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악
전부일 순 없지만 빠지면 섭섭한 것.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무심해서도 안 되는 것. 레스토랑에서 음악은 그런 존재다.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기억 한편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3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
음식이 근사해지는 리듬
그라니 스미스 사과의 푸른색 슬라이스가 리듬을 타고 부서지던 순간, 차갑고 아삭한 텍스처가 입 천장에 부딪히며 너트의 묵직함과 교차하는 맛의 기억이 살아날 때 ‘주제곡’처럼 몇 번이고 귓전을 맴도는 음악은 프랑스 출신 일렉트로니카 밴드 루주루주(Rouge Rouge)의 ‘라무르(L’Amour)’다. ‘퓨전’이라는 구어메이 트렌드가 대세인 시기였다. 심박보다 조금 느린 비트에 긴 호흡의 반복적인 멜로디가 테이블 위를 움직이는 손의 갖가지 제스처, 음식물을 입으로 옮겨가 맛을 흡수하고 느끼는 템포를 이해하는 ‘라운지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듣기 시작한 시절의 기억이다. 푸른 사과를 커리와 같은 플레이트에 담을 수 있다는 ‘궤변’을 인정하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았을 때다. 장소는 파리 퐁피두 센터 바로 앞에 위치한 카페 보부르. 프렌치 어니언 수프와 에스카르고를 세트 메뉴로 내놓는 관광지 레스토랑이 그득한 그 지역에서 고상하게도 화이트 테이블과 체어를 테라스까지 깔아둔 곳, 웬만한 연예인보다 몇 배는 예쁘고 잘생긴 스태프가 친절한 눈빛으로 주문한 음식의 이름을 반복해 말해주는 ‘몽환적’인 카페였다. ‘라무르’라는 곡은 밴드의 정규 앨범 외에도 2000년대 초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트렌드세터의 인기를 누린 ‘호텔 코스테(Hotel Costes)’ 5집에도 실려 있다. ‘코스테’는 파리의 카페 보부르와 마를리, 앨범과 동일한 이름의 호텔 코스테 등을 소유한 형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공간과 음식, 음악까지 컨셉추얼하게 디자인한 그들의 스마트한 계획에 감탄했다. 그 후론 오랜 단골 식당의 음악이 클리셰처럼 느껴져, 초밥 식당에서 알 수 없는 현악기를 튕기는 의미 없는 소리가 생선회의 얕은 맛과 부딪칠 때 갑자기 입안이 들척지근하게 느껴지는 부조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울리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눈물겨워, 파스타를 포크에 감다 풀기를 반복한 적도 있다. 취향 문제겠지만, 디바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클라이맥스가 있는 음악은 나의 즐거운 식사와 소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목넘김이 좋은’ 그 라운지 음악이 조금은 지루해질 즈음,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의 (무려) 57층 루프톱에 위치한 쿠데타에서 이른 저녁을 먹게 됐다. 시간이 이른 만큼 메뉴도 심플하게 그릴에 구운 햄버거와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라운지 음악의 유행이 지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디제이셋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잉 비트는 제법 빨라졌지만 해 질 무렵 싱가포르의 미지근한 공기와 시원한 와인의 버블이 비트를 적당히 녹이며 버거와 어울렸다. 지루한 출장의 즐거운 기억이다. 며칠 전, 오전 일정이 어긋나 청담동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게 됐다. 아침의 맥도날드 테이블엔 (방산시장에서 떼어온 듯한 저가 소재였지만) 오렌지색 체크무늬 클로스가 깔려 있었고, 재즈 밴드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Moonlight Becomes You’가 흘러 나왔다. 무심할 줄 알았던 맥머핀의 시간이 미드 템포의 피아노 소리 하나에 갑자기 근사해져서 놀랐다. 역시 중요한 건 리듬이다. 음식의 구성과 텍스처를 존중하면서 시간의 틈을 메워 좋은 다이닝의 기억을 완성해줄 수 있는 요소. 안타까운 건 요즘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이 크다는 사실이다. 글 김양미(에델만 코리아 부장)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스테판 퐁푸냐크의 ‘호텔 코스테’ 앨범 시리즈 중 하나
정해진 룰은 없다
그해 겨울, 우리는 압구정동에 있는 음악 바 ‘핑가스 존’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시끄러운 그곳에서 우리는 앱솔루트 보드카에 자몽 주스를 섞어 마셨다. 자정쯤 그 바에서 나오면 뭔가 먹고 싶어지곤 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프랜차이즈 식당과 퓨전이란 이름의 정체불명 음식을 내놓는 얼치기 식당을 혐오했다. 그날도 핑가스 존을 나오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찬 바람이 코를 45도로 벨 듯이 불었다. 강남구청역을 지나 선릉역으로 가는 길에 선배가 하는 또 다른 음악 바가 있었고, 그곳에 닿았을 때 선배의 바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길 건너편에 부산오뎅이란 간판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오뎅집을 향해 무단횡단을 했다. 아주 작은 오뎅집이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집이었다. 파산이 예고된 은행 창구 같았고 자판기 없던 시절 상하이 지하철의 매표소 같았다. 오뎅을 먹지 못하면 지옥으로 가는 터미널처럼 보였다.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순간, 그곳에 재즈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뎅집에 재즈라니. 그것도 퓨전이나 스윙이 아니라 비밥이 흐르고 있었다. 오뎅과 비밥과 소주가 그토록 어울린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언젠가 청담동에 있는 작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벽과 기둥을 세워 작은 도서관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곳의 음악이었다. 끊임없이 EDM(Electronic Dance Music) 계열의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클래식하면서 오밀조밀한 식당 인테리어와 잘 맞지 않을뿐더러 단조로운 드럼과 베이스 비트가 이탈리아 요리의 아날로그적 비주얼이나 맛과 어울리지 않았다. 스테판 퐁푸냐크의 ‘호텔 코스테’ 시리즈나 고탄 프로젝트의 일렉트로닉 탱고를 트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일 듯했다.
식당에서 음악은 BGM이어야 한다. 프랑스 근대 작곡가 에리크 사티가 말한 것처럼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이 되어, 가구처럼 한쪽을 지키고 서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는 ‘엘리베이터 음악’으로 불리는 스무드 재즈처럼 뭔가 기분 좋은 사운드면서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어떤 식당도 차이콥스키의 ‘비창’이나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틀지는 않는다.
어떤 음식에 어떤 음악이란 공식은 없다. 세종문화회관 근처 삼계탕집에서는 매킨토시 오디오로 클래식 실내악을 틀기도 하고, 홍대 앞 레게치킨에서는 레게만 튼다. 다만 음악이 음식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식당에 가는 건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려는 것이지, 그 식당의 가구를 보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 한현우(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비스트로 욘트빌
프렌치 비스트로에서 음미한 파리의 선율
몇 년 전 일이다.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친한 후배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인테리어는 꽤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벽의 몰딩 장식, 짙은 월넛 색감의 테이블 등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리고 그릇과 포크, 나이프는 유명 수입 브랜드의 것을 사용했다. 그런데 주문을 끝내고 후배와 본격적으로 오랜만의 수다를 풀어놓으려는 순간, 갑자기 우리 테이블엔 마치 포즈(pause) 버튼을 누른 것처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 때문이었다. 1990년대 가요였다. 음식 맛을 보기 전부터 이미 우리의 흥은 깨져버렸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괜스레 불편한 기분이 들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실 난 음악을 잘 모른다. 귀에 꽂히는 사운드가 편하고 좋으면 그만이다. 음악에 관한 한 까다롭지 않은 나도 그날을 계기로 레스토랑에서 트는 음악이 그 안의 분위기와 음식 맛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를 예민하게 들은 적은 별로 없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귀담아듣진 않은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 청담동 골목에 아담하게 자리한 ‘비스트로 욘트빌’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업무상 미팅이라 조금은 어색하고 어려운 기분이 드는 순간, 귓가에 달콤하고 감미로운 음색이 스쳤다. 샹송이었다. 프랑스 음식을 파는 식당에 샹송이라니 깔맞춤처럼 촌스럽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주 앉은 그녀와 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리 여행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처럼 상대방도 샹송, 아니 음악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이 음악이 어떻다는 둥의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노천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잔, 맛있는 음식, 편집숍에서 득템한 물건… 식사가 끝나갈 즈음 우리 테이블로 온 토미 리 셰프에게 레스토랑 음악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리도 아닌 음악에 대한 질문에 잠시 당황하며 웃던 그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재즈 마니아 우디 앨런의 감각적인 음악 취향이 장면 내내 흐르는 그 영화. 이곳을 진짜 파리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인테리어나 음식에 합격점을 줄 만하지만, 이 분위기를 완성하는 작은 터치는 비스트로 공간을 은은하게 채우는 무드 있는 올드 샹송이나 피아노 재즈였다. 10월 초부터 새벽 1시까지 계속되는 ‘레이트 바’를 운영하고 있다는데, 이 계절이 지나기 전 어느 늦은 저녁에 꼭 한번 다시 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가지 햄을 가득 담은 샤퀴테리나 치즈 플레이트를 곁들인 와인 한잔 기울이며, 조용하고 느릿한 재즈 선율에 취하기 위해. 글 이정주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