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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에 가본 적 있나요?

LIFESTYLE

유럽 북동부 발트해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는 발트 3국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경제·무역 중심지다. 하지만 항구도시 리가의 매력은 사실 따로 있다.

1 리가 보스 미술관(Art Museum Riga Bourse) 외부 전경.
2 리가 거리를 거닐면 아르누보 건축물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이 도시가 생소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혹시 리가 가 봤어요?”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던졌지만, 들어본 적도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출발하는 직항 항공편이 없는 데다 대중매체에서도 거의 다룬 적이 없다. 하지만 리가는 알면 알수록, 깊게 파고들수록 이야깃거리가 많은 도시다. 건축, 음악, 미술 등 리가가 유럽 문화 예술계에 남긴 족적 또한 만만찮다.
리가의 시작점은 12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주교 알베르트가 세운 도시로, 한자동맹(중세 중기 북해·발트해 연안의 독일 주요 도시가 상업적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의 중심지였던 지리적 이점을 등에 업고 13~15세기에 중·동부 유럽과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나라가 리가를 지배하고자 눈독을 들였고, 1621년엔 스웨덴에 점령, 1721년부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라트비아가 드디어 독립을 이뤄내며 리가를 수도로 지정했다.

아기자기한 건축
리가는 19~20세기 초 유럽 등지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을 다수 만날 수 있는 도시다. 초기 건축물은 대부분 화재나 전쟁으로 소실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주요 건축물이 중세의 중심 도시였던 과거의 번영을 증명한다. 리가 건축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참신함, 새로움, 젊음을 뜻하는 ‘누보(nouveau)’와 예술을 뜻하는 ‘아르(art)’를 합친 단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기마르(guimard) 양식’으로 더 알려졌고, 아르누보라는 용어는 미국과 영국에서 주로 사용한다. 리가에서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식 아르누보를 뜻하는 ‘유겐트슈틸(jugendstil)’이 더 보편적이다. 리가엔 19세기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의 목조 건물이 생겨나기 시작, 이후 유겐트슈틸이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청춘, 청년’을 뜻하는 유겐트슈틸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한 건축이나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기를 든 양식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감성과 달리 완전한 창조와 자유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리가의 아르누보는 낭만적이고 자연스러운 건축을 강조한다. 꽃이나 잎 같은 식물과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와 직선보다는 곡선의 리드미컬한 패턴을 양식화한다. 리가의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가 새로운 건축 스타일을 구축하려 노력을 기울였고, 식물의 형태와 곡선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 미하일 예이젠시테인(Mihails Eizensˇteins)의 등장은 유럽 건축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리가에서 가장 유명한 아르누보 건축가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이 높은 그는 식물과 꽃에 상상력을 더해 자연스러운 디자인과 패턴을 만들고, 인간의 몸과 생물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리가만의 아르누보가 탄생했다. 그의 아들이자 <전함 포템킨>을 만든 영화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도 리가 출신이다.
특히 시청 근처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Riga)는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다. 리가의 역사지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2014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구시청사 광장엔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외에도 1년 내내 자리를 지키는 크리스마스트리 조형물이 인기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실제 크리스마스트리로 바뀌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역사지구 남쪽엔 리가 역과 1930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큰 마켓인 마켓 센트럴, 서쪽엔 다우가바강, 동쪽엔 신시가지가 둘러싸고 있는 리가의 도시 경관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역사지구는 이렇게 중세 도시의 면모를 간직한 채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리가 대성당, 루터교 교회이자 특징적 첨탑을 보유한 성 페트로 교회, 제2차 세계대전 중 완전히 파괴됐다가 2000년 재건축으로 지금의 모습을 되찾은 하우스 오브 블랙헤드, 자유 기념비 등도 리가의 명소다. 리가 곳곳을 거닐다 보면 중세의 고풍스러운 정취와 아르누보 양식 건물이 만들어내는 멋스러운 자태에 취하게 된다.

3 아기자기한 건축이 즐비한 항구도시 리가의 전경.
4 리가의 야간 골목 풍경도 낮 못지않게 아름답다.

음악의 도시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도시 경관에 걸맞게 리가엔 항상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흐른다. 리가가 낳은 음악가로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를 들 수 있는데, 첼리스트 장한나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한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 영재로 알려졌다. 1973년에 카사도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같은 리가 출신 음악가 크레메르, 아르헤리치와 함께 연주 활동을 하기도 하고 피츠버그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이스라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등과 협연했다.
리가의 음악적 영향을 받은 인물은 리가 태생 음악가만이 아니다. 1836년 여러 도시를 전전하던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잠시 정착한 곳도 리가다. 머문 시간은 2년뿐이지만 이 도시가 그에게 남긴 음악적 영감은 여운이 길었다. 바그너가 거주할 당시 리가는 러시아의 땅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페라 <리엔치> 작곡을 시작했고 리가에서 얻은 경험으로 가곡 ‘오 타넨바움’과 음악극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만들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페라하우스 건물과 1998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리가 오페라 페스티벌’도 리가가 음악 도시로 자리 잡는 데 공헌했다. 지난 6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리가 오페라 페스티벌은 해마다 열리는 축제로 라트비아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의 전통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주로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단의 시즌 공연 중 가장 사랑받은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데, 올해 페스티벌에선 <투란도트>와 <발렌티나>, <투레이다의 장미> 등을 선보였다.
리가 시민의 음악 사랑은 다양한 페스티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올해는 1873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라트비안 송 & 댄스 페스티벌(Latvian Song and Dance Festival)’이 펼쳐진 해이기도 하다. 지난 7월 8일 막을 내린 이 축제를 위해 라트비아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삼삼오오 리가로 모여들었다. 이 기간엔 대부분 라트비아 민속 의상을 입고, 축제 기간 내내 노래와 춤이 24시간 끊이지 않는다. ‘쾌락주의 축제’라는 별명으로 알려졌을 만큼 밝고 시끌시끌한 축제다. 7월 26일부터 28일까지는 ‘월드 재즈 페스티벌’이 개막한다. 올해는 4개의 페스티벌 콘서트가 열리는데, 레포르마치야스 광장(Reforma⁻ cijas Square)에서 열리는 야외 콘서트를 시작으로 안나마리아 요페크(Anna Maria Jopek), 토니 몸렐(Tony Momrelle), 캔디 덜퍼(Candy Dulfer) 등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국제적 재즈 아티스트의 콘서트가 이어진다.

5 ‘리가 오페라 페스티벌’에는 해마다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
6 리가의 인기 행사 중 하나인 ‘월드 재즈 페스티벌’.
7 작년에 리가에서 열린 ‘제3회 발틱 드러머 서밋(The3rd Baltic Drummers Summit)’.

‘리가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세계 아트 신에 일으킬 반향이 기대된다.

이제는 현대미술까지
하지만 중세의 매력을 간직한 도시 리가가 이제는 현대미술의 성지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올해 처음으로 ‘리가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Riga Internationa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 RIBOCA)’를 선보이며 세계 현대미술 신에 도전장을 내민 것. 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작가 카테리나 그레고스(Katerina Gregos)가 총감독을 맡은 대망의 첫 비엔날레는 ‘모든 것은 영원하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8일까지 열린다. 카테리나 그레고스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흐른다(Ta pa nta rhei)’라고 말했듯, 작은 유기체의 입장에서 보면 우주 전체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최근까지는 개인·사회·정치의 급진적 변화를 제외하고는 마치 변화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기술이 발달한 이후, 큰 변화가 갑작스레 우리 삶에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을 직시하려 합니다”라고 비엔날레의 주제를 밝혔다.
비엔날레에는 폴란드,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독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그리스, 한국에서 온 아티스트 100여 명이 참가한다. 출품작 113점 중 49점이 비엔날레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커미션 작품으로, 다른 어떤 전시보다 신선한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참여 작가 중 특히 작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루프 가든 커미션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관심을 모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a´n Villar Rojas)와 한국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앤 덕희 조던(Anne Duk Hee Jordan)이 눈에 띈다. 또 이 비엔날레는 예술 기관뿐 아니라 아니라 1900년대에 문을 닫은 볼셰비치카(Bolshevichka) 섬유 공장 등 리가 전역의 문화적·건축적 역사와 의의를 지닌 9개 장소를 무대로 삼았다. 중세와 19세기 전통 목조 건물과 아르누보 건축물이 예술작품과 같이 어우러지는 이 행사가 비엔날레 포화 상태에 이른 세계 아트 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
비록 경제·무역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렇듯 리가는 건축·음악·미술 등 볼거리가 넘치는 도시다. 러시아 민요의 번안곡으로 알려진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도 사실은 리가의 작곡가 라이몬츠 파울스(Raimonds Pauls)가 작곡한 리가의 음악이다. 7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베를린>도 베를린과 리가를 오가며 촬영했고, 발트 3국 중 한국인 교민 수도 가장 많다. 우리는 이미 리가라는 도시가 익숙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은 리가, 올여름 휴가지로 이 도시는 어떤가? 물론 1회 경유 항공편으로 편도 12시간이 걸리는 비행은 만만찮지만, 리가의 매력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길지만은 않다. 마침 RIBOCA도 한창인 데다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은 라트비아의 문화와 역사를 기리고 즐기는 ‘리가 시티 페스티벌(Riga City Festival)’이 열릴 예정이다. 라트비아의 최신 퀴진을 소개하는 팝업 레스토랑에서 스트리트 푸드를 사 들고 역사지구를 거닐어보자. 리가의 매력에 한껏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리가 사진 비엔날레’ 전경.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