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공명 하나
듀오 아티스트 믹스라이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주’라는 상황이 만든 흔적과 과정, 기억 등에 대한 관심을 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식물의 이주 이야기를 넘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믹스라이스
아티스트 듀오 조지은과 양철모는 2002년 믹스라이스를 결성한 이래 글쓰기,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등 다양한 매체를 조화롭게 아우르며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식물이 맞닥뜨리는 이주의 상황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2016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17녀 1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전시를 개최한다.

작품 앞에 선 믹스라이스의 양철모(왼쪽)와 조지은(오른쪽)
믹스라이스 Mixrice
해마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국내외 미술계 안팎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이슈는 단연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행보다. 예술가 4명(팀)을 선정해 전시를 선보인 후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는 방식 덕분에 전시장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격전장이 된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장은 수상자를 발표하는 10월이 다가오자 더 관람객으로 붐비는 양상을 보였다. 관람객은 4명(팀)의 작가가 출품한 작품을 감상하며 저마다 최종 수상자를 예측해보기도 했다. 올해의 작가상 2016 심사원위단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강제 이주되는 식물의 모습을 통해 커뮤니티의 붕괴 현상 그리고 시간과 역사의 단절에 대해 진정성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최종 수상자로 믹스라이스를 선정했다. 2013년 영국 출신 큐레이터 찰스 에셔(Charles Esche)가 주목하는 작가로 꼽은 믹스라이스는 2002년 결성 이후 글쓰기,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등양 다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듀오 아티스트다.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여러 흔적과 과정, 기억에 대해 탐구하는 현실 참여 작품을 선보이는 이들의 신작을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주목해야 할 예술가, 믹스라이스의 작품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1,2The Unknown, Urethane Foam, Clay, Trees, Farm Products(Pea, Kidney Bean, Adzuki Bean, Perilla, Red Pepper Seed), Dimension Variable, 2013
올해의 작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수상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 것에 대한 후련함과 만족스러운 느낌이 컸어요. 상을 받으면 좋지 만 안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비웠는데, 저희가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은 좋았어요.
믹스라이스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2002년에 노동자의 문화 활동 일환으로 이주 노동자를 위한 영상교실을 지원하기 위해 프로젝트팀을 구성했어요. 캠코더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주민센터에서 노동자에게 비디오 기기 작동법을 강의한 것이 발단이 됐죠. 팀 이름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동행하겠다는 의미로 ‘잡곡밥’을 뜻하는 믹스라이스로 지었고요.
그럼 이주민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이주’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네. 2006년 방글라데시 이주민 노동자 알럼이 기획한 연극 <불법 인생>에 출연하면서 그들과 협업을 시작했고, 그 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가구단지에서 이주 노동자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마석동네페스티벌(MDF), 패션쇼 등에 참여하면서 그들과 밀접한 교류를 이어왔어요. 지금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고요. 전엔 토크쇼와 인터뷰 등의 영상 작업을 통해 이주 노동자들과 만났는데, 이들과 협업할 다양한 기회가 생겨 본격적으로 이주를 주제로 이야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어떤 식으로든) 진화하는 식물 프로젝트, Two Channel Video, 17 Pigment Prints 10 min. 21 sec., 14 min., 2013
4(이주 노동자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마석동네페스티벌, 2012~2014
그동안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공연, 텍스트 등 다양한 영역을 개척했죠. 하나에 치중하지 않고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앞으로 다루고 싶은 매체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각 매체의 공백을 보완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전엔 사진과 벽화, 영상과 사진을 배치하는 시도를 했고 이번 전시는 그라피티와 땅을 보고, 영상을 통해 상황을 보고, 마지막으로 텍스트를 읽는 구조를 택했어요. 또 여러 매체를 구사하면 상상과 서사성을 드러내기 좋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완성작을 미술관에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고요. 앞으로 매체와 재료는 작품의 주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날로그적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구현하고 싶어요. 식물을 직접 채집하는 것처럼 손으로 구축하고 몸으로 경험한 것이 전시에서 드러나는 걸 소중히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요?
꼭 저희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오길 바라진 않아요. 저희가 제안한 서사 안에서 개인적 경험을 끄집어내고 다른 방식의 다양한 상상을 하면 좋겠어요. 전에 “미술관은 다른 세계와 만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희 작품이 누군가에게 삶의 경험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공간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덩굴 연대기, 2016,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적 경험이 이주 노동자에 관한 작업과 신작 속 식물의 이주라는 주제로 이어진 거네요.
이번 전시에서 식물에 이주 이야기를 담긴 했지만, 이주 노동자에 국한된 건 아니에요. 특별히 이주 노동자와 그들의 인권 문제를 부각하지는 않았어요. 저희는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정착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아파트 가격 등을 이유로 터를 잡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는 우리 모두 결국 이주민이 아닐까요? 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내리고 터전을 일구면서 사는 것이 예부터 이어온 삶의 방식인데, 이젠 표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래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식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재개발지역에서 뽑혀 이식된 식물의 이동 경로를 좇는 영상 작품 ‘덩굴 연대기’를 보면 식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치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슬픈 연대감이 느껴지더군요.
네. 산업 개발로 이웃의 소소한 관계와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식물도 평생의 터전을 떠나면서 오랜 시간성을 잃게되죠. 인간을 위해 식물을 옮겨 심는 건 자본으로 시간을 훔치고 지우는 행위예요. 식물의 시간성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식물과 같이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해요. 그래서 식물에 기대어 인간에게 정착이라는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식물이 뿌리내리는 모습을 통해 시간성, 정착, 끈질김,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간과한 ‘축적된 시간’과 ‘남겨진 시간’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아주 평평한 공터 2, 2006,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면?
삶과 밀접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공공 미술 전문 집단 삼거리와 충북 괴산의 탑골만화방 등의 네트워크 공간처럼요.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개입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고요. 삶 에속서 그런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작업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저희의 작업도 삶과 밀착돼 있으니까요.
믹스라이스의 중심에 놓인 철학이 궁금해지네요.
딱히 철학이랄 건 없어요. 어려운 얘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한국 사회가 계속 새것을 짓고 오래된 것을 없애려고 하잖아요. 이젠 시간과 관록이 눈에 보이지 않아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곳이 이야기가 많은 세계였으면 좋겠어요. 오래된 것이 많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 계획이 듣고 싶어요.
작업하면서 선후배, 친구 할 것 없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하루 날 잡아서 다 같이 한번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그런 것도 인생과 예술 작업을 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최윤정 (amych@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