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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디올, 예술과의 만남

LIFESTYLE

디올의 시그너처 백 레이디 디올이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와 조우했다. 조각과 사진 작품으로 변신한 레이디 디올을 청담동의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 만나보자.

이완, 한국 여자, 2016

최정화,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러하리니: 끝없는 세상, 2016

황란, 영원한 뮤즈, 2016

레이디 디올이 탄생한 1995년,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마담 시라크는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이 가방을 선물했다. 다이애나 비는 어딜 가든 이 백을 들고 다녔고, 컬러와 소재가 다른 모든 버전을 주문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후 오늘날까지 까나주 스티치 장식의 사각형 형상, 아치형 핸들을 연결하는 골드 컬러 링, 무슈 디올을 기리는 이니셜 장식 등이 어우러진 레이디 디올은 전 세계 여성에게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뿐 아니라 레이디 디올은 사진작가와 비주얼 아티스트, 영화감독 등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은 디올의 뮤즈 마리옹 코티야르를 모델로 사진과 광고 캠페인 등 다양한 협업을 통해 레이디 디올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지난 2월 23일 청담동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 개막한 전은 디올과 예술가들의 꾸준한 예술적 교감을 총집결한 전시다. 디올은 2011년부터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을 투어하며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레이디 디올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선보여왔다. 국내에서는 지난해에 하우스 오브 디올 오픈을 기념하며 오유경, 홍정표, 박선기 등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는 닐 에일링, 아르네 캥즈, 피터 린드버그 등 그동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해외 작가들과 이번 전시를 기념해 새롭게 초대한 4명의 한국 작가가 모였다. 그 결과 조각 17점, 사진 8점 등 디올의 아이콘인 레이디 디올 백을 재해석한 작품이 탄생했다. 거칠고 무거운 금속, 작가가 집에서 모은 벽돌 가루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저마다 고유의 방식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정신을 표현했다. 특히 이번 서울 전시에서 첫선을 보이는 한국 작가 최정화, 황란, 이완, 수 서니 박의 작품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설치 작가 최정화의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러하리니: 끝없는 세상’은 못을 이용해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평소 플라스틱 통, 못, 고무 호스, 비닐 등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에서 영감을 얻어온 그는 우리가 느끼는 레이디 디올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작품을 통해 언제나 자신을 재창조하며 여성의 삶에 가치를 더하는 디올에 경의를 표했다. 붉은색과 흰색 단추를 활용해 화려한 매화나무를 표현한 황란 작가의 ‘영원한 뮤즈’는 작가의 주요 모티브와 레이디 디올을 결합한 것. “수수한 버튼을 선택한 건 평범한 인간의 존재를 비유하기 위함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수많은 버튼을 망치로 두드리는 반복적이고 명상적인 작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한편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서 그 안에 내재된 세계를 탐구해온 사진작가 이완은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레이디 디올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포착한 ‘한국 여자’를 공개했다. 오늘날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초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무한 질주에 내몰린 인간의 내면에 깃든 공허함을 담아냈다. 예술을 통해 디올이 선보이고자 하는 것은 크리스찬 디올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일 뿐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다. 늘 다양한 예술 장르, 작가와 협업하며 새로운 창조물을 선보이는 디올의 이번 전시는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MINI INTERVIEW
한국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부터 미국에서 거주해온 설치 작가 수 서니 박(Soo Sunny Park). 크랜브룩 예술학교(Cranbrook Academy of Art)와 콜럼버스 디자인예술대학(Columbu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조각과 페인팅을 공부했고 현재 미국 동부에 머물며 설치, 드로잉,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에 동참한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그물 무늬의 레이디’를 선보인 그녀와 나눈 이야기.

스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스틸, 아크릴 등을 사용해 작업 중인 수 서니 박

수 서니 박, 그물 무늬의 레이디, 2016

지난 2013년 미국 라이스 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을 통해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뉴햄프셔 외곽에 나무로 둘러싸인 집과 스튜디오가 있다. 그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로와 차,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규모가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환경, 분위기 등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내년쯤 커리어 뮤지엄 오브 아트(Currier Museum of Art)에서 선보일 소규모 작품과 대형 설치 작품을 그곳에서 작업 중이다.

지난 몇 년간 발표한 ‘Capturing Resonance’(2011년), ‘Boundary Condition’(2014년), ‘Lumiere’(2014년) 등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그 정체성을 충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작업의 키워드는 경계(liminality)다. 빛과 그림자, 조각과 드로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공과 자연, 그 사이의 영역을 들여다본다. 재료는 벽기둥, 유리, 석고보드 그리고 직물과 빛까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공간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간을 짓고 구조적으로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사용하는 것처럼 늘 재료의 본질을 뛰어넘고자 한다. 가장 최근에는 섬유와 빛을 이용한 대형 작품 ‘Silver Linings’(2015년)를 만들었다. 평소 쉽게 간과하는 빛의 존재를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당신의 작업에서 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무엇이고,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몇 해 전 미술 칼럼니스트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에세이 를 읽고 종이처럼 쉽게 손상되는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고 이전 작품에 활용한 금속 그물, 유리, 플라스틱 컵을 재활용해 작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플렉시글라스의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 재료를 자르고 레이저로 쏘고 에칭하고 그물로 엮은 다음 구멍을 뚫는다. 이런 작업 과정은 재료의 다양한 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다.

레이디 디올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 ‘그물 무늬의 레이디’에선 구성주의(constructivism)라는 예술 사조가 드러난다. 레이디 디올과 구성주의를 연관시킨 계기는 무엇인가? ‘그물 무늬의 레이디’는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태동한 구성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완성한 조각이다. 레이디 디올 백은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를 주목한 구성주의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모더니티와 실험정신을 추구한 초기 구성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이 그랬던 것처럼 알루미늄, 스틸, 아크릴 등을 사용했다.

사각형 투명 박스 바닥에 디올의 시그너처인 까나주 패턴을 놓고 그 위에 레이디 디올을 형상화한 조각을 설치했다.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가? 작품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하나는 바닥에 검은색 배경에 흰색으로 어우러진 까나주 패턴을 삽입한 양방향 플렉시 미러 박스다. 이 박스는 투명한 디스플레이 용기에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양방향 플렉시 미러 박스 안에 넣은 레이디 디올 백 형상의 조각이다. 이것은 내가 주로 사용하는 촘촘한 그물 모양의 알루미늄 스크린과 벌집 타공의 알루미늄 패널 같은 소재로 제작했다. 상자 속 조각은 반사되면서 끊임없이 겹치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음 작품 계획은? 그리고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동안 대형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최근 규모가 작은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평면 드로잉과 조각을 절충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올과 협업한 이번 프로젝트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큰 것만 생각하던 내게 다각도로 예술을 살필 수 있는 계기를 선사했다. 다양한 크기의 설치 작품을 통해 재료의 무한한 잠재성과 새로운 발견이 만들어낸 놀라운 세계를 선물하고 싶다.

에디터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제공 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