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집 짓기
잡일을 하는 심부름꾼처럼 보이지만 어떤 조직의 책임과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 하는 리더십을 가리켜 우리는 서번트 리더 십(servant leadership), 즉 섬김의 리더십 이라 한다. 종교, 정치, 기업 경영, 심지어 연예계까지 강력하고 지배적인 카리스마 대신 이렇듯 다른 이를 섬기며 돌보는 태도 는 최근 들어 대중이 그들의 됨됨이를 평가 할 때 더욱 중요하게 보는 요소다. 상대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 입장을 공감하고 살피는 것,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채우는 ‘나 눔’과 ‘봉사’로 직결된다. 국제 비영리단체 해비타트 총재 조너선 렉퍼드가 지금껏 추 구해온 삶의 미션도 그런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안락한 거처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Habitat for Humanity, 이하 해비타트)’는 1976년 미국에서 설립해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 비영리 단체다. 해비타트는 특히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함께하는 NGO로 유명하다. 재임 기간에 ‘능력 있고 국민을 이해하는 정부’의 건설을 간절히 바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36년째 해비타트와 함께하고 있고, 지난해 미국 카리브해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어마’ 피해자를 위한 해비타트 콘서트에는 버락 오바마를 비롯해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조시 H. W. 부시 그리고 지미 카터 등 전 미국 대통령들이 재난민의 거주지 복원을 위한 기부와 모금에 동참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이때 “작년에 6700만 명의 미국인이 어떤 형태로든 자원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 숫자는 미국인 5명 중 한 명을 뜻합니다. 이제 나머지 4명도 우리와 함께해야 합니다. 미국이 계속 위대한 봉사의 국가로 남기 위해 함께해주세요”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감동적인 권유로 자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집’이라는 삶의 기반을 통해 가난의 고리를 끊고 집과 마을, 도시에 희망을 세워나가는 해비타트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자선단체로, 어려운 주거 환경에 처한 사람을 위해 직접 집을 지어주거나 집수리를 통해 삶을 개선해주는 것에서 나아가 빈민가 거주자들이 ‘새로운 시작’, ‘나만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면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부임한 조너선 렉퍼드(Jonathan T. M. Reckford) 총재는 지난 5월 방한한 자리에서 기부나 봉사를 말하기보다 왜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지, 그 성찰의 중요성을 말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005년 8월에 해비타트 총재로 취임한 후 지금껏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환경 개선에 힘쓰고 계십니다. 워낙 글로벌 프로젝트가 많아 모두 들여다보려면 늘 분주하실 것 같은데, 이번 한국 일정도 짧은 기간에 다양한 활동을 소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며칠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교회 두 곳을 방문해 설교했고, 미국상공회의소 조찬회는 물론 해비타트 자원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미디어를 만나 주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선 ‘솔리드 그라운드 캠페인’이 중요한 이슈였는데, 정확히 어떤 행사인가요? 쉽게 말하면 국제 주거 복지 지원 캠페인입니다. 각 나라의 주거 복지정책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사업이죠. 어떤 국가든 주택은 개인 자산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자 기회로 작용하지만, 불공정한 부동산 거래로 피해를 보는 입주자를 위해 주거 복지법과 주거권 개선이 필요합니다. 솔리드 그라운드 캠페인은 주거 복지정책 개선 사업에 중점을 두는 동시에 성 평등, 거주 기간과 빈민가 환경 개선, 재난 회복 정책 사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총재로 부임하기 전부터 해비타트에서 오랜 기간 자원봉사자로 활동 하셨습니다. 해비타트 봉사에 처음 합류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제가 월트 디즈니에서 일하던 1992년에 해비타트를 알게 되었어요. 디즈니와 해비타트는 기업 봉사자로 연계되어 있었고, 많은 동료가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죠. 저도 그렇게 동참하게 되었고요. 사람들에게 거주지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정말 파워풀한 경험이었죠.
그 전에도 다른 자원봉사 단체에 참여하신 적이 있나요? 노숙자를 돕는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교회를 통해 그들을 지원했는데, 어린아이들을 볼 때 특히 마음이 아팠어요. 아이들은 거주 환경이 안정되지 않으면 학교생활도 하기 어려워요. 그들을 돕는 과정에서 안정적 주거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골드만삭스, 서울 올림픽 한국 조정팀, 메리어트, 디즈니, 베스트바이, 그리고 해비타트 총재로 오시기 전 교회 목회자까지, 이력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우선 서울 올림픽 조정팀 코치는 어떻게 맡게 되신 건지 정말 궁금해요.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에서의 경험은 제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서울에 오기 전 저는 월 스트리트에 있는 골드만삭스에서 일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 이어지는, 한치의 여유도 없는 삶을 살고 있었죠. 그건 분명 제가 추구하는 삶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찾았는데, 마침 헨리루스 재단에서 젊고 유능한 지도자를 15명 정도 뽑아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장학 프로그램 공고가 난 거예요. 지원했고 선정됐죠. 선발자들은 가고 싶은 아시아 도시를 고를 수 있었어요. 서울 올림픽이라는 큰 이슈가 있는 데다 저도 운동선수 출신이라 더욱 관심이 갔기 때문에 서울을 택했습니다.
골드만삭스 소속으로 서울에 오셨을 텐데 어떻게 조정팀을 맡게 된거죠? 골드만삭스가 서울 올림픽과 연결되어 있어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조정을 한 경력을 보고는 한국 조정팀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코치를 맡게 되었고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 다른 코치들과 함께 지내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더욱 친숙해질 수 있었죠. 월 스트리트에서의 생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 제 삶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좀 더 전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싹튼 것 같아요.
많은 독자가 궁금해할 것 같은데,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조정팀 성적은 어땠나요? (웃음) 조정 선수팀을 급하게 꾸린 면이 있었어요. 선수들의 기량은 많이 발전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조정이 비인기 종목인 데다 코치도 별로 없었죠.
서울에서 돌아간 후 다시 수년간 기업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미네소타주 에디나에 있는 한 교회의 목회자로 부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라서요.미국에도 이런 케이스는 흔치 않습니다. 사실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제가 신부가 되길 바란 적도 있지만 강요하진 않으셨죠. 다만 제가 예전에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몇몇 교회에서 교회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는 훈련을 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담당한 교회가 빠른 성장을 보였어요. 그 교회에서 도와달라는 제안이 왔고, 고민 끝에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기업의 경영 및 전략 기획자에서 해비타트 총재로 넘어가는 과정에 목회자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목회자로 봉사한 시간은 해비타트 총재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그때 주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살피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 외에 베스트바이를 그만두고 2002년에 인도로 선교 활동을 다녀온 것도 저에겐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미션 트립을 통해 앞으로 내 커리어의 방향을 빈곤 문제 해결로 잡아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요.
총재님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늘 구도자의 태도를 지켜오신 것 같습니다. 삶에서 꾸준히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사실 이 세상 누구나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요? 네, 그렇다고 생각해요. 각자 성찰을 통해 삶의 가치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성찰은 마음 한편에 여유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만약 저도 계속 월 스트리트에서 일했다면 제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서울과 인도에서의 시간이 있었기에 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2년간 목회자로 일하다 해비타트 총재로 오셨습니다. 당시 어떤 기대감을 안고 오셨나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좋았어요. 해비타트는 제가 예전에 기업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던 일과 교회에서 하던 봉사, 그 접점에 있고 그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죠.

1 윤형주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조너선 렉퍼드 총재, 손미향 한국해비타트 사무총장(왼쪽부터).
2 2016년 국내 기업 임직원 건축 봉사 현장.
3, 4 2016년 JCWP(Jimmy Carter Work Project) 캐나다 현장.
해비타트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할 때와 달리 총재가 되신 후 새롭게 눈에 들어온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요? ‘집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보호 아래 좋은 집과 윤택한 환경에서 자란 분이 많기 때문에, 집이 없는 어려운 환경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분과 후원자들에게 주거 문제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고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리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거주’라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떠나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 교육, 생계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총재로 일하며 실제로 개선점도 많이 목격하실 것 같습니다.안전한 집에 사는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학업 성적도 좋다는 것은 이미 여러 데이터에 나와 있습니다. 몇 년 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롬이라는 여성의 가족을 위해 집을 지어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어요. 쓰레기 더미를 기워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고 나자 그 집에서도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죠. 어머니와 두 자녀를 데리고 길에 나앉은 그들을 위해 해비타트 봉사자들이 소박한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롬의 소득이 5배 정도 올랐고, 자녀들도 건강해져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재혼도 했다고 하더군요. 4년 전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오직 생존뿐이었지만, 이제는 꿈이란 것을 가지게 되었죠. 이런 놀라운 이야기는 제가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골드만삭스에서 일할 때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에 회의를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총재님의 일정을 보면 해비타트에서의 활동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어떠세요? 물론 바쁩니다.(웃음) 다른 점이 있다면, 해비타트에서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늘 인내심을 갖고 체력적으로도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총재님의 부임을 두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너선 렉퍼드를 총재로 임명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다. 그의 경력과 배경은 해비타트가 경제 및 비즈니스 환경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총재님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해비타트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비영리단체 중 하나입니다. 이런 자원봉사 단체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같은 것이 있을까요?저희 단체는 명확한 목적과 강한 리더십, 그리고 봉사자들의 지지와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사연이 대중적 관심과 후원을 이끌어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비영리단체를 예전보다 신뢰하고 프로페셔널한 단체로 인식하게 된 변화도 있고요. 더불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같은 유명인사들의 관심과 참여 또한 해비타트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동참하면서 해비타트가 전 세계적 운동으로 확장되었죠. 오피니언 리더와 유명인사들이 NGO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할 때 그 영향력은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더불어 유명 가수 트리샤 이어우드(Trisha Yearwood)와 그의 남편 가스 브룩스(Garth Brooks), 인도배우 존 에이브러햄(John Abraham),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Desmond Tutu)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함께 나가 집을 짓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해주십니다. 그들의 관심과 참여는 늘 대중적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놀라운 홍보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해비타트에 동참하고 있는데, 최근 큰 도움을 준 기업이 있다면요? 지난해에 허리케인 마리아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섬 전체가 쑥대밭으로 변했는데, 제약사 애브비(AbbVie)가 최근 해비타트에 5000만 달러의 재난 후원금을 기부했습니다. 애브비는 이 후원으로 해비타트의 레거시 파트너(legacy partner) 명단에 올랐죠. 해비타트 레거시 파트너는 큰 후원을 해주는 기업입니다. 투자사 스리번트 파이낸셜(Thrivent Financial), 다국적 기업 다우 케미컬 컴퍼니(Dow Chemical Company), 가전 회사 월풀(Whirlpool),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델타항공(Delta Air Lines) 등 정말 많은 기업이 해비타트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미국 하이소사이어티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어릴 적부터 기부나 봉사에 대해 따로 교육을 받는 걸까요? 과연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학교 수업을 통해 나눔의 철학을 가르치진 않습니다. 그러나 교내에 다양한 봉사 활동 프로그램이 있고, 기업들도 다양한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죠. 제가 예전에 디즈니에서 일하며 해비타트 봉사와 인연을 맺은 것처럼요. 그때 저와 저희 봉사팀은 두 채의 집을 지었는데, 회사 일을 할 때보다 서로 더 많은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그 과정이 정말 행복했죠. 그 후 꾸준히 해비타트 봉사 활동에 참여했고, 인도 봉사 활동에는 제 아들을 데려갔어요. 인도 달릿 아이들의 모습과 주거 환경을 목격했을 때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비로소 인생의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죠. 이렇듯 봉사 활동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 그 이상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갑질 문화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기부나 봉사 활동이 일상화된 미국의 기업에선 보기 힘든 행동이 아닐까 싶은데, 그동안 많은 설교와 강의를 하신 분으로서 대기업 오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저는 개인적으로 경영자의 리더십 중 서번트 리더십이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가 해온 섬김과 나눔의 경험,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성이야말로 조직을 경영하고 조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거 문제가 해결된다면 총재님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우선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집이 생기는 그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기후변화 문제와 식량 안전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Can you join us?
후원자, 국내외 봉사자, 재능 기부자 등의 형태로 해비타트에 함께할 수 있다. 개인.기업 후원자는 후원금과 현물 후원으로 집을 지어 가정을 세우는 데 동참할 수 있다. 대표적 프로그램인 글로벌 빌리지(Global Village)는 10명 이상 뜻이 맞는 이들이 원하는 국가를 선택해 집을 짓는 학교, 기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 프로그램이다. 문의 02-3407-1975, sgoffice@habitat.or.kr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