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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다소

ARTNOW

로랑다소는 프랑스의 거대 기업 중 하나인 다소 그룹의 부회장이다. 다소 그룹의 창업주 마르셀 다소의 손자이자 회사를 지금과 같이 성장시킨 세르주 다소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몽테뉴 거리에 소재한 프랑스 공공투자은행(BPI)에 15년간 몸담으며 평사원으로 시작해 은행장 자리까지 올랐다. 현재 그는 다소 그룹의 주력 사업인 항공 분야의 다각화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경매 회사 아르퀴리알(Artcurial), 와인 회사 샤토 다소(Chateau Dassault), 베이징과 황저우에 각각 문을 연 현대미술 갤러리 아드리앙 드 몽페랑(Hadrien de Montferrand)의 공동 대표를 맡아 경제와 문화 분야를 넘나드는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술 작품에 푹 빠졌음에도 늘 기업가다운 면모를 잃지 않는 그와 함께 미술품과 경매 그리고 와인과 인생에 대해 논했다.

중국 작가 쩡판즈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로랑 다소

지금 로랑 다소(Laurent Dassault)만큼 유럽 예술계의 중요 전시와 미술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열정적인 컬렉터가 있을까? 지난 수십 년간 그는 막대한 자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항공 산업에서 시작한 자신의 꿈을 점차 문화 산업으로 확장시켜나갔다. 또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전망이 어두운 이 시기에 ‘투자 포트폴오리의 다변화’를 논하며 여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갔다. 성공한 기업인답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그리고 와인과 예술을 사랑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골고루 갖춘 그를 만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일이었다.

일상의 풍경을 변형해 새로운 모습으로 풀어내는 프랑스 작가 필리프 코녜(Philippe Cognee)의 회화 작품

프랑스와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중국 작가 왕두(Wang Du)의 조각 작품 앞에 선 로랑 다소

예술품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술품에 대한 열정은 제 할아버지께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르누아르와 코로, 세잔 등의 인상파 화가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의 작품을 사 모으셨죠. 그래서 그 시절 할아버지 댁에 가면 늘 새로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는게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저와 형을 데리고 지금은 미술관으로 바뀐 갈리에라(Galliera)라는 미술 경매장까지 가서 저희 형제의 혼을 빼놓기도 했죠. 지금도 그 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새 작품을 사기 위해 차를 타고 경매장으로 향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가장 처음 산 작품을 기억하세요?
인상파 화가 테오 판 리셀베르허(Theo van Rysselberghe)의 작품입니다. 지금은 다소 그룹 내에서 제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경매 회사 아르퀴리알로 바뀐, 로레알 소유의 옛 아르퀴리알 갤러리에서 처음 그 작품을 접했죠. 수 십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당시 기억이 생생합니다. 벌거벗은 채 머리를 빗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테오의 작품을 보고 전 예술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현대미술 작품에만 관심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처음 산 작품이 인상파 화가의 것이라니 참 재미있습니다. 그럼 현대미술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1987년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된 아내 덕에 현대미술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제게 동시대를 사는 작들가의 작품을 ‘알아보고’ 또 ‘발견할’ 수 있는 눈이 되어줬죠.

중국에 갤러리를 연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재 갤러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아르퀴리알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2002년 제겐 아르퀴리알 미술 부서에서 디렉터 일을 하던 아드리앙 드 몽페랑(Hadrien de Montferrand)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데 어느 날 그에게 아르퀴리알을 나와 중국의 울렌스 재단(The Guy and Myriam Ullens Foundation)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물론 그 친구와는 이후에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가 당시 중국 미술계의 거물급 친구들을 수없이 소개해줬죠. 아드리앙 드 몽페랑 갤러리(Hadrien de Montferrand Gallery)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중국미 술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그와 친구인 올리비에 허버트(Olivier Hervet)가 훗날 제게 중국에 갤러리를 함께 차리자는 제안을 한 게 그 시작이었죠. 그간 그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우린 2009년 베이징 798 리거에 첫 갤러리를 열었고, 이후 지금까지 매우 극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중국 예술계는 이제 완전히 개방됐고, 우리가 정착한 798 거리는 갤러리와 레스토랑, 야외 조각 작품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로 수많은 젊은이와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죠.

말하자면 그와의 우정이 당신을 중국 미술계로 이끈 거군요?
아드리앙 드 몽페랑 덕에 중국 미술계를 발견한 것은 맞지만, 중국과 제 인연은 사실 와인으로 맺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96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중국인과 해외 주재원들을 상대로 샤토 다소 와인을 소개하는 행사를 기획했거든요.

중국 현대미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중국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경력이 비슷한 외국 작가의 그것과 비교해 그리 높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그들은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죠. 그래서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을 중국에선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저쪽 벽에 걸린 왕이(Wang Yi)의 추상 회화 작품 ‘Location 2013-2’ 같은 건 전 세 어계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을 많이 만들어 상업적 작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 ‘Midas Void’도 눈에 띕니다. 저 작품을 소장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는 분명 훌륭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소 한 마리를 열두 토막으로 잘라 박제한 ‘Mr. Death’ 같은 작품을 제가 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의 ‘Midas Void’엔 첫눈에 반했어요. 나비는 자유를 상징하고, 그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쓴 아름다운 색감은 감성을 자극하죠. 그래서 저에겐 저 작품이 특별합니다.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필리프 코녜의 회화 작품

왕이의 ‘Location 2013-2’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나요?
중국 작가 마오옌(Mao Yan)이 눈에 띕니다. 얼마 전 중국에 갔을 때 식사 자리에서 그를 만났죠. 그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아주 똑똑한 작가입니다. 문득 그가 그리는 제 초상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현재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현재 갤러리뿐 아니라 다른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이 고되진 않으세요?
글쎄요. 전 제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매 회사 아르퀴리알과 갤러리의 주주이고, 다소는 와이너리와 성능 좋은 비행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니까요. 노르망디 도빌에선 아르퀴리알의 분점 이사회 이사로서 말 경매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이 아주 높은 편이죠. 애초에 전 말 산업에 대한 열망도 컸는데, 최근 그 분야가 고속 성장을 하고 있죠. 그러니 어려움보다는 얻는 게 더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아, 도빌에서 진행하는 어린 말 경매는 아주 볼만하답니다.

저도 지난해에 그 경매를 봤어요. 경주 한번 뛰지 않은 어린 말의 가격 억대까지 오르는 걸 확인했죠. 한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죠?
2008년 이후 지구촌의 많은 자금이 계속 순환하고 있습니다. 큰돈을 가진 이가 점점 늘고 있고, 그들은 이제 주식 투자가 아닌 ‘다른’ 투자처에 관심이 많죠. 그런 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경주마가 포함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술계에 신흥 컬렉터가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주마 세계에도 새로운 컬렉터가 늘고 있는 거죠. 특히 어린 경주마 경매에 스페인과 인도, 카타르 등 ‘열정적인’ 국가의 컬렉터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 중 대부분이 예술품에도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는 8월 도빌의 아르퀴리알에선 어린 경주마 경매 시기에 맞춰 값진 보석과 예술품 경매를 동시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투자가 도를 넘어 검증도 되지 않은 어린 경주마의 가격이 하늘을 찌를 듯 오르는 것과 대학에서 갓 졸업한 미술가의 작품이 금세 억대를 기록하는 경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세상이 점점 글로벌화되고, 컬렉터 또한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려는 경향이 고조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린 경주마의 경우, 경주에서 늘 승리한 부모 말에게서 태어났다면 그 가격은 바로 열 배 이상 뛰게 돼 있죠. 마찬가지로 세계적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온 갤러리에서 택한 젊은 작가들에게도 그러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적용될 수 있겠죠.

현재 경영하고 있는 항공기 회사와 와인 회사가 예술 사업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소 그룹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사업과 와인 사업을 동시에 하는 회사입니다. 이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죠. 예전에 상하이에서 샤토 다소 그랑 크뤼의 첫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당시, 저는 홍보 포스터에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에 켜지는 빛을 그려 넣게 한 적이 있습니다. 사업과 사업은 이렇게 서로 이어지고,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죠.

아르퀴리알의 국제적 사업 확장에 관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 소더비와의 경쟁이 아르퀴리알 경매사에 과한 부담은 아닐까요?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자본이란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형성되기 마련이죠.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그림을 산 이들은 별 망설임 없이 아르퀴리알에서도 그림을 삽니다. 개인 제트기를 만드는 미국 걸프스트림의 전투기를 타본 이가 다소의 전투기에 관심을 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경쟁은 시장을 확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혼자만 있으면 시장이 커질 수 없어요.

그럼 이런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르퀴리알의 전략은 무엇인가요?
세계 정상급 컬렉터들은 주로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을 삽니다. 그 두 회사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분점을 운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린 이들을 굳이 따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여러 시스템이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우린 소위 ‘틈새시장’을 노립니다. 그간 앤티크 자동차와 만화, 시계와 보석, 빈티지 에르메스 백, 디자인 제품, 스트리트 아트 등을 통해 아르퀴리알의 주력 분야를 개척해왔죠. 만화 경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많은 이가 우리를 비웃었지만, 지금 아르퀴리알은 만화 경매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됐습니다.

‘틈새시장’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군요?
그렇습니다. 아르퀴리알은 크리스티나 소더비처럼 경매 총액이 수천억 원에 이르진 않지만, 되레 그 때문에 그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를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발전시키려 합니다. 그 대표적 예가 빈티지 자동차 경매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빈티지 자동차 경매( Retromobile)에서 무려 230여 대에 이르는 자동차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중 전 세계에 단 한 대만 존재하는 페라리도 포함될 거고요. 현재 추정가가 3000만~4000만 달러(약 360~480억 원)나 되죠. 그런데도 현재 전 세계 컬렉터의 문의가 끊이지 않아요. 우린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자동차의 기록을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술품과 와인, 말, 골프, 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에 고루 열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면 무얼 선택하시겠어요?
비행기입니다. 비행기가 없었다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의 다소 그룹 또한 없겠죠. 아, 갑자기 이런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다소 그룹의 비행기 공장은 애초에 프랑스 보르도에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샤토 다소라는 와인 회사를 세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경제부터 예술, 문화까지 삶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끄는 철학은 무엇인지요?
전 1977년부터 일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죠. 그중엔 좋은 사람도 있고, 별로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우린 무언가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2000년에 아르퀴리알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드리앙 드 몽페랑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중국 갤러리의 파트너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삶은 이렇게 만남과 만남으로 이뤄지고, 전 이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세상 곳곳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바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한국을 여행한 경험도 있나요?
10여 년 전에 한국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막 시작되던 때로, 그 중심에 다소 그룹의 전투기 중 하나인 ‘라팔’이 있었죠. 당시 전 한국 여행이 처음이었음에도 여러 곳을 방문했습니다. 현재 서울엔 다소 그룹의 자회사 중 하나인 다소시스템코리아가 있고, 거기서 일하는 엔지니어가 300여 명에 달하죠.

마지막으로 당신의 미술품 컬렉션을 세 섹션으로 분류한다면 어떤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을까요?
꿈, 고통, 마술입니다.

 

JOANA VASCONCELOS

포르투갈 출신의 여성 작가인 조아나 바스콘셀루스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2만5000개의 탐폰으로 만든 샹들리에를 선보여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페미니즘을 넘어 이 세계의 정치 그리고 사회 이슈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설치와 조각 작품을 주로 제작해왔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신사실주의 그리고 팝아트에서 두루 영감을 받아 일상의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이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베르사유 궁 현대미술 프로젝트에 초대됐다.

소재의 믹스 앤 매치와 대담한 조형성으로 주목받는 조아나 바스콘셀루스(Joana Vasconcelos)의 ‘Leopold’

JEANPIERRE RAYNAUD

장-피에르 레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프랑스관을 대표한 세계적 작가로, 파리 퐁피두 센터와 베이징 자금성에 설치한 초대형 화분 등 오브제 작업으로 유명하다.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작업해왔으며, 우리나라 곳곳에도 작품이 있다. 김포 국제조각공원에 세운 높이 15m의 국기 게양대 ‘경계 블록’,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에 놓인 대표작 ‘화분’ 등이 그것이다.

유리의 시인이라 불리는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대형 목걸이 작품과 프랑스의 삼색 국기를 타일로 표현한 장-피에르 레노(Jean-Pierre Raynaud)의 설치 작품

장-미셸 폴롱(Jean-Michel Folon)의 브론즈 작품 ‘새의 분수’

YAN PEI-MING

블랙과 화이트 또는 레드와 화이트를 이용한 대형 인물화로 널리 알려진 옌페이밍은 1960년 중국에서 태어나 문화혁명을 겪었고, 22세가 되던 해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가 작업한 마오쩌둥이나 오바마 같은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는 거친 붓놀림으로 내면세계를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1995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퐁피두 센터와 루트비히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론 아라드(Ron Arad)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의 미니어처 의자 컬렉션

중국 작가 원팡(Wen Fang)이 중국인 이민 노동자들의 사진을 벽돌에 인쇄한 설치 작품

중국 작가 옌페이밍(Yan Pei-Ming)이 그린 로랑 다소의 아내 마르틴 다소 초상화

ETIENNE BOSSUT

칠순을 앞둔 프랑스 작가 에티엔 보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자와 장화, 자동차 타이어, 프라이팬 같은 물건의 주조를 뜬 후 이를 색색의 플라스틱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에서 나아가 레디메이드 상품에 조각 과정을 더함으로써 이를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따라서 관람객은 주변에 흔하거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주목하지 않은 오브제에서 비로소 ‘예술성’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보쉬는 이러한 작품에 미술사적 맥락의 고찰을 담은 위트 있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일상의 오브제로 화려한 색과 위트있는 작품 활동을 하는 에티엔 보쉬(Etienne Bossut)의 ‘일곱 장소의 장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최선희(아트 컨설턴트) 사진 정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