맞이한 프리즈 아트 페어는 이제 비단 국제 아트 마켓의 플랫폼만이 아닌 거대한 교육의 현장과 축제의 장으로 우뚝 섰다.

프리즈가 막을 내린 후 바로 그다음 주에 파리에서 개최한 피아크(FIAC)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트 페어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동안 명확하지 않은 브랜딩과 느슨한 퀄리티 컨트롤로 깊은 침체기를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그랑 팔레로 복귀하며 상황이 호전되어 런던의 프리즈를 바짝 뒤쫓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일부 미디어에서는 7만 명을 웃도는 올해의 관람객 수와 셀레브러티 명단을 토대로 런던 프리즈를 앞지른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문화적 다원성과 국제성을 겸비했을 뿐 아니라 최첨단 현대미술의 영역과 모던 마스터의 영역을 분리하고 아우르며 엄격하게 퀄리티를 유지하는 프리즈, 그리고 뉴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이저 옥션이 열리는 런던의 오라를 무시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10월의 화창한 햇살 아래 시작된 프리즈의 VIP 오프닝에는 마이애미의 루벨 부부, 호주의 그로스 부부, 그리스의 디미트리스 다스칼로폴로스 그리고 중국의 차오즈빙 같은 세계적 컬렉터와 마크 퀸, 볼프강 틸만스, 잉카 쇼니바레 같은 현대미술 작가, 미국의 MoMA와 LACMA,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테이트 미술관 등에서 방문한 다양한 미술 관계자가 함께했다.
관람객을 중심으로 새로이 설계한 여유로운 공간 디자인 때문인지, 아니면 유럽의 경기 침체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인지 여느 해와는 달리 다소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하우저 & 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를 비롯한 적지 않은 갤러리가 마크 브래드퍼드, 폴 매카시, 비크 무니스, 오스카르 무리요 등의 작품을 판매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또한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 카리 업슨의 매트리스 작품으로 부스를 꾸민 LA의 오버두인 & 키트 갤러리는 오픈과 함께 작품이 솔드아웃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4년 런던 지점 오픈을 앞둔 메리언 굿맨 갤러리도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비롯한 윌리엄 켄트리지, 피에르 위그의 작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데뷔와 함께 국제적 활동을 시작한 신진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a′n Villar Rojas)를 영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시켰다.

반면 가고시안 갤러리는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과 회화 작품 등 베르사유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개인전의 일부를 보는 듯한 작품으로 부스를 장식한 탓에 신선한 느낌은 없었지만, 각각의 작품 옆에서 경호를 서고 있는 보디가드의 모습이 마치 작품의 일부로 보이는 듯한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페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다소 저조하던 회화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컬렉터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게오르크 바셀리츠의 최근작 ‘Das Hemd Dist Nicht Gelb’(2012년)가 45만 유로(약 6억5000만 원)에 판매된 것을 시작으로 우베 코브스키 같은 라이프치히의 중견 작가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조각과 퍼포먼스 작품에 주력해온 폴 매카시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제작한 회화 작품 ‘She He Enis Penis Cut’(2013년)이 75만 달러(약 8억400만 원)에 판매되었고, 또 다른 미국 작가 레이첼 해리슨(Rachel Harrison)도 오랜만에 시도한 회화 작품 ‘Add to Cart’(2013년)를 비롯한 2점의 작품이 각각 5만5000유로(약 8000만 원)에 판매돼 회화라는 전통 장르에 대한 재해석 움직임을 예상케 했다.

이와 관련해 올해 프리즈에서 주목할 점은 다양한 지역에서 실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신생 갤러리들을 소개하는 ‘프레임(Frame)’이다. 신생 갤러리라고 신진 작가만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중견 작가도 포함되어 있어 프리즈 아트 페어가 다원성과 국제성을 고루 갖춘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임을 증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마이스테라발부에나 갤러리에서 소개한 64세의 지역 작가 네스토르 산미겔 디에스트(Nestor Sanmiguel Diest)는 이미 스페인에서는 중견 작가지만 영국을 비롯한 국제 미술계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전 작품이 매진되며 미술기관과 큐레이터들에게 특히 주목을 받았다. 또한 두바이의 알세르칼 갤러리 지구에 위치한 그레이 노이즈는 이슬람 수피 문화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을 주제로 작업하는 파키스탄의 신진 작가 메렌 무르타자를 소개하며 마켓과 비평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1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켄 오키시의 작품도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소개됐다.
2 런던 리슨 갤러리 부스 전경

프리즈 같은 국제적 아트 페어에 입성하는 갤러리는 최고의 갤러리로서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고, 그 퀄리티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갤러리를 선정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건 ‘작가를 바른 맥락에서 현명하게 브랜딩하고 후원하고 있느냐’다. 한마디로 갤러리는 좋은 전시를,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주의 깊게 확인한다. 잘 팔리는 작품만 거래해 마켓 수요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 그 수요의 흐름을 리드하는 것이 좋은 갤러리가 갖춰야 할 최고의 자존심이며, 이를 갖추었는지 여부는 최고의 갤러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또한 프리즈는 갤러리와 아티스트 그리고 큐레이터에게 수여하는 각종 미술상을 통해 현대미술의 실험적 가치를 장려한다. 각각의 갤러리는 주어진 부스 공간을 마치 전시를 구성하듯 신중하게 큐레이팅하고, 특별전과 뉴 커미션 프로젝트 같은 다양한 협업을 통해 미술기관의 높은 퀄리티를 페어에 도입하고 있다.

올해도 프리즈는 국제적 큐레이터로 심사위원단을 꾸려 다양한 미술상과 커미션을 진행했다. 샴페인 포므리가 후원하는 ‘프리즈 런던 스탠드 프라이즈’는 런던 갤러리 캐비닛에 돌아갔고, 이엠다시 파운데이션(Emdash Foundation) 후원으로 런던의 가스워크 레지던시 기관과 프리즈가 공동 진행하는 장소 특정적 커미션 프로그램에는 핀란드 비디오 작가 필비 타칼라을 비롯한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매해 테이트는 프리즈 런던을 통해 컬렉션을 구입한다. 이는 테이트 자체의 컬렉션 펀드가 아니라 프리즈가 아웃셋 현대미술 펀드와 함께 조성한 컬렉션 기금이다. 영국 현대미술의 자존심이자 인큐베이터인 테이트에 대한 프리즈 아트 페어의 작은 기여이자 선물인 셈이다. 매해 테이트 컬렉션팀을 비롯한 국제기관의 디렉터로 구성한 자문단이 깐깐한 심사를 거쳐 컬렉션을 선정하기 때문에 마켓과 인스티튜션의 부자연스러운 거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11년간 100만 파운드(약 180억 원) 상당의 작품 총 90여 점을 기증했으며 올해는 15만 파운드(약 2억5000만 원)의 펀드를 조성해 테리 애드킨스의 ‘Muffled Drums(from Darkwater)’(2003년), 크리스티나 매키의 ‘The Dies’(2008년), 제임스 리처즈의 ‘Not Blacking Out, Just Turning the Lights Off’(2011년), 스터티번트의 ‘Trilogy of Transgression’(2004년) 등 젊은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으로 선정했다.
프리즈 아트 페어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다. 이번 현대미술 경매는 예상가를 뛰어넘는 기록 없이 기존 가격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진행되어 관람객에게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10월 18일 크리스티에서 개최한 ‘20세기 이탤리언 미술’ 경매는 총 거래 최저 예상가인 1550만 파운드의 2배에 이르는 2680만 파운드(약 460억 원)를 기록하며 ‘근대미술에 대한 재고찰’이라는 동시대적 트렌드를 증명했다. 거래된 53점 중 10점이 이탈리아 모던 작가 루초 폰타나의 작품으로 최저 예상가가 120만 파운드였던 ‘Concetto Spaziale, Attesa’(1967년)는 200만 파운드(약 34억3000만 원)에 낙찰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5월 크리스티 뉴욕은 지구의 환경과 야생을 보호하는 ‘리오나도 디캐프리오 재단’을 돕는 자선 경매 ‘11th Hour Charity Auction’을 열어 국제적 아티스트의 참여를 독려, 3000만 달러(약 321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번 프리즈 기간에 이와 비슷하게 ‘찰스 사치’의 이름을 걸고 열린 ‘Big Thinking’은 입장료가 무료인 사치 갤러리의 운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 경매였다. yBa와 Post-yBa 작업으로 구성한 50점의 경매 작품 모두 실험적 사고와 재료가 돋보이는 조각 . 설치 작품으로 그동안 사치의 파워에 의문을 품고 있던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00만 파운드(약 51억 원)라는 총 판매 금액을 기록하며 소더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을 앞둔 2시간 전에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물론 트레이시 에민의 침대 작품 중 하나인 ‘To Meet My Past’가 48만1875파운드(약 8억3000만 원)에 낙찰돼 작가에게 경매 최고가 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이 한 작품의 판매가가 총 판매 금액의 6분의 1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경매는 참패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내년 현대미술 마켓에 대한 적신호인지, 사치의 취향에 대한 적신호인지는 2014년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듯. 경매라는 마켓의 단편적 국면만으로 동시대 현대미술 마켓의 생태를 점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러나 점점 더 무뎌가는 커팅에지의 날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직시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예술적 대안이 절실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구정원 JW STELLA(JW STELLA Arts Collectives 디렉터)  사진 제공 프리즈 아트 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