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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의 활용법

LIFESTYLE

예부터 수도승이 즐겨 마셨다는 말차(末茶). 요즘 현대인은 말차를 통해 새로운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수양하고 있다.

지난겨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 <대고려전>이 열렸다. 450점에 달하는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전시장에서 고려시대 다실을 재현한 작은 방을 만났다. 청자로 만든 고아한 찻잔과 정갈한 다구 사이에 놓인 은제 차시. 얇고 긴 몸통 끝에는 작은 거품기가 달려 있는데, 이는 고려인이 가루차를 거품 내어 마신 증거라고 한다. 유행은 이토록 긴 시간을 지나 돌아오기도 하는 걸까. 요즘 카페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티 라테는 차(茶)를 우려낸 물에 우유를 부은 뒤 부드러운 우유거품을 올려 서빙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라테 외에도 에이드, 스무디 등 차를 음용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커피를 대체할 음료이자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식품으로 차를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차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말차’다. 왜 말차인지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몸에 더 좋기 때문. 말차는 시루에서 찐 찻잎을 말린 뒤 잎맥과 줄기를 제거한 잎사귀를 맷돌에 곱게 갈아 물과 음용하는 차를 뜻한다. 단순히 찻잎을 우려 마시는 잎차와 비교할 때 물에 우러나지 않는 유익한 성분까지 모두 섭취할 수 있다. 예컨대 찻잎이 함유한 비타민 A나 카테킨, 토코페롤, 섬유질 등은 물에 우려 마실 때 40%, 말차로 마실 때는 100% 몸에 흡수된다.
말차의 역사를 시작한 종주국은 어디일까? 많은 이가 일본에서 비롯했을 거라 예상하지만, 말차가 처음 알려진 곳은 중국이다. 당나라에서 시작해 송나라까지 이어오던 말차 제다법과 음용법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 초기까지 시행되다 사라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말차를 중심으로 한 다도 문화가 성행하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도는 일본의 풍습을 따른다. JW메리어트 서울에서 운영하는 ‘타마유라 티 바’는 서울에서 다도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장소. 이곳의 김솔암 티스페셜리스트는 다도가 차와 예절, 계절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복합 문화라고 설명한다. “바쁜 현대인에게 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차 마시는 데 집중하는 시간은 다도의 본질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엔 다도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카페나 체험 공간이 많아졌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젊은 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미 오랜 역사를 이어온 말차가 다시금 주목받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오늘날 우리는 말차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말차가 현대에 이르러 ‘핫’한 식품으로 떠오른 건 아시아가 아닌 미주의 영향이 컸다. 귀네스 팰트로, 캐머런 디아스 등 뉴욕 셀레브러티가 사랑한 ‘그린 디톡스 음료’의 기본 식자재이자 BBC, 보그 같은 영향력 있는 외신이 선정한 ‘슈퍼푸드’에 말차가 소개되며 말차의 건강한 효능이 많은 이에게 알려졌다. 최근엔 ‘마음 챙김’을 뜻하는 미국 명상계의 신조어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떠오르며 명상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의 다도 문화와 다도의 근간이 되는 말차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말차는 대중의 일상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뉴욕의 차차마차(Cha Cha Matcha)와 살레(Chalait), 파리의 우마미 마차 카페(Umami Matcha Cafe´), 코펜하겐의 마차바(Matcha Bar) 등 도시를 대표하는 말차 전문 카페가 생겨나고 글루텐 프리, 비건을 내세운 레스토랑 메뉴판엔 말차를 활용한 요리가 이름을 올렸다. 멜버른 세인트 킬다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마차 밀크바(Matcha Mylkbar)’가 연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유도 이색적인 말차 요리를 맛보기 위함이다. 맥 앤 치즈를 올린 말차와플과 진녹색 말차 슈퍼푸드 스무디 볼, 말차로 만든 번에 아보카도와 칙피, 후무스를 넣은 버거가 이곳의 대표 메뉴. 말차의 진한 색감을 살린 컬러풀한 플레이팅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서양식을 기조로 한 레시피가 말차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베지테리언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미국 셰프이자 작가, 클로에 코스카렐리(Chloe Coscarelli)가 공개한 ‘말차 소바’ 레시피에는 동양적 터치가 가미돼 있다. 팬에 양파와 마늘을 볶고 말차 가루와 다진 캐슈너트, 메이플시럽, 라임즙을 넣어 소스를 만든 뒤 삶은 메밀 면과 섞어 내는 요리다. 구운 두부를 가니시로 올려 마무리하는데, 그녀의 말을 빌리면 ‘페투치니 알프레도만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파인다이닝 신에서도 말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부레스토랑 출신 스콧 홀스워스(Scott Hallsworth) 셰프는 프릭 신(Freaks Cene) 레스토랑에서 미소 페이스트에 고추장, 말차 파우더를 섞은 매콤 쌉싸래한 소스를 사용한 숯불 양고기를 선보인다. 클럽 가스콘(Club Gascon)을 운영하는 미슐랭 스타 셰프 파스칼 어시그낙(Pascal Aussignac)은 식사의 마무리로 아르마냐크 브랜디와 초콜릿 가나슈를 넣은 자두절임을 말차로 만든 머랭과 함께 낸다. 전통적 파블로바 레시피를 그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씁쓸한 맛을 가미한 말차 머랭이 새콤달콤한 자두절임과 조화를 이룬다.

1 말차 블리스 볼   2 말차 과카몰리 나초 샐러드  3 말차 스무디 볼

말차 블리스 볼
캐슈너트와 피스타치오, 코코넛 플레이크, 말차 가루를 블렌더에 갈아 동그랗게 빚은 영양 간식. 설탕이나 꿀 대신 대추야자를 넣어 단맛을 낸다. 보통 블리스 볼엔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지만 말차의 향을 가릴 수 있어 사용하지 않았다.
말차 과카몰리 나초 샐러드
일반적 과카몰리 레시피에 말차 가루를 더하고, 병아리콩을 볶을 때에도 말차 가루를 사용해 은은한 색과 향을 입혔다. 각종 샐러드 채소를 곁들여 건강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완성했다.
말차 스무디 볼
그릭 요거트에 말차 가루와 바나나, 시금치, 얼음을 넣어 간 뒤 취향에 맞게 토핑하는 간편식. 말차 색과의 조화를 고려해 블루베리와 키위, 민트, 카카오닙스, 한련화 잎을 올렸다.

한국에서도 말차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이전에는 말차를 즐기는 다도 자체를 어렵고 까다롭게 생각했다면, 요즘은 커피나 주류처럼 다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고 이를 취미로 삼는 이가 늘었다. 티 컬렉티브의 김미재 대표는 “충분한 여가 시간을 마련하려는 사회적 움직임과 친환경 원료에 대한 관심, 웰니스 라이프 트렌드 등 다양한 요소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차 문화에 의미를 두는 젊은이가 많아졌다”라고 설명한다. 전통적 다도가 약식화된다기보다 차를 마시는 방식과 문화가 현대인에게 맞게 발전한 것. 각종 티 클래스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통 다도 클래스를 운영하는 JW 메리어트 서울의 타마유라 티 바와 말차 전문카페 맛차차의 격불 티 클래스, 고요채에서 운영하는 직장인 다도 워크숍 등은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말차를 즐기는 세대가 넓어진 만큼 이를 활용한 레시피도 다양해졌다. 미주, 유럽과 차이가 있다면 디저트에 집중된 변화라는 것. 카페 ‘키이로’가 한국에 처음으로 들여온 일본 대표 말차 디저트 테린과 카페 ‘녹턴넘버5’에서 만날 수 있는 농도가 다른 6단계 말차 아이스크림, 주문 즉시 맷돌로 찻잎을 가는 ‘맷차’의 밀크티 등이 그예다. 저마다 개성을 살린 디저트 레시피는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기호식품으로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데 집중한다. “최근 다양한 말차 베리에이션 음료가 사랑받는 것은 물론 먹는 형태의 차 문화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격식을 차리며 말차를 음미하던 과거와 달리 차를 즐기는 방법이 현대인에게 맞게 간편하고 다양해졌죠.” 블렌딩 티 전문점 큐앤리브즈를 운영하는 성현진 티 마스터의 설명이다. 그는 일상에서 간단하게 만드는 말차블렌딩 방법을 소개했다. 말차에 새싹보리 분말을 혼합해 음용하면 말차의 쓴맛을 새싹보리의 구수한 단맛과 꿀 향이 완화하고, 말차의 쌉싸래한 매력을 배가하고 싶다면 카카오 파우더를 섞어 라테로 마시라는 것. 여기에 호두 정과나 밤 양갱 같은 다식을 곁들이면 차 맛은 더 좋아지면서 카테킨이나 카페인 성분으로부터 위를 보호할 수 있다.
차와 차 문화 자체를 향유하고 경험하는 현대적 다회(茶會)의 등장. 말차를 먹고 마시는 일이란,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단면을 깊이 우려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4 말차 테린   5 말차 버터플라이피 플라워 레모네이드  6 말차 오이 칵테일

말차 테린
초콜릿에 설탕과 달걀, 버터, 말차 가루와 소량의 밀가루를 넣어 오븐에 구운 뒤 차갑게 식혀 썰면 완성. 생초콜릿이 연상되는 꾸덕꾸덕한 식감과 부드럽고 진한 말차 맛이 일품이다.
말차 버터플라이피 플라워 레모네이드
천연의 파란색을 띠는 버터플라이피 꽃차는 산성을 만나면 짙은 보랏빛으로 변한다. 버터플라이피 꽃차에 레몬즙을 뿌리고 진하게 탄 말차를 레이어드해 완성한 레모네이드. 취향에 따라 꿀을 가미한다.
말차 오이 칵테일
오이와 민트가 들어간 진 칵테일에 말차를 넣어 단맛을 중화하고 동양적 풍미를 더했다. 단아한 버전의 모히토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에디터 최별(choistar@noblesse.com)
사진 김황직   요리 & 푸드 스타일링 밀리   코디네이션 최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