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중년 아저씨 되기
여자들은 말했다. 아저씨는 싫어도 콜린 퍼스는 좋다고. 우리도 콜린 퍼스처럼 늙을 수 있다. 매력이 철철 넘쳐서 20대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서른을 훌쩍 넘고, 서른 중반도 넘고 나니 ‘아저씨’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얼굴이 잘생기고 동안인 데다(!) 피부도 하얀 편이라 아직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몇몇 동기나 한두 살 많은 형들을 보면 ‘아저씨’라고 불리는 게 이해는 된다. 사실 나는 안 늙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밤마다 화장품을 엄청 바른다. 에센스는 S 브랜드의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수분 크림은 K 브랜드의 ‘울트라 훼이셜 크림’을 바른다. 순서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위에 수딩도 바른다.
늙는 게 싫은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일단 축구를 할 수 없다.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건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뛸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지금보다 어릴 때 나는 울적할 때마다 뛰었다. 지금도 뛰긴 뛴다. 내가 멀쩡하다는 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뛰고 나면 무릎이 시큰거린다. 아직 젊은데, 이 정도 나이만 돼도 전력으로 달리면 몸에 신호가 온다. 내가 축구를 하고 뛰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 때문이지만, 다시 한 걸음 나아가 고백하면 어린 여자들 때문이다. 세상에는 어리고 예쁜 여자가 많다. 그 여자들에게 어필하고 싶다. 이렇듯 늙는 게 싫은 두 번째 이유는 어린 여자들 때문이다. 사귀고 말고는 다른 얘기다. 나는 어린 여자들에게 달콤한 아저씨가 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40대가 돼도, 아니 50대 초반까지도 달콤한 아저씨가 되고 싶다. 가능할까? <킹스맨>에 나온 콜린 퍼스 아저씨처럼 늙으면 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을 위해 20대 여자 20명 정도에게 물었다. 질문은 간단했다. “언제 아저씨가 매력적이라고 느껴?”
그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그런데 1분 후에 뵙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고생한 얘기를 해야 하니까. 이 취재를 위해 20대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오빠, 그렇게까지 해서 어린 여자를 만나야겠어?” “남자들은 왜 어린 여자를 그렇게 좋아해? 지들도 같이 늙으면서.” 나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취재라고. 스물여덟 살인 한 후배는 “내년에 스물아홉이야. 나한테 물어봤자, 곧 서른인데”라며 한참 넋두리를 쏟아냈다. 나는 말해주었다. “서른인 여자 후배한테도 물었어. 만으로 스물아홉이라.” 농담한 건데 그녀는 웃었다. 여자들의 대답을 듣기 위해 서른이 되는 두려움에 빠져 있는 여자 후배의 넋두리까지 들었다는 말이다.
이제 공개한다. 20명에 달하는 어리고 예쁜 여자는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랑 사귈 일은 절대 없어. 40대? 50대? 상상이 안 돼. 왜 그래야 돼?”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아쉬워하지 말자. 나는 다시 물었다. “<킹스맨> 봤지? 거기 콜린 퍼스 나오잖아. 그런 오빠 아저씨는 멋있지 않아?” 그때부턴 반응이 달라졌다. “그런 아저씨라면, 음, 사귀지는 않더라도, 데이트 정도는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차승원도 40대 아니야?” 내가 대답했다. “야, 40대 정도냐. 그 형 나랑 열 살 차이야. 1970년생이라니까.”
결론은 이랬다. 콜린 퍼스 형과 차승원 형 정도면 데이트할 수 있다. 어쩌면 사귈 수도 있다. 그들은 거듭 강조했다. 콜린 퍼스랑 차승원만 매력적인 거라고. 보통 그 나잇대 남자들은 그냥 다 아저씨라고. 하지만 나도 그렇고, 우리가 콜린 퍼스, 차승원보다 못한 게 뭔가?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봐. 아저씨가 멋있게 보인 적이 한 번은 있을 거야. 없으면 상상이라도 해봐.” 내가 다시 물었다. “나이에 안 맞게 귀여울 때 멋있을 거 같아.” 한 여자가 말했다. 다른 여자들에게도 물었다. “나이에 안 맞게 귀여울 때 멋있어?” 여자들은 잠깐 생각하더니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무뚝뚝할 것 같은데 자상한 거. 영화표 예매 안 해놨을 것 같은데 예매해놓은 거. 가끔은 떡볶이를 먹자고 말하고, 슬픈 영화 보면 훌쩍이기도 하고, 이런 거.” 반전 매력인가? 딱 나네. 후훗. 나이에 안 맞는 귀여운 짓이라면 난 60대가 돼도 할 수 있다.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고 생각하는데 한 여자가 비관적인 말을 했고, 그 후로 여럿이 같은 말을 했다. 바로 이 말. “꼰대 짓 안 할 때 멋있어.” 나이 먹은 남자가 꼰대 짓을 안 하는 게 가능한가?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이 부분은 이해해야 한다. 늙는 것을 막을 수 없듯, 나이 든 남자가 꼰대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나는 고작 서른여섯 살밖에 안 됐는데 후배들을 보면 잔소리를 엄청 한다. 꼰대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꼰대 짓을 하라고 사회화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천편일률적 꼰대화는 설명이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형들만이라도 지금부터 멋진 아저씨가 되기 위해 꼰대 짓을 멈추기를, 그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글렀다. 형들에게 희망을 걸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잔소리 안 하고, 내 얘기 잘 들어주는 착한 아빠 같은 아저씨면 멋있을 것 같아”라고 대답한 여자가 꽤 있었다. 착한 아빠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꼰대는 착한 아빠가 되기 어렵다.
이쯤에서 의외의 대답을 소개하면 이렇다. “김윤석, 류승룡처럼 지저분하면 섹시할 거 같아.” 늙는 걸 받아들이되, 멋있게 늙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의미 아닐까? 지저분하다는 건 더러운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뜻할 거다. 그렇게 늙으려면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해서 몸이 퍼지는 걸 막고, 머리카락은 미용실보다 바버숍에서 자르고, 빛바랜 가죽 로퍼를 대충 신더라도 고급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지. 나는 이 대답을 듣고 풍요로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슷한 대답으로 “자기 관리 잘하고, 특히 털 관리 잘한, 멀끔한 아저씨는 괜찮지”라는 말도 있었다. 어렵다. 지저분한 아저씨가 좋다는 여자도 있고, 멀끔한 아저씨가 좋다는 여자도 있고. 어느 쪽이든 “배 나온 아저씨는 싫어”라고 말했다.
“나보다 뭘 못해서 당황할 때”라고 대답한 여자도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내가 뭔가 가르쳐줄 게 있다는 게 좋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면 날 가르치려 들 것 같잖아.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가 좋지.” 기억해두자. 마음에 드는 어리고 예쁜 여자를 발견했다면, 일부러 뭔가 못하는 척하자. 그녀가 다가와 비웃을 수 있게. 웃으며 그녀가 차근차근 알려준다면, 어쩌면 그린라이트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한다는 건 결국 잘생긴 어린 남자들과 싸워 이긴다는 것이다. 다행히 늙은 형들이 어린 남자애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다. “남자애들은 가끔 징징대는데 아저씨들은 안 그러더라. 차분히 기다려줄 때 괜찮은 듯.” 열네 살 연상의 남자와 사귄 경험이 있는 여자 후배가 말했다. 사실 나하고도 잠깐 만났는데 이런 말도 했다. “오빠는 말이 없어서 좋아. 꼬치꼬치 따지면 짜증 나거든.” 그 애가 짜증 낼까 봐 나는 항상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술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도 신경 안 쓰는 척하고. 이날도 30분 동안이나 그녀의 넋두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오빠, 아저씨가 왜 아저씨인 줄 알아? 스물여섯 살 여자와 스물일곱 살 여자를 다 똑같은 20대로 본다는 거.” 나는 그제야 알았다. 잘생기고 배도 조금밖에 안 나온 내가 왜 가끔 아저씨라 불리는지.
자, 이제 뻔한 대답들이 남았다. “나이 든 남자라면 당연히 나한테 경제적 부담은 안 주겠지. 쿨하게 돈 쓰는 남자 보면 약간 흥분될 것 같긴 해. 솔직히.” “돈이 많은 사람은 여유 있어 보이잖아.” “만날 바쁘고 일에 치여 사는 아저씨는 매력 없어. 즐기면서 사는 아저씨가 멋있지.” 역시 돈인가? 돈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도 생길 텐데. 그래, 돈이다. “운전 잘할 때도 멋있어”라고 누군가 말해서 내가 대꾸했다. “20대 남자애들도 운전 잘해.” 그녀가 대답했다. “걔들은 좋은 차를 안 타잖아.” 역시 돈이네.
정리하자. 콜린 퍼스와 차승원은 부자다. 얼굴도 잘생겼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다. 배도 안 나왔다. 당신도 그런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리고 예쁜 여자들의 요구 사항은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답이기도 하다. 그들은 멋진 남자의 표상을 떠올린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게 늙었다고 말한다. 아저씨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지만 자연스럽게 아저씨가 된다. 늙었다는 단어 뒤에 숨어 권태와 게으름과 무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딜런 토머스는 진작 이렇게 썼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라 / 노년은 날이 저물어감에 열을 내고 몸부림쳐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순순히 늙지 말자. 어린 여자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허벅지와 팔뚝의 근육만으로도 세상에 두려울 게 없던 형들의,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이우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