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의 하이브리드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다양한 형태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에 힘쓰는 기관이다. 1990년대부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2007년부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상 심사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옌스 하우저(Jens Hauser)가 직접 밝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만의 특별함. 그리고 테크놀로지 매체의 하이브리드에 대한 그의 소견.

20년 가까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디지털 미디어를 둘러싼 새로운 분야에 누구보다 일찍 눈을 뜬 공간입니다. 1970년대부터 린츠 시의 도시 변화에 큰 역할을 차지한 곳이기도 하고요. 린츠 하면 대부분 최첨단 미디어 아트를 떠올리잖아요. 이런 린츠의 이미지는 다른 나라에서도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어요. 린츠가 그런 명성을 얻기까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역할이 무척 컸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기획에 참여했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상에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아트 카테고리를 신설하는 데에도 힘을 보탰죠. 멕시코 트란시티오(Transitio)와 스페인 VIDA 같은 페스티벌 심사위원이자 미시간 주립대학교 아트/사이언스 레지던시 어워드의 공동 지휘자로서 다른 상과 구별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상만의 특별한 무기는 뭔가요? 예술은 점점 다양한 매체와 융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생명공학을 다루는 예술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 기관이나 페스티벌이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점에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재빨리 영리한 결정을 내린 거죠. 하이브리드 아트는 요즘의 예술 흐름에선 꼭 필요한 카테고리입니다. 아트 프로젝트가 점점 세분화되고 새로운 융합을 시도하면서, ‘디지털 음악’이나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 기존 미디어 아트의 명칭을 붙이기 어려운 작품이 많더라고요. 또 정보 기술은 물론이고 생명, 화학, 기계, 심지어 나노공학을 아우르는 기술로 관심을 확장하는 예술가도 많이 등장했어요. 이렇게 미디어 아티스트의 관심 분야가 점차 변하는 걸 보면서 요즘은 예술 작품 중 다수가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띤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상에 하이브리드 아트 카테고리를 신설한 지 10주년이라 그런지 출품작이 무려 1064점이나 됐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수상작 중 특히 인상 깊은 작품이 있나요? 올해 하이브리드 아트 부문 대상에 해당하는 골든 니카 수상자인 슬로베니아 작가 마야 슴레카르(Maja Smrekar)의 프로젝트 ‘K-9_위상 기하학(K-9_Topology)’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인간과 동물을 생리학적으로 탐구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자신과 키우는 개의 세로토닌(뇌 신경전달물질)을 결합하는 세포 하이브리드를 통해 새로운 향을 만들어냈어요. 인간과 개는 종이 다르잖아요. 그런 두 종을 결합하면 장애가 생길것이 분명한데, 세포 하이브리드를 성공적으로 실현함으로써 그만큼 예술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걸 증명했죠.
작품 심사 과정이 궁금합니다. 카테고리별로 심사위원 5명을 초청합니다. 3일 동안 온종일 심사에만 전념해요. 첫 단계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작품을 훑어본 다음 경쟁력 있는 작품 50점을 추립니다. 그중에서 주요 수상작 2점과 추가 수상작 12점을 선정하기 위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칩니다.
수상작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확실한 기준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매체를 신중하게 고르고 이를 제대로 활용한 프로젝트, 형식이나 분야를 쉽게 규정 할 수 없는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해에 흔하디흔한 트렌드에 반하는 작품을 뽑을 때가 많죠.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예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예술의 흐름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또 예술의 최신 트렌드는 뭐죠? 처음엔 예술이 실용적 측면에서 테크놀로지를 끌어들였지만, 점점 정치적 목적이나 다른 이유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흐름 때문에 오히려 문명이 빠르게 퇴행하고 생태학적으로 위기가 찾아온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올해 하이브리드 아트의 분위기는 확실히 암울합니다. 비관주의, 디스토피아, 세계 정세 불안, 기후변화 위기, 포리퓰즘 등 우울한 분위기가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어요. 최근에는 기술 낙관주의를 믿는 사람이 드물어요. 예술과 과학의 접목이 점점 활발해지는 추세지만,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투기성 디자인 프로젝트, 오락이나 산업 분야보다 전쟁에 더 많이 쓰이는 드론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회의감을 느끼곤 하죠. 결과적으로 포스트-인간중심주의가 만연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3 언털 러크네르(Antal Lakner)의 ‘Passive Dress-Double Gravity Suit’(2004년). 카지노 룩셈부르크 설치전경.
4 옌스 하우저가 미국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Beall Center for Art+Technology)에서 기획한 전시
5 오를랑(Orlan)의 ‘Harlequin Coat’(2007년). 카지노 룩셈부르크 설치전경.
예술과 첨단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테크놀로지 이전의 전통 예술 매체를 다루는 집단과 첨단 미디어 아트에 주목하는 집단이 서로 본능적 적대감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둘 다 자신이 ‘진정한’ 현대미술을 대변한다고 주장했죠. 전자는 미디어 아트가 기술력을 뽐낼 뿐, 철학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비난했어요. 반대로 미디어 아트 지지자는 예술과 기술은 상당히 밀접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전히 예술과 기술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비디오가 새로운 예술 매체로 인정받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현대사회와 현대미술에서 테크놀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때, 지금은 예술의 도구로 쓰이는 기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분석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예술이 점차 다양한 매체로 확산, 분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안하고 싶은 미래의 색다른 연구 분야가 있나요? 자신 있게 ‘그린 연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25년간 ‘그린’에 관한 많은 걸 수집했어요. 최근에는 ‘(OU)VERT’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어로 ‘오픈 그린’을 뜻하는 단어죠. 지난 5월에는 ‘환경에 유해한 친환경 콘퍼런스’를 기획했습니다. 인간은 대체로 그린이 자연을 대변하는 컬러라고 믿죠. 하지만 사실 초록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 자연 이미지인지도 몰라요. 오히려 인간중심주의적 색이죠. 그런 역설을 분석하고, 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자리였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인간의 눈에 식물은 초록색으로 보입니다. 광합성을 하려고 엽록소가 고에너지의 빨간 빛과 파란 빛 광양자를 흡수하니까요. 하지만 결국 파장의 가운데 스펙트럼은 사라지고 겉으로는 가장 큰 스펙트럼인 초록 빛깔만 보이죠. 오늘날 인간은 모든 것을 초록화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친환경적 방안을 실행하는 시늉만 하면서 환경에는 해로운 일을 할 때도 있어요.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 그걸 피하려고만 하죠. 그래서 제 그린 연구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반성이라는 측면에서, 개념으로서, 생물학적 면에서, 단어로서, 이데올로기로서 그린의 다양한 역할을 탐구합니다.
학문적 배경도 그렇고 미디어 연구, 예술사, 심리학, 생물학, 과학 저널리즘 등 광범위한 분야의 융합에 관심이 있죠.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됐나요? 그동안 제가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면, 우연한 상황의 연속이었어요. 계획하지 않았지만 삶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몇몇 사건이 있었죠. 심지어 큐레이터가 된 것도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어느 날 뮤지엄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디렉터에게 바이오 미디어 아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죠. 그러자 저더러 그 분야에 주목한 쇼를 준비하라지 않겠어요. 그렇게 큐레이터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오래도록 예술과 테크놀로지 연구에 전념한 큐레이터이자 학자로서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런 융·복합 시대에 아티스트, 철학가, 엔지니어가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구체화하는지 분석하고, 그 결합의 장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또 예술가, 나아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문화적으로 재문맥화하고 은유하는지도 연구하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시나 행사를 기획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건 뭔가요? ‘쿠라레(curare)’입니다. 라틴어로 ‘돌보고 관리한다’는 뜻이에요. 저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그들의 성장을 돕고 싶습니다. 또 전시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전시할 때, 관람자가 작품의 예술적 개념뿐 아니라 과학이나 기술적 측면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신선하고 흥미로운 대화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아트나우> 독자에게 현재 몰두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2018년 ‘그린’을 주제로 코펜하겐에서 열릴 문학, 과학, 예술 학회(The Society of Literature, Science and the Arts, SLSA) 유럽 콘퍼런스의 의장직을 맡았습니다. 또 덴마크에서 아방가르드 성향의 클릭 페스티벌(CLICK Festival)이 열릴 예정인데, 거기서 포스트-인간중심주의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어요. 프랑스 낭트에서는 ‘부동성’, ‘미시 수행성’을 주제로 퍼포머 얀 마르시치(Yann Marussich)의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장기 전시도 하나 계획 중이고요. ‘빨강을 넘어선 피’, ‘모노크롬 그린’을 주제로 한 출판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여러모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옌스 하우저
옌스 하우저는 독일 출신 큐레이터이자 이론가로 현재 프랑스와 덴마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 리서치 학자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다수의 연구를 진행하고 전시를 선보였다. 주요 기획전으로는 2003년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 L’art biotech >, 2008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린 < The Article Biennale >, 201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 Synth-ethic > 등이 있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