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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디자인

LIFESTYLE

40년 가까이 정병규가 디자인한 것은 무수한 표지나 레이아웃만이 아니다.

책과 문화, 디자인의 미래에 대한 이 시대의 거대한 담론이다.

 

“책 구경 좀 하다 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첫마디는 유연하고도 꼿꼿했다. 이를테면 최근 서예박물관의 <최치원- 풍류 탄생>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그는 최치원의 시 ‘추야우중’을 타이포그래피로 재해석했다)이 주는 섬세하면서 묵직한 느낌과도 같았다. 통의동 작은 서점에서 사진 촬영을 마친 뒤, 황급히 인터뷰 장소로 움직이려던 에디터는 당황했다. 촬영 내내 어떤 앵글이 좋을지, 어떤 배경이 어울릴지 고민하느라 그만 잊고 말았던 거다. 사방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리고 정병규가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열렬한 독서광이라는 사실을.
어떤 분야에 ‘정통’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나 무엇을 물어도 막힘없이 이어지는 대답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 디자인올림픽 자문위원이라든지 한국출판문화상백상특별상 수상자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도 아니다. 적어도 책에 관한 한 그는 따로 질문조차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성. 그것은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40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해왔지만, 한 번도 불황이란 말을 듣지 않은 해가 없었어요. 사실 우리 출판 시장은 어떤 형식으로든 굉장히 커지고 다양해졌는데 말이죠.” 자리를 옮겨 앉자마자 그는 자연스레 먼저 ‘불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책은 이제 거의 자연물이 되었어요. 응당 있어야 할 것, 없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해지면 문제가 생기듯, 이미 책은 인류 문화의 한 요소예요. 상품으로서 유통 구조는 존재하되, 그 구조적 문제 때문에 죽고 사는 대상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고 보면 불황이라는 단어는 매년 끊임없이 출판계에 오르내렸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문제라는 말도 많았다. 정병규는 그런 ‘출판사 중심의 독서운동’을 그만두라고 꾸준히 주장해온 인물이다. “책의 문화와 출판 영업은 다른 영역이란 얘기예요. 오히려 독서 문화의 본질과 가치는 다른 데서 만들어가고 있죠. 이제는 책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책을 문명사적 문제, 인간 조건의 문제로 생각해야지, 베스트셀러 판매율만 놓고 불황이라 우기며 독서 운동이나 벌이고, 그걸 온 국민이 동의해야 하는 가치로 포장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책에 대한 예의고 나아가 우리 문화에 대한 예의라고, 칠순을 앞둔 한국출판계의 거장은 담담히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정병규는 작가를 꿈꾸는 혈기 넘치는 문학도였다. 그러다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 재입학하며 문학 이론으로 방향을 틀었고, 학보 <고대신문> 편집국장을 맡아 27명의 기자를 이끌었다. 신문 지면을 구성하며 레이아웃 디자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후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자 정병규는 월간 <소설문예>를 통해 본격적으로 출판계에 발을 들였다. 민음사 편집부장을 거쳐 1978년 홍성사를 설립했고, 이른바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며 기획 및 편집자로서 전성기를 일궈냈다. 그가 다섯 권을 기획하면 네 권은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대. 아이러니한 건 본격적으로 북 디자이너로서 인생을 고민한 시기 역시 그즈음이라는 사실이다. “출판사는 잘되었는데 일 자체는 여러 가지로 적성에 안 맞았어요. 물론 돈 버는 데 집중했다면 계속 그 길로 갔겠지만, 인생이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걸 오래 전부터 느껴왔거든요.”
도화선이 된 건 1979년 유네스코가 일본에서 주최한 편집인 연수였다. 발달한 일본의 출판 디자인 문화도 충격적이었지만, 잠시나마 강제로 일에서 손을 놓으니 자연스레 인생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결국 그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행복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땐 의무감이라고 할까, 우리 문화의 방향성에 대한 압박감이 굉장히 컸어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장르고 영역인데, 국내에서는 그런 걸 안 가르쳤거든요.” 36세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감행한 그는 2년 뒤 귀국해 국내 최초의 편집 디자인 전문 회사 ‘정병규출판디자인’을 열었다. ‘한국 북 디자이너 1호’란 수식어는 이때 생겼다. 그는 출판 문화의 혁신을 이끌며 오늘날까지 3000여 종의 책을 디자인했다. 사실 주변에서 하도 묻길래 ‘대략 그 정도’라고 대답해온 거지, 정확한 수는 정병규 자신도 모른다. 대신 그는 스스로의 디자인 인생 전반을 녹여낸 성과로 ‘테이프 타이포그래피(tape typography)’를 꼽았다. 테이프를 찢고 이어 붙여 새로운 문자 형태를 만드는 작업인데, 소설 <백색인간>, 시선집 <성스러운 뼈> 등이 대표적 예다. “보통 타이포그래피는 주어진 글자를 가지고 작업하지만 나는 만들어서 해요. 옛날 동양 문자의 이미지성을 디지털 시대 이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완성한 방법론이죠.” 그가 편집 디자인계에 남긴 또 다른 지문은 ‘일책일자(一冊一字)’론. 하나의 내용에는 하나의 고유한 글자꼴이 있다는 뜻이다. 정병규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문화적으로 사유하는 이 모든 행위 역시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게 디자인이란 사실 인문학적 개념에 가깝다. 현재 운영하는 디자인 교육기관 ‘정병규학교’에서 새로이 시각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책을 가리켜 “손과 눈과 정신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한 정점에 있다”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책을 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죠. ‘읽다’와 ‘보다’, 그리고 앞의 둘을 가능케 하는 ‘만지다’. 그 모든 걸 통합해 살아 있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북 디자인이에요.” 이때 그가 특히 강조하는 건 손의 중요성. 책의 종말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돌 때마다 끊임없이 종이책과 e북의 차이에 대해 역설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간단해요. 장사꾼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싸움을 붙여 먹고살고, 문화는 서로 손을 잡아야 살죠.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예요. 어쨌든 손을 사용해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은 아날로그를 벗어날 수 없어요. 대표적인 게 음식이에요. 음식은 디지털로 대신할 수 없잖아요. 수도없는 맛있는 음식 사진이 빵 부스러기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 차이를 이해해야 해요.”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장점을 결합할 때 비로소 새로운 책의 미래가 열린다고 믿는다.
반평생을 출판 디자인에 헌신해왔지만, 그는 모든 작업이 어려웠고 여전히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사실 노력해서 얻는 건 지식이고 연륜이지, 창작의 고통을 상쇄하는 방법이 아니다.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다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후배들에게도 계속 말해요.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른 일 찾아도 되니 디자인을 하지 않고는 못 살겠다 싶은 사람만 하라고. 한 사람이 수고하면 만인이 행복하고, 한 사람이 실수하면 만인이 불행해지는 게 문화를 생산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그는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맨다. 디자인을 하지 않으면 못 사는 사람, 정병규는 책이 있어 누구보다 행복한 디자이너니까.

에디터 류현경
사진 이영학  장소 협조 더 북 소사이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