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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니, 꿈의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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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의 개인전이 10월 8일부터 DDP M1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린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이번 회고전은 여든을 넘긴 노년의 예술가가 우리에게 안기는 반가운 선물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멘디니. 한국 전시를 위해 기획, 디스플레이, 아트 상품 개발, 홍보물 디자인까지 직접 꼼꼼하게 챙겼다.

​Photo by Carlo Lavatori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전공을 살려 건축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건축 전문 잡지 <카사벨라>, <모도>, <도무스>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전설적인 스튜디오 알키미아(Studio Alchymia)에서 기능주의에 반하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디자인 운동을 이끌었다. 1989년 동생 프란체스코 멘디니와 함께 밀라노에 ‘아틀리에 멘디니’를 열면서 이론가에서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건축가로서 알레시 본사, 히로시마 파라다이스 타워, 흐로닝어르 미술관, 아로사 카지노, 베로 나의 비블로스 아트 호텔, 나폴리의 지하철 역사, 하노버의 버스 정류장 등을 디자인 했으며 그 독창성과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유러피언 건축가상(European Prize for Architecture)을 받았다.

1978년 선보인 멘디니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 기성품 소파에 색점이나 색면을 입혀 새로운 가구로 탈바꿈한 ‘리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기본적 단계는 호명이다. ‘안나.’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 이국적 여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환생’이라고까지 불리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그는 흔하디흔한 와인 오프너에 옛 연인의 이름을 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오프너 ‘안나 G’는 치마를 입고 웃고 있는 단발머리 여인의 모습이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편견을 깨는 과감한 색채의 향연, 키치와 고급 예술의 경계를 무화(無化)하는 날카로운 유머, 전통과 미래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뛰어넘는 탁월한 시간 감각이 멘디니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는 혁신적 디자인의 본질인 인간적 감성이 관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누군가는 멘디니를 ‘꿈의 생산자’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꿈꾸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세상 사람에게 하나 둘 제시했다. “저는 제 직업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84세 예술가! 전시를 앞둔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노블레스 맨>이 먼저 만났다.

한국 독자에게 당신의 개인전에 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전시에 소개할 작품을 선별하는 일은 그 작품에 담긴 나 자신의 감각을 표현하는 것과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을 이룬 요소와 사물을 보여주는 거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내 경험과 노력이 어떤 단계를 거쳐 변해왔는지 살피고, 결국 산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겁니다.

알레시, 에르메스, 스와로브스키, 까르띠에, 스와치 같은 글로벌 기업 외에도 한국에서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한국에서 유독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스튜디오에서 15년 동안 일한 수석 디자이너 차영희 씨 덕분입니다. 매우 감각적인 디자이너예요. 한국 기업과 일하면서 서울의 중산층에 대해 알게 됐는데, 밀라노 사람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2008년 광주의 명예시민으로 임명됐을 때가 기억에 남네요.

지난 4월 전시 준비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의 전시장 벽면 까지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건물의 크기, 내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곡선, 사방이 백색인 공간 등 DDP는 누군가 마술을 부려놓은 곳 같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캐릭터를 잡는 데 많은 영감을 줬죠.

당신의 작품 세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단어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굳이 한 단어를 고르라면 ‘시(poetry)’를 선택하고 싶어요. 저는 감성적이고 시적이며 표현적인 사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람들도 분명 긍정적 기운을 느꼈을 거예요.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멘디니의 개인전 전경

멘디니의 디자인 중 가장 유명한 와인 오프너 ‘안나G’(2003)

‘저기에서’ 혹은 ‘천국에서’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인 의자 ‘Lass’

이탈리아 디자인의 국제적 부흥을 이끌며 디자인 역사의 새 장을 펼쳐놓은 주인공입니다. 누군가에겐 영웅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적이었겠죠.
많은 사람과 일하는 것이 즐거워요. 심지어 적과도요. 인생의 모든 순간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 아이디어, 사물까지. 그 모든 것이 모여 인생이라는 시간의 기준점이 됩니다. 단순한 것이 쌓여 전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러나 보통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맞아요. 제게는 적이 있죠.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보다 실수투성이인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언제나 나 자신을 의심하려고 애씁니다.

당신의 작품에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감성이 물씬 느껴집니다.
내 작품 깊숙한 곳에는 미궁이 존재합니다. 출구를 찾으려 해도 소용없는 미궁이죠. 그리고 그 안에 내 인생이 뒤엉켜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매번 인생의 다른 순간과 조응합니다. 지금 여기의 생각과 어린 시절의 생각이 비극적이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건축가, 이론가, 잡지 편집장, 디자이너, 작가 등 당신의 커리어는 거의 모든 예술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제 작업 방식은 <카사벨라(Casabella)>, <모도 (Modo)>, <도무스(Domus)>의 잡지 편집장을 하면서 완성됐어요. 잡지는 그래픽과 콘텐츠 기획을 포함해 매우 정교한 메타-디자인을 해야하지만, 정작 페이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채워 지죠. 잡지 편집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거나 건축을 하는 것과 같아요.

샘솟는 창작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어쩌면 그 비밀은 아주 간단할지도 몰라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

최근에 당신을 매혹한 것이 있나요?
아주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폭력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할 만한 긍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에 늘 빠져있죠. 저는 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가끔 여행도 떠나지만 대부분 아틀리에에 머물러요. 제 집이기도 하고요. 밤 문화를 즐기지는 않아서 영화나 연극, 콘서트 같은 행사에는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아틀리에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7시 30 분까지 일합니다. 점심은 친구이기도 한 아틀리에 직원과 함께 먹죠. 일을 마치면 TV를 보거나 명상, 독서 등을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냅니다. 공원 근처에 있는 수영장에 걸어가기도 하죠. 오거닉 저녁을 요리해 먹습니다. 그리고 자정쯤 잠들죠.

아름다움의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평생에 걸쳐 ‘아름다움’을 강조해왔는데요.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고 있다고 믿어요. 창조성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습니 다. 취향의 수준을 고양하기 위해선 개인의 선택을 특징짓는 서로 다른 방식을 실행해 보는 것이 중요해요. 평범한 사람도 옷이나 집 안의 가구를 고를 때는 탁월한 선택을 하죠. 예술의 아름다움에 관한 의견을 표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남자만의 ‘멋’ 말입니다.
‘남자는 이렇다’는 식의 미사여구는 피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면 무엇을 묻고 싶은가요?
이렇게 묻고 싶네요. “행복이 뭐지?” 물론 저는 답할 수 없을 거예요.(웃음)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아틀리에 멘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