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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은 옷

FASHION

한 번 더 손이 가는 옷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2019년 F/W 시즌 룩.
2 로로피아나의 베이비 캐시미어 원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코를 훌쩍이게 되는 계절, 뭘 입을지 갈팡질팡하는 날엔 어김없이 크림색 캐시미어 니트를 꺼내 입는다. 그러고 보면 니트처럼 유난히 자주 손이 가는 옷이 있다. 좋은 옷이란 그런 걸까. 입었을 때 편안하면서 고급스러운 옷. 물론 디자인에 신경 쓴 옷도 좋지만, 피부에 닿았을 때 부드럽고 몸에 착 감기는 옷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사실 한 번이라도 더 손이 가는 옷에는 만든 이의 숱한 고민과 노력이 숨어 있다. 6세대에 걸쳐 품질 좋은 섬유를 연구해온 로로피아나는 특히 캐시미어를 개발하는 데 정성을 들인다. 그중에서도 채취나 가공이 어려운 베이비 캐시미어는 로로피아나를 대표하는 섬유. 몽골 사막의 히르커스 새끼 염소가 3~12개월이 될 무렵,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선에서 목동이 직접 빗질해 소량의 털을 얻는다. 여름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엔 매섭게 추운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염소의 털은 귀한 캐시미어 원료로 털이 빠지기 시작하는 6월에 채취해 자연의 생명 주기까지 고려한다. 지난 10월 19일, 로로피아나는 영화감독이자 생태학자인 뤼크 자케와 함께 캐시미어의 기원과 자연과의 공생 관계, 경의를 표하기 위한 행보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1978년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 지방에서 시작한 브루넬로 쿠치넬리도 캐시미어와 니트 제작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1985년 페루자 근처의 솔로메오(Solomeo) 지역에 자리한 성을 구입해 공방으로 운영하며 장인들이 제품을 만드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캐시미어 퍼로 유명하다. 몽골 염소의 목과 배 아래 언더코트라 불리는 매우 좁은 부위를 조심스럽게 빗질해 극도로 부드럽고 미세한 털을 얻은 후 독창적 가공법을 거쳐 섬세하고 복잡한 ‘짜임’을 바탕으로 한 캐시미어 퍼를 완성한다.

3 아뇨나의 양면 캐시미어 롱코트.
4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인타르시아 패턴 캐시미어 스웨터.
5 파비아나 필리피의 2019년 F/W 시즌 광고 이미지.

메이드 인 이탈리아 철학을 잇는 파비아나 필리피 역시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모든 니트 제품을 자사에서 개발한다. 장인에 의해 생산하는 브랜드로 대부분의 니트 제품은 재단 없이 실을 엮는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한편 이탈리아의 북서부 보르고세시아(Borgosesia)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도 고집스럽게 좋은 원단을 제작한 이가 있었다. 마을 이름을 본떠 아뇨나를 설립한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일로리니 모(Francesco Ilorini Mo)다. 그가 태어난 1915년은 바야흐로 ‘울’의 시대로, 12세부터 원단 제작 견습 생활을 한 그는 1953년 아뇨나 마을에 양모 공장을 설립했다. 아뇨나는 당시 크리스찬 디올, 피에르 발망, 피에르 가르뎅 등 파리 유명 디자이너에게 최상급 원단을 공급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남아공 앙고라 카루 염소에서 얻은 앙고라, 호주 태즈메이니아 지방의 양에서 얻은 메리노 울, 매년 봄 몽골과 페르시아 사막에서 자라는 낙타에게 얻은 낙타모, 안데스산맥의 비쿠냐까지 귀한 원료를 뛰어난 기술로 가공하는 아뇨나는 자연에서 원료를 얻는 만큼 자연보호에도 앞장선다. 특히 멸종 위기에 처한 비쿠냐를 위해 페루 정부와 계약해 2~3년에 한 번 정한 만큼만 털을 채취하고, 세심한 관리와 통제 아래 개체 수를 늘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유행을 좇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처럼 윤리적이고 가치 있는 옷을 만들고 있다. 어떤 옷이 더 좋다고 감히 말하긴 어렵지만, 사려 깊은 옷임이 틀림없다. 누구든 보드라운 캐시미어 니트를 입어보면 이 계절에 마냥 머물고 싶을 것이다.

 

에디터 정순영(jsy@noblesse.com)
진행 김유진(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