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게 말 걸기
개나 고양이 대신 말을 키우는 남자가 있다. 그것도 85마리나. 덩치도 크고, 품에 안을 수도 없는 이 동물을 기르는 마음은 어떤 걸까.
홍지준 회장이 아끼는 루시타노 종마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람이 나면 한양으로,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라 했다. 제주를 최고로 친 건 온화한 기후와 넓은 벌판이 있어 말을 기르기에 가장 적합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제주공항 옆 조천읍에서 좁은 길을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한눈에 다 담을 수 없는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진다. 이곳이 지금 소개할 코캄(KOKAM) 홍지준 회장의 사설 목장이다. 5만 평 규모의 방대한 대지에서 잘생긴 말 90여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논다. 그림에서나 볼 법한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감동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이 목장에는 최상급 승용마로 알려진 루시타노가 60여 마리, 루시타노와 제주 조랑말을 교배해 만든 ‘홍씨타노’가 20여 마리,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토마의 품종으로 알려진 한혈마(汗血馬)와 독일산 승용마가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 그가 말이라는 동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제주에서 한창 크루즈 요팅에 빠져 있을 때였다. 조천 앞바다에서 요팅과 낚시를 즐기던 그는 우연히 말이라는 동물을 만났다고 했다.

처음 말에 관심을 가진 순간은 언제였나요? 10여 년 전이었어요. 아마 요팅을 끝내고 어딘가로 가던 길이었을 거예요. 우연히 작은 목장 안에 있는 말 한 마리를 봤는데, 나도 몰래 말에게 다가가 한참을 쓰다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 왜 말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왔느냐고 신경질을 내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내가 사겠다고 했어요. 450만 원을 주고 그 자리에서 끌고 나왔죠. 하하. 그게 말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계획 없이 우발적으로 시작한 일인데 사람 키만 한 말을 그렇게 쉽게 키울 수 있을 리 만무했죠. 얼마 뒤 첫 말을 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여러 말을 키워보셨겠군요. 퇴역한 경주마도 키워봤고, 제주 토종 조랑말도 키워봤어요. 하지만 둘 다 실패했어요. 경주마는 다루기가 힘들어 낙마해서 죽을 뻔한 적이 여러 번이에요. 조랑말은 뭔가 성에 차지 않았고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포르투갈의 루시타노가 제일 좋은 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독일까지 가서 처음으로 세 마리를 사왔어요. 확실히 수준이 다르더군요. 왜 명마라고 불리는지 새삼 느꼈죠. 이후에는 원산지인 포르투갈로 직접 가서 10여 마리, 미국에서도 10여 마리를 들여왔죠. 이 녀석들이 새끼를 낳기 시작하면서 수가 급격히 늘었어요. 지금은 80마리가 넘습니다.
루시타노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생명체라기보다는 예술품 같다는 생각을 했죠. 가만 살펴보니 목이 두껍고 허리는 짧고 엉덩이는 잘 발달돼 있었어요. 사람이 올라타기 적합한 구조였죠. 무엇보다 승용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건데, 그 점에서 최고였어요.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고 사람이 움직이면 같이 따라 움직였어요. 괜히 이름값이 높은 게 아니었어요.
그 큰 동물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힘들었죠. 가축을 들여오려면 혈청 검사를 철저히 해야 해요. 혹시나 검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죽이거나, 원산지로 돌려보내야 하죠. 게다가 세 마리를 전용 컨테이너로 실어 오려면 비행기 티켓값만 해도 엄청나요. 그렇게 어렵게 한국에 들여와서 또 트럭으로 제주까지 싣고 와야 하니까 그 과정의 피곤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이 좋은 말을 한국에 처음 들여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죠. 다른 말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레벨이 달라요. 사람에게 친근한 건 기본이고, 사람의 심리도 빨리 알아채 정신적 치유 효과도 있어요. 착석감도 좋아 루시타노를 한번 타면 다른 말은 못 탈 정도죠.
그걸로 모자라 루시타노와 조랑말을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드셨다고요? 저는 ‘홍씨타노’라고 불러요. 홍씨가 타고 노는 말이라고. 하하. 우리가 기마민족이네 뭐네 말은 많지만 실제로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말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새로운 종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100년 계획을 세우고 내놓은 게 홍씨타노고, 벌써 3대까지 태어났어요. 루시타노보다 좀 작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비슷하게 크더군요. 이대로 간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품종으로 인정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려면 단순히 교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각 품종의 장점을 추려 선택적 교배를 계속해나가야 하죠. 완전한 독자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100~200년은 걸리는 일이에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끝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작 10~20년 지났을 뿐이니까요. 맘 같아선 자식이나 손자들이 유지를 이어갔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사실 여유만 있다면 즐길 게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그런데 굳이 말에 빠진 이유는 뭔가요? 골프나 요트, 바다 낚시, 서핑 등 할 만한 건 다 해봤어요. 하지만 말을 타면 다른 것이 다 시시하게 느껴지죠. 말은 반려견 이상으로 영민하고 주인과 교감하는 동물이에요. 차이라면 개는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말은 인간처럼 굉장히 이기적인 동물인데, 정을 많이 주면 그만큼 보답해요. 서로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등에 올라탔을 때 느껴지는 일체감은 정말 황홀할 정도죠. 참고로 전 세계 승마 인구 중 여성이 70% 정도 됩니다. 여자들이 유독 말을 좋아해요. 아내에게 말 한 마리 사주면 남편을 괴롭힐 일이 없어요. 잔소리도 없고. 익숙해지면 말에게 하루 종일 붙어 있거든요. 하하.
말 기르는 사람들끼리는 유대감도 상당히 강하겠군요? SNS로 연결된 ‘말 친구’가 전 세계에 1000명쯤 돼요. 해외 출장 갈 때마다 그 지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자기 집으로 초대해 호화롭게 먹이고 재워줘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말이죠. 그 정도로 유대감이 강해요. 그중에는 대단한 부호도 많아요. 미국 DHL 회장도 있고, 세계 100대 부자 리스트 같은 데 들어가는 인물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말이 1000마리가 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을 기른다는 공통점 하나로 다 친구가 되는 거죠.
기르는 말을 직접 판매도 하시죠? 판매라는 단어보다는 입양시킨다는 표현을 써요. 전 업자가 아니니까 적극적으로 판매를 위해 애쓰진 않아요. 하지만 말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팔기도 하죠. 가격은 훈련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비싼 건 수억 원이 우습죠.
말도 반려견처럼 샀다가 버리는 경우가 있겠죠? 싼 말을 사면 그런 경우가 있어요. 쉽게 버리고 바꾸죠. 안타까워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저는 절대 싸게 팔지 않아요. 비싸게 사야 책임감을 느끼거든요.
요즘은 승마도 꽤 대중화돼서 말을 직접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우선 싸고 좋은 말은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싼 말을 사면 99% 실패합니다. 좋은 건 절대 싸게 팔지 않아요. 둘째, 자기만 즐겁자고 말을 타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말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과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해야 해요. 말과 교감할 생각 없이 자기 기분만 생각할 거라면 처음부터 포기했으면 좋겠어요. 분명 실패할 테니까.
홍지준 회장은 말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때가 제일 즐겁다고 했다. 이 영민한 동물은 주인이 자신을 잘 다루지 못하면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면서 날 타려 하느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을 예민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항상 진심으로 대해야 하고, 폭력을 쓰면 오히려 교육 효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여자친구 대하듯 해야 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말을 키워야 할까? 물론이다. 주인의 마음이 전해졌을 때 말도 비로소 마음을 연다.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신뢰가 생겼을 때 말은 어떤 레저보다 진귀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말 타는 기쁨을.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