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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살롱

LIFESTYLE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산실인 살롱이 부활했다. 주제도, 방식도 여러 가지다.

1 올브라이트 살롱 내에 위치한 라운지.

몇 해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1층에 전시한 앙리 팡탱 라투르(Henri Fantin-Latour)의 작품 ‘테이블 주변의 사람들’ 앞에 한참을 넋 놓고 서 있었다. 8명의 신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속에 19세기 유럽 시단을 주름잡은 시인 폴 베를렌과 아르튀르 랭보가 보였다. 우리에겐 영화 <토털 이클립스>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그들. 턱을 괴고 베를렌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랭보의 등 뒤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책을 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남성까지,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어떤 상황인지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 그림은 동시대 시인, 정치가, 평론가의 실제 사교 모임을 옮겨 그린 것으로 당시 살롱 문화를 보여준다.
갑자기 이 그림을 떠올린 건 근래 ‘살롱’을 키워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어서다. 소수의 지식인이 모여 문학과 예술적 담론을 펼치던 17~18세기 프랑스식 살롱과 달리 현대판 살롱은 와인, 여행, 운동, 패션 등 다양한 관심사를 향유하는 추세다. 열띤 토론의 장보다 ‘공간’을 매개로 취향을 공유하고 함께 즐기는 사교 클럽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도 다르다.

2 단 장비를 갖춘 서티 나인 몬테카를로 트레이닝 존.
3 사교의 장이 된 까르띠에 메종 청담 3층 프라이빗 살롱.

한데 폐쇄적인 문화는 여전하다. 과거에도 초대를 받아야 참가할 수 있어 명망 있는 살롱에 발을 들이기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주로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가입할 수 있는 멤버십을 내세워 공동체를 형성한다.
와인을 마시는 것은 그 한 병에 담긴 역사와 배경을 함께 음미하는 일이다. 그러니 와인을 즐기는 자리는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문화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 사교계의 중심지인 메이페어 지역에 오픈한 오스왈즈(Oswald’s)는 상류층을 위한 은밀한 회원제 와인 바다. 그들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화려한 바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찬미한다. 본인이 수집한 와인을 개인 셀러에 보관하며 즐길 수 있고, 클럽 안에 잰시스 로빈슨이 컨설팅한 와인 숍이 자리해 최상급 혹은 희귀 빈티지 라벨을 구입해 마실 수도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는 좀 더 적극적인 와인 살롱 문화가 숨 쉬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중심부인 세인트헬레나에 위치한 나파밸리 리저브(The Napa Valley Reserve). 윌리엄 할란 회장은 “우리 회원은 와인 한 병에 깃든 생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을까? 이곳은 포도밭을 나눠 직접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독특한 방식을 추구한다. 즉 나파밸리에 나만의 작은 포도밭을 소유하는 셈. 컬트 와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할란 에스테이트의 와인메이킹 팀, 셀러 마스터, 라벨 디자이너등 분야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접 와인 양조에 참여한다. 현재 회원은 400여 명. 회원 자격은 비공식이며 초대에 의해서만 가입할 수 있다. 보증금으로 15만 달러(1억 6000만 원)를 내야 하는데도 이 모임에 가입하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여행과 휴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영국에 ‘최고의 여행가야말로 최고의 신사’라 여기는 더 트래블러스 클럽이 있듯 국내에는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숙녀를 위한 아난티 클럽 청담이 있다. 아난티 여성 회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이 특별한 모임에선 여행을 주제로 한 아트 클래스도 열린다.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 각국의 뮤지엄을 소개하는 강의는 미술관에 대한 단편적 지식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이해를 담아 소개해 반응이 뜨겁다. 지적 욕구를 충족한 후 꽃과 나무로 가득한 도심 속 정원에 둘러앉아 차와 브런치를 즐기는 시간, 낯선 이와 각자 경험한 여행 이야기를 꽃 피우며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운동이야말로 여럿이 함께해야 의지가 샘솟는 활동. 건강하고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활동적인 만남도 있는데, 일반 멤버십 피트니스 클럽과 달리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아우르며 사교의 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 차이다. 지중해와 맞닿은 모나코 몬테카를로 지역에 위치한 서티 나인 몬테카를로(Thirty Nine Monte Carlo). 이곳은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폴라래드클리프와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 등이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 전문가의 일대일 지도를 받을 수 있으며 플라잉 요가, 복싱, 필라테스, 바르(발레와 필라테스를 결합한 운동) 등 잘 짜인 그룹 운동 프로그램이 매우 다채롭다. 함께 몸을 움직이며 자연스레 소통하고 자신만의 노하우와 스킬을 나눌 수 있다. 건강을 포함한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커뮤니티답게 미용실, 스파, 레스토랑, 바 등을 갖춰 신체적·정서적 힐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4 개별 건강 상태를 고려한 맞춤 요리를 선보이는 그레이스 벨그라비아.
5 아난티 클럽 청담 내부.

이와 비슷하게 영국 런던의 그레이스 벨그라비아(Grace Belgravia)는 여자라면 한 번쯤 참여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적 피트니스 전문가 맷 로버츠(Matt Roberts)가 이끄는 트레이닝 팀의 지도에 따라 몸을 풀고, 개별 건강 상태를 고려한 맞춤 요리를 맛보며 ‘건강’한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곳. 단, 가입비를 낸다고 다 회원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빅토리아 베컴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기존 회원의 추천서와 클럽 위원들의 심사를 거쳐야 입회할 수 있다.
한편 전통적으로 정치적 연대와 비즈니스 협업을 위한 모임이 남성 위주로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그 틈을 비집고 커리어우먼을 위한 사교 모임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가장 주가가 높은 올브라이트(AllBright)는 일과 라이프스타일의 조화를 꿈꾸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신여성이 타깃이다. 이들은 미팅 룸, 이벤트 공간, 피트니스, 스파, 레스토랑 등을 갖춘 살롱(영국 블룸즈버리에 위치)에서 자유롭게 만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특히 여성이 리더로 성공할 수 있게 회계, 제품 개발, 마케팅, 홍보, 고용 등에 관해 실질적 담론을 펼치는 아카데미를 운영해 워킹우먼의 삶을 지지한다.

7 멤버십만 이용 가능한 레스토랑 시그니엘 클럽.

이외에도 국내에는 소수의 고객에게만 개방하는 까르띠에 메종 청담 3층의 프라이빗 살롱과 시그니엘 서울 107층에 자리한 시그니엘 클럽이 사랑방 같은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보통 패션 브랜드가 VIP 고객의 쇼핑과 피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달리 까르띠에 메종 청담은 널찍한 라운지에 모여 앉아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자유롭게 대화한다. 여경옥 셰프가 지휘하는 명품 중식을 맛볼 수 있는 시그니엘 클럽은 초고층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미식을 향유하며 오직 멤버십 회원에게만 입장을 허락한다.
프랑스에서 살롱은 가장 빛나는 단어 중 하나다. 그 짧은 말은 우아함, 사상의 진솔함, 예술에 대한 열정 등을 포괄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살롱은 어떨까? 취향의 다양함, 고급스러운 전용 공간, 친목 도모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도 살롱의 본질은 변함없다. 뜻이 맞는 이들이 한데 모여 순수하고 즐겁게 교류하는 것.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