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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박석우의 도예 작품에는 한국, 스웨덴, 핀란드로 이어지는 담대하고도 겸손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어린 시절 풀밭에 누워 바라본 풍경에서 착안한 구름 컵, 추상 표현주의 회화가 연상되는 세라믹 조형물, 기하학 모티브의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11월 중순 막을 내린 박석우의 개인전은 50여 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압축해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명 ‘Still Life’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 그의 작품 속 반듯한 형태, 순백색과 숯검정색의 대비, 그 주위를 자연스레 흐르는 빛과 그림자의 조합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물’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듯한 체험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박석우의 작업을 기능성, 장식성 등 공예의 영역에서만 평가하기에는 담긴 의미가 너무도 많았다. 그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것, 박석우의 삶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다.

핀란드 포시오(Posio)에 머물고, 일이 있을 때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압니다. 20대에 스웨덴으로 떠나 핀란드에 자리 잡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북유럽에서 지냈기에 한국에 여행 온 기분도 들 듯합니다.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난 것이 1973년이니 벌써 50년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 말 한마디도 모르고 갔어도 도착하자마자 고향처럼 느껴졌어요. 살아가면서 딱히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1년에 한 번꼴로 방문해요.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이 있기도 하고, 고국이니 좋을 수밖에요. 다만 오래 있으면 시끄럽고, 포시오의 맑은 공기가 생각나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왜 스웨덴이었나요? 지금이야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한국에서 널리 사랑받지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정보가 많지 않았을 텐데요. 떠난 이유부터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그때만 해도 데모가 이어지던 때라 학교가 문을 닫는 일이 잦았죠. 옳고 그름을 떠나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해외로 나가겠다고 결심했는데, 미국처럼 한국 사람이 많은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당시 명동 같은 곳을 가면 미군이 보던 중고 잡지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덴마크의 디자인 잡지를 접하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 싶었죠. 학부 졸업 후 조교로 일하며 북유럽 여러 대학에 공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스웨덴 국립미술 디자인 대학에서 먼저 답변을 받았어요. 이메일도 없던 때라 편지를 교환하며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2년이 지나서야 유학 준비가 다 됐죠.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나왔으니 나무나 금속 등 다른 재료도 다뤘을 텐데, 유독 흙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교 때가 되어서야 대학에 가마가 생겼어요. 거의 그곳에 매여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나무나 금속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할 때 외주를 맡기는 일이 많았지만, 흙은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컨트롤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흙만의 따뜻함이 있죠.

작품 안에서 북유럽의 깨끗한 자연, 작가의 순수한 상상력이 조화를 이룬다. © Hansaram

쓰임을 넘어 사유를 유도하는 박석우의 도예 작품. © Hansaram

삶의 터전이자 영감의 원천인 포시오의 풍경. © Hansaram

아직도 생생한 유학 시절의 추억이 있다면요? 저는 배우러 간 건데, 오히려 제게 배우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테크닉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들 입장에선 제가 도자기의 본고장에서 왔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마음껏 작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스웨덴에 가자마자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만 있었는데, 며칠 뒤 담당 교수님이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대신 주변을 다니며 흥미로웠던 것들을 글로 적어 오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과제를 수행했지만, 점차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어요. 뭔가를 보고 듣고, 누군가를 만나는 감흥을 느끼는 새로운 지점이 있어야 작업이 발전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치게 한 거죠. 매일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어야 작가인데, 이건 다른 누군가가 알려줄 수 없어요. 2000년대 상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수업을 한 건 그 때문입니다.
스웨덴 정착은 순조로웠나요? 네, 운이 좋았어요. 일찍이 작가 생활을 시작했죠. 첫 개인전에서 한국 민화의 투시법에서 영감받은 납작한 도예 작품을 선보였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물이었죠. 전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갤러리 윈도에 전시된 작품을 쓱 보고 지나가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미소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왔죠. 스웨덴 언론도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은 성공한 기성 작가보다 홍보가 필요한 신진 작가를 많이 소개해줬어요. 3년 정도 작업에 매진하자 제 작품을 찾는 컬렉터가 많아졌고, 이후 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핀란드 홈 디자인 브랜드 펜틱(Pentik)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한 적도 있죠. 성향상 개인 작업을 선호할 듯한데, 의외의 행보로 비칩니다. 그즈음 핀란드 정부가 포시오에 도예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했고, 펜틱도 그렇게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펜틱과의 인연은 전임 아트 디렉터가 저를 추천하면서 시작됐어요. 관심도 없고 능력도 부족해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큰 전시를 열어준다고 하니 3년만 하는 조건으로 도전한 거예요. 포시오에서 지내다 보니 감정 표현을 잘하는 이곳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맞기도 하여, 아트 디렉터 직을 내려놓고도 핀란드에 머물게 됐습니다.
펜틱의 성장에 일조한 만큼 작가님도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와 마케팅 담당자, 공장장, 오너가 함께하는 월요일 회의가 있었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모두 군말 없이 따라줬죠. 그럭저럭 잘되었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제 욕심보다는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디자인을 해야 했거든요. 이견이 나오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했는데, 저도 회사도 미숙했던 겁니다. 나를 위한 창의적 작품을 만드는 것과 남이 쓸 기능적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체득한 시간이었죠.
작품 이야기를 해볼까요? 전시장을 거닐며 느낀 점은, 장대한 작업 기간에 걸맞게 작업 스펙트럼도 광활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기하학적 작품에 눈길이 갔어요. 도예 작업에서 직선 표현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기하학 연작의 경우 어릴 적 수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습니다. 단순 암기가 아닌 이해해야 비로소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기하학 연작은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합니다. 직선으로 흙을 빚어도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면 흐트러지죠.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만나면 도전정신이 샘솟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1~2년간 몰두합니다. 익숙해지고 지루할 즈음이면 다른 작업이 떠오르고요. 그렇게 세월이 쌓이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나왔네요. 한편으로 작업을 지속하다 보면 과거 작품이 달리 보이고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생각의 순환이 마치 사계절 같죠.

작업 스타일이 계획적인 것 같기도, 즉흥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루틴은 일정합니다. 이른 아침 스튜디오로 향해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작업을 시작해요. 점심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먹고, 스튜디오로 돌아가 작업을 이어가죠. 10여 년 전과 차이가 있다면 저녁에 쉰다는 것 정도입니다. 작업 자체에서는 다음 날 무엇을 할지 미리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작업이 해야만 하는 노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현재 행동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로서 날마다 새롭게 사는 거네요. 그래도 ‘이것만은 지킨다’는 원칙이 있다면요? 어떤 전시든 먼저 시선이 가는 작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여럿인데 작품은 하나다 보니, 종종 같은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직 만든 적이 없기도 합니다.(웃음) 원칙 아닌 원칙이랄까요. 언젠가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는 있어도, 일부러 만드는 것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각양각색 작품이지만, 어느 하나 빠짐없이 북유럽의 깨끗한 자연이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작가님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가요? 보통 자연 하면 아름다운 숲이나 호수 풍경이 떠오르지만, 제겐 조금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겨울 무렵 처음 포시오 숲에 들어갔을 때가 떠오르네요. 바람 소리도, 동물이 우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오직 제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신비로운 경험이었어요. 또 달 없는 밤에 스튜디오를 나서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기다립니다. 이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면 작은 나를 발견하게 되고, 이내 자연을 향한 존경심이 생깁니다. 그런 마음이 작품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2023년 포시오에 작가 레지던시 겸 전시 공간인 한사람(Hansaram)을 오픈한 것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2012년 북극 세라믹 센터(Arctic Ceramic Centre)를 세웠습니다. 제게 많은 것을 준 포시오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만든 재단으로, 도자기를 매개로 작가들을 초대해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키 시즌을 제외하고 비어 있던 호텔도 어느새 부킹이 어려워졌고,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직접 짓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사람의 ‘한’은 하나, 한국의 유산, 가족 구성원의 문화적 배경을 의미해요. 아들 한스와 딸 사라의 이름, 여기에 뮤지엄의 M을 붙인 언어유희적 작명법이기도 합니다. 접착제, 시멘트 하나 없이 지은 에코 하우스인 한사람에는 잠자리와 작업 공간, 사우나 그리고 오로라가 펼쳐지는 자연이 있습니다.
그런 한사람은 도예 작가만 이용할 수 있나요? 이미 포토그래퍼, 그래픽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등이 작업과 휴식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나이의 손님을 맞이하는 건 제게도 큰 기쁨입니다. 서로 생각을 나누며 발견한 새로운 세상이 작업에 녹아들고요. 이 행복을 가능한 한 오래 가져가는 것이 남은 목표입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