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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사발 하고 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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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애주가들이 첫 번째로 할 일은 가장자리를 바삭하게 튀긴 파전 한 입과 사발에 가득 담은 막걸리를 크게 한 모금 꿀떡꿀떡 마시는 것. 가장 대중적인 서울 장수 생막걸리를 기준으로 솔직하게 평가해봤다.

구기동동주 /7%, 800ml
구기자가 들어간 동동주다. 충청남도 청양에서는 100여 년 전부터 구기자로 술을 빚었다. 이 지역 특산품인 구기자를 술덧(항아리나 용기 안에서 발효되고 있는 미완성 상태의 술)에 함께 담가 만들었다. 구기자의 감칠맛과 누룩 특유의 향이 강하다. 단맛은 거의 없고 신맛과 청량감이 맛의 주요 베이스다. 옛날 동동주가 이런 맛이 아니었을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전통주의 누룩이 주는 노릿한 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국순당 자연담은 복분자막걸리 /6%, 360ml
전라북도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로 만든 막걸리다. 실제로 이 술을 빚는 장소도 고창이다. 복분자를 함유한 술이 으레 그렇듯 막걸리 특유의 맛보다는 복분자 맛이 지배적이다. 막걸리의 텁텁함이 있기는 하지만 막걸리보다는 복분자주라는 생각이 든다. 신맛이나 청량감보다는 복분자의 단맛과 향을 좋아한다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자희향 /12%, 500ml
자희향을 마시면 고급 막걸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빛깔부터 부드럽고 곱다. 도수가 12%로 높다는 건 그만큼 숙성 기간이 길다는 뜻이다. 실제로 자희향은 100일간 자연 숙성을 거친 뒤 판매한다. 라벨에 국화꽃을 그려 넣었는데 국화 향을 인위적으로 넣은 것은 아니다. 원래 찹쌀과 누룩을 잘 발효시키면 자연적으로 국화 향이 난다. 단맛과 신맛이 강하고 탄산이 거의 없어 술이 진하다는 인상을 준다.

서울 장수 생막걸리 /6%, 750ml
전국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막걸리다. 향과 단맛과 신맛, 쓴맛, 탄산 등이 모두 강하다. 어느 가게에서든, 어느 술집에서든 판매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막걸리 맛의 표준이 됐다. 하지만 전통적 막걸리 맛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젊은 스타일 막걸리의 표준에 가깝다. 맛이 강해 여러 병을 마시기에는 적당치 않지만 한두 병 정도 간단히 먹기에는 이만한 제품도 없다.

국순당 쌀막걸리, iCing /4~6%, 240~350ml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캔 막걸리는 서울 장수 월매쌀막걸리와 국순당 쌀막걸리, 국순당 iCing이다. 일반적으로 탁주는 살균을 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짧다. 하지만 캔 막걸리는 살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효모에 의한 탄산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단맛이 강하고 산미와 청량감이 거의 없다. 서울 장수 월매쌀막걸리와 국순당 쌀막걸리가 그렇다. 국순당 iCing은 칵테일 막걸리인데 탄산음료의 느낌이 강하다.

경주법주 쌀막걸리 /6%, 750ml
경상도에는 보수적인 맛의 막걸리가 많다. 그중 서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경주법주 쌀막걸리다. 청주를 만드는 회사의 막걸리여서인지 순쌀을 20% 도정해 빚었다. 그만큼 부드럽고 풍미가 강하다. 좋은 막걸리의 표준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맛이다. 따를 때는 청량한 소리가 나지만 실제 마셔보면 탄산은 소량이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약한 단맛, 곱게 갈린 순수한 쌀이 주는 균형을 느낄 수 있다. ‘맛을 위해 깎고 또 깎았다’라는 슬로건이 충분히 이해된다. 참고로 20% 도정은 사케 중에서 혼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정도다.

국순당 이화주 /12.5%, 400ml
국순당 이화주는 문헌으로 전해 내려오는 고려시대의 전통주를 복원한 술이다. 일반 막걸리보다 희고 걸쭉하며, 식감은 떠먹는 요구르트와 비슷하다. 실제로도 숟가락으로 떠먹거나 숟가락으로 잔에 덜어낸 뒤 찬물에 타서 마신다. 이는 술을 빚을 때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구르트처럼 유기산이 풍부한데, 한술 떠서 입안에 넣고 혀로 굴려 녹이며 맛을 보면 단맛과 신맛이 얽히며 새콤한 맛이 올라온다. 막걸리치고 상당히 고가지만 많이 먹기에는 음용법 자체에 한계가 있다. 사서 마시기보다 선물용으로 좋아 보인다.

복순도가 손막걸리 /6.5%, 935ml
손으로 직접 빚은 순수 생막걸리다. 라벨에 “여실 때 천연 탄산에 주의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래서 침전물을 섞기 위해 흔든 뒤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면서 열어야 한다. 열 때마다 새어 나오는 탄산의 청량한 소리가 상당히 즐거운데 맛도 청량감이 상당하다. 향과 맛 모두 샴페인을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크게 한 모금 입안에 넣어 꿀떡꿀떡 마시는 목 넘김 자체가 재미다. 시음하다 보면 섹시한 여자가 떠오르는 느낌인데, 그 느낌 자체가 낯설고 경이롭다. 막걸리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이 있는 여자들도 좋아하겠다.

문경주조 오미자 생막걸리 /6.5%, 750ml
막걸리라면 보통 녹색 병에 든 뽀얀 우유빛 컬러를 상상한다. 하지만 경상북도 문경의 특산품인 오미자로 만든 이 막걸리는 좀 다르다. 흔들었을 때 빛깔은 마지 딸기우유 같지만 실제 맛은 달콤함과 거리가 멀다. 단맛은 거의 없고 산도가 적당하다. 마신 뒤 신맛도 입안에 오래 남아 여운을 즐길 수 있다. 주로 여자가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남자들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이 제품을 만드는 문경주조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안상호(프리랜서) 사진 박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