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자연으로부터의 해방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심문섭’이란 이름 석 자는 어떤 큰 기둥 같은 의미다. 서울대학교 미대 재학 중 국전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조각부터 1970년대에 세 차례 파리 청년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획기적인 조각 설치 작품, 인간과의 접점에 존재하는 구조물로 나무와 철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까지, 마치 자신을 빼놓고는 한국 조각의 역사와 흐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하듯 여전히 부지런한 걸음을 재촉하는 심문섭 작가의 회고전 이야기.

지난해 가을, “한국 조각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평가받는 심문섭 작가와 제주도에서 택시를 함께 타고 이동한 적이 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제주 시내 아라리오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심문섭 작가와 그의 부인, 아라리오미술관 부관장과 한 택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저지리문화예술인마을 방면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심문섭 작가는 1시간 내내 김창열미술관 개관에 대한 남다른 소회를 쏟아내는 동시에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것에 둘러 싸인 마을의 전경에 감탄했다. 뒷자리에서 심문섭 작가의 자연 예찬을 음미하다 새삼 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한 경외를 바탕에 두고 있음을 상기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심문섭, 자연을 조각하다>전은 그가 자연과 인간, 물질과 비물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그 독특한 시각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작가 인생 50년을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 시기별 대표 조각 작품뿐 아니라 드로잉, 회화, 사진을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은 1·2전시실과 중앙 홀을 모두 사용하는 것만 봐도 자연의 현대화에 대한 심문섭의 해석이 얼마나 광활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시리즈’ 전시로 이미 몇 년 전부터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앞두고 저도 그간의 작품을 한번 정리해보자 생각했어요.” 흩어져 있는 작품을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진행했다. 1970년대에 주로 제작한 ‘관계’, 점토의 물성을 드러낸 ‘현전’, 나무라는 물질을 보편적으로 상상한 ‘목신’, 여러 오브제를 조합한 ‘반추’ 시리즈까지, 그가 살고 있는 통영에서 서울까지 이 전시를 위해 옮겨온 작품만 5톤 트럭 6대 정도 분량이다.
그가 지금껏 50년 넘게 천착해온 작업은 흙, 돌, 나무, 철 등 자연의 재료를 통해 물질 간 관계에서 상징성을 찾는 것이다. 자연을 소재 또는 재료로 작업한 작가는 많지만 심문섭 작가처럼 ‘자연’을 위압적인 이미지가 아닌 친근한 대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드물다. 그는 자연의 엄숙함을 버리는 대신, 대중이 쉽게 다가가 어루만지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자연을 형상화한다. ‘위대한 자연’ 말고 ‘친밀한 자연’을 담는 데에는 그가 통영에서 나고 자란 영향도 크다.
“통영 앞바다에는 온종일 크고 작은 배가 부지런히 오갑니다. 그곳에는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이 있죠.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껏 경험해온 자연은 압도적인 자연이 아니라 일상을 품고 어루만져주는 친숙한 자연입니다. 보는 자연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는 자연이죠.”
아무리 ‘서울대학교’라는 이름값이 있다 해도 당시 출세길은 예술가가 아니라 판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면서까지 흙장난을 하고 점토 놀이를 하며 그 안에 어린 시절의 꿈과 감정을 불어넣은 그는 여지없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선택했고, 그렇게 고향을 떠나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태어나서 20년을 통영에서 자란 그에게 서울은 낯설고 어색한 곳이었지만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학교생활과 작업에 매달리게 하는 좋은 핑계가 됐다. “통영에서 올라와 아는 사람도 없고 놀러 갈 곳도 없다 보니 학교에서만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자연히 서울 친구들보다 작업에 쏟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그는 매일 늦게까지 학교에서 작업하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하숙집에 돌아오곤 했다. 오죽했으면 하숙집 주인이 그를 야간대학 학생으로 착각했을까.

제시 The presentation , 철, 돌, 전기설치, 2005
그는 그 여세를 몰아 대학교 3학년 때 군상과 전신장으로 국전에 참가했고, 두 작품 모두 입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용달차가 없어 서울대 미대가 자리한 이화동에서 경복궁까지 리어카로 작품을 실어 나른 건 유명한 일화다. 그 후에도 그는 서너번 국전에 참가해 상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가는 일치했다. 바로 “심문섭의 조각이 국전의 경향을 이끌었다”는 것. 미술계에 팽배한 획일적인 경향을 따르지 않고 종래의 소재와 기법을 탈피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전은 그 전해에 어떤 작품이 대통령상을 탔는지에 따라 참가 작품의 경향이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그 전해 수상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고착화되어 있던 상황. 그러나 그는 때마침 산업사회의 표상으로 등장한 스테인리스와 아크릴 등의 재료를 사용해 국전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국전 참가를 통해 조형예술에 대한 의식을 확립한 그는 그 후 차츰 스스로 존재하는 사물, 즉 자연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서로 짜 맞추는 조형을 시도했다. 어릴적부터 통영에서 비, 바람, 숲, 나무와 함께 자연의 일부로 살아온 자전적 경험은 나무, 흙, 돌 등을 활용한 그의 작품이 인간과 합일화되는 지점을 탄생시켰다. 물질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을 체계화한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특히 1970년대 초반에 참여한 파리 청년 비엔날레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파리 청년 비엔날레는 35세 미만 작가만 참가할 수 있는 전람회로 ‘예술에 관한 정답을 찾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장’이라 불렸다. 각 지역의 통신원이 추천한 작가들을 운영위원회에서 심사해 초대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당시 이우환 작가의 추천으로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생각한 건 ‘기죽지 말고 내 것을 내보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행위로 최대한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 ‘관계(장소) Relation(Place)’를 출품했습니다.”

1관계(위치) Relation(Placement), 철판, 시멘트, 작가소장, 1972 2현전 Opening up, 테라코타, 작가소장, 1982
심문섭 작가가 1970년대 초에 작업한 ‘관계’ 시리즈는 전통적 미술 영역에서 사용하지 않던 흙, 철판, 시멘트, 파이프, 돌, 종이 등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이러한 물질에 작가의 행위를 더했을 때 나타나는 우연적 요소에 집중한 그는 1973년 참여한 비엔날레에서 전시장 벽에 커다란 종이를 붙인 다음 윗부분을 찢어 바닥에 흐른 종이 위에 돌멩이 몇 개를 올려둔 ‘관계(위치) ’를 선보이며 상황적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연이어 참가한 1975년 비엔날레에서는 샌드페이퍼로 캔버스 틀 가장자리와 중앙을 문질러 올이 닳게 해서 천의 성질을 드러낸 ‘현전(Opening up)(어떠한 사실이 스스로 눈앞에 드러난다는 의미)’을 발표하며 “고유의 물질성을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파리 청년 비엔날레 데뷔가 그에게 세계 무대 맛보기와 같았다면 1981년 일본 하코네에 있는 미술관에서 헨리 무어 대상전 우수상을 수상한 것은 ‘예술가로서의 검증을 마쳤다’는 의미와 같은 사건이었다. 헨리 무어가 누구인가? 로댕의 뒤를 이어 추상적 형태의 예술적 가능성과 조각 재료 고유의 물질성을 탐구한 세계적 조각가가 아니던가. 그 명성에 걸맞게 수상전 상금만 무려 300만 엔에 달했다. “헨리 무어 대상전 우수상 수상은 제가 그 전까지 해온 조각의 영역을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른여덟의 저에게 날개를 달아준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조각가로서 더욱 경계를 확장하고자 그는 점토의 물성을 드러낸 테라코타 작품 ‘현전’과 ‘토상’ 등을 작업하며 점토를 누르거나 길게 늘여 휘게 하는 탄력적인 형태감에 집중했다. 이런 형태감을 두고 그는 “인간과 물질이 만나 서로 얽히는 사이에 생기는 시적 양상”이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비유로 주변을 감탄시켰다. 그는 조각이라는 장르가 늘 대중사이에 존재하길 바랐는데, 그런 행보 중 특히 눈에 띄는 건 1987년에 ‘88 서울 올림픽’ 사전 행사로 개최한 ‘서울 올림픽 심포지엄’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아 외국 조각가들을 서울로 초대, 올림픽공원 조각공원의 기틀을 닦은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때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10년 뒤에는 통영 남방산에서 국제 야외 조각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작가와 예술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스스럼없이 선보였다.

메타포 Metaphor , 나무, 철, 작가소장, 1995
점토 작품인 ‘토상’ 이후 그는 나무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살려 물질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한 ‘목신(Wood Deity)’(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과 흙에서 추출한 자연 물질이면서 ‘녹’이라는 특성을 통해 시간을 수용하는 철과 나무를 함께 사용한 ‘메타포(Metaphor)’(1990년대 후반), 철·돌·광섬유·전기기기 등 물질 간 관계와 모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제시(The Presentation)’(2000년대 이후), 여러 오브제를 조합해 환경과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과 사유를 담은 ‘반추(Represent)’(2000년대 후반) 등의 작업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조각 언어를 확립해왔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사진 위에 선이나 스크래치 등을 더하는 방법으로 제작하는 ‘포토드로잉’ 연작까지 이번 회고전 <심문섭, 자연을 조각하다>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총 100여 점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의 해석과 이해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은 그의 작품이 어떠한 텍스트보다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것을 지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심문섭 작가가 50년에 걸쳐 보여준 조형 문법이자 대중이 그의 작품을 만나는 코드다.
심문섭 작가는 8월 30일 작가와 큐레이터의 만남을 통해 동시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연계 프로그램 <전시를 말하다_MMCA 토크>에 등장한다. 직접 창작시를 낭독하고 관람객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재료의 성질 때문에 회화와 달리 마음대로 옮길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조각. 그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대중과 조각 예술의 접점을 어떤 방식으로 찾아낼까? 이미 그의 전시를 본 관람객은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이번 회고전은 전시 제목 ‘자연을 조각하다’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자연’이라는 키워드가 오히려 어떤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랜 세월 창작이라는 항해를 통해 일상과 미지의 세계 사이에서 투쟁한 심문섭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