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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삶의 내비게이터

LIFESTYLE

1월, 많은 이들이 한 해의 운세를 궁금해하는 시점이다. 지나간 어제는 누구나 알지만 한 치 앞 내일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 달리 보면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이 축복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학문과 노선을 만들어왔다. 동양철학에 뿌리를 둔 명리학 또한 어제를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르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비게이터 중 하나다.

사람들은 왜 사주를 보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한다. 운명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로부터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서양에서는 점술이나 역학의 체계를 눈부시게 발전시켜왔다.
농촌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대부분 태어난 곳에서 사방 100리를 벗어나보지 못하고 죽었다. 계급과 신분이 정해진 봉건시대에는 농민 신분으로 태어났으면 농민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삶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물질적 성패가 삶의 질을 극단으로 끌고 가고, 양극단을 오가는 불확정성이 높아졌다. 사회적 불확정성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불안지수도 높아진다. 불안을 느끼는 연령층도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과학적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가 삶을 지배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심리적 위로나 위안을 필요로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우리 주변은 이런 이들을 위한 시장이 둘러싸고 있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자신의 운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이 시장은 대부분 어두컴컴하고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10년 전쯤 이미 규모가 연간 4조 원 정도였고, 지금은 6~7조 원 정도로 커졌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신의 운명에 대한 답을 남에게서 찾으려 할까?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사회적으로는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 미쳤고, 그 영향이 개인에게 정신적 억압과 피로로 쌓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라가 발전해도 개인의 공허함과 불안감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정신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스스로 해결을 못하니 결국 외부에서 답을 구하는 형국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 그리고 혼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운명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이렇게 귀결된다.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왕의 사주를 타고난 자는 왕이 될 수밖에 없고, 거지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운명이 정말 결정돼 있다면 어떤 학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서구의 점성학계도 1000년이 넘도록 많은 논쟁을 벌였지만 운명결정론을 폐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조언할 뿐’이라고 한다. 학문은 그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과 어떤 선택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려주는 일종의 카운슬링 역할을 한다는 것. 명리학도 마찬가지다.

명리학에 대한 오해
한 인간의 운명이 단순히 태어난 연월일시, 즉 4개의 기둥(사주)에 의해 고정되고 결정된다는 이해야말로 명리학에 대한 가장 큰 오독이다.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천변만화하는 우주적 속성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변함없이 말해주는 학문이다. 우주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선악도, 우열도 없다. 그저 서로 다른 가치, 다양한 가치를 지닌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점성학이 천문학에 기반을 둔다면 동양의 명리학이 기대는 가장 중요한 뿌리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다. 이는 동양 인문학의 가장 근원적인 우주 원리론이다. 음양오행에서는 모든 우주의 요소가 고정되어 있거나 불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자는 양, 여자를 음이라고 자동으로 연상하는 음양의 논리조차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의 사주도 100% 양이거나 100% 음인 경우는 없고, 모두 음과 양의 요소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음양이 확대된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은 사계절과 환절기를 결부시킬 수 있다. 만물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봄은 목(木), 만물이 활성화하는 여름은 화(火), 모든 것이 여무는 가을은 금(金), 모든 것이 죽음으로 돌아가는 겨울의 기운은 수(水), 계절을 매개하는 환절기는 토(土)이며 이 기운들은 고정되지 않고 순환한다. 각각의 오행은 다른 오행과 서로 도와주거나(생(生)하거나), 누르는(극(剋)하는) 관계를 맺는다. 한 사람의 사주에는 각각 오행의 기운이 들어 있고, 그중에서도 좀 더 강한 기운이 있다. 오행의 이런 상생상극을 정확히 이해하면 명리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에 보다 깊이 다가갈 수 있다.
명리학은 ‘인간과 그들의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 것인가? 조화롭게 구성한 그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결코 어떤 가치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니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을 무시하거나 종속시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운명이 정해져 있느냐는 질문도, 좋은 사주인지 나쁜 사주인지에 대한 질문도 애초에 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명리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는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단어 자체가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다. ‘운(運)’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상황을 뜻하고, ‘명(命)’은 모든 생명이 태어날 때 우주에서 부여받은 소명을 말한다. 명과 운을 합친 말이 운명이고, 명리학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명을 안다는 것,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나아가 그 소명의 인자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여기엔 성격과 심리, 강점과 약점이 모두 포함돼있다. 이것만으로도 명리학은 어떤 것보다 깊이 있는 인간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이 시시각각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 알고, 나아감과 물러남의 타이밍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 명을 잘 운용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각자의 삶에 주어진 명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 먼저 자각해야 한다.
명리학은 미래를 맞히는 점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학문이다.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는 짧은 시간에 나의 인생을 이해할 수는 없다. 스스로 직접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명을 어떻게 잘 운용할지 고민하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로 그 갈림길에서 명리학은 삶에 아주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학문이다.

 

PROFILE 강헌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몇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며 20여 년간 대학에서 대중음악사를 강의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2년간 명리학을 연구해왔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명리학 강좌를 진행했고, ‘哲공소’라는 명리학 연구소를 열었다. <명리>,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1·2>, <전복과 반전의 순간> 등의 저서가 있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강헌(명리학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