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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잘 쓰고 있습니까?

LIFESTYLE

누구나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말하는 시대. 그리고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것이냐에 대한 고민 아닌 고민.

 

“어떻게 하면 글을 좀 쉽게 쓸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시한부로 개설한 웹사이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처(www.welluneednt.com)’에 올라온 독자의 질문이다. 하루키의 답변은 간단했다. “글을 쓴다는 건 여자를 유혹하는 것과 같아서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하게 되지만, 기본적로는 타고나야 합니다. 어쨌든 열심히 하시길.” 맞는 말이다. 한편 최근 출간한 <고종석의 문장>에서 고종석은 “불행하게도, 모든 뛰어남이라는 건 압도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분야에 따라서 타고난 정도는 큰 차이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음악이나 수학과 달리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고종석도 타고남과 갈고닦음 중 어느 하나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차이는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타고남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우린 글쓰기에 대한 신화에 붙들리기 쉽다. 글쓰기는 재능이 필요하고 영감에 의존한다는 신화 말이다. 듣기엔 그럴듯한 이 신화엔 사실 그냥 넘길 수 없는 함정이 있다. 어차피 타고난 몇몇 작가의 재능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것. 그 때문에 평범한 사람 대부분은 정확한 문장을 학습하는 게 전부라는 관점을 강화한다.
최근 대형 서점의 서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글쓰기 안내서는 대개 그 초점을 ‘갈고닦음’에 맞춘다. 재능이 전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이런 책은 쓸모가 없다. 타고난 재능을 강조하면 글쓰기는 예술에 가까워지고, 그럴 때 그건 소수의 과제가 돼버리니까. 반대로 갈고닦음에 무게를 두면 글쓰기는 일반 대중의 자리로 내려온다. 그럴 때 글쓰기는 우리 모두를 아우르는 주제가 된다. 그 때문인지 글쓰기 안내서를 고르는 대부분은 훈련과 연습으로 자신에게도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비싼 돈을 주고 글쓰기 안내서를 산다해도 그 책이 결코 ‘글쓰기’를 알려주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책은 단지 당신에게 글쓰기에 관해서 도움을 줄 뿐이다. 글쓰기 안내서를 대하는 가장 나쁜 태도 중 하나가 책에서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현시켜줄 보물 상자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보물은 ‘글쓰는 삶’이라는 여행을 위한 연장 상자를 정비하는 것 정도다. 내게 글쓰기를 위한 연장 상자가 있는지, 있다면 거기에 어떤 도구가 들어 있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채울지 살피는 일 말이다.
하지만 비록 책을 통해 연장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머리를 쥐어뜯진 말자. 투박한 문체와 어설픈 구성으로 필력이 부족해도, 글쓰기를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여기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글은 탄생하는 법이니까. 철학자 카를 포퍼(Karl Popper)가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고 했듯, 글쓰기도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과정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글쓰기의 전략이란 일상 생활에서 청소하고, 장 보고,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능숙한 필자란 글쓰기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능숙한 생활인과 마찬가지로 잘 개발하는 사람일것이다.
또 우리는 앞으로 그간 읽은 좋은 문장으로 이뤄진 책들도 다시 꺼내 펼쳐봐야 한다. 책을 읽으면 영양가 있다니까 무작정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나가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같은 시간, 같은 에너지와 돈을 쏟는다면 이왕이면 제대로 작정하고 읽을 책, 좋은 문장으로 이뤄진 매력적인 책을 택하길 바란다. 그런데 좋은 책이란 게 대체 뭐냐고?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걸 자기답게 표현한 책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작가는 모두 자기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 하루키가 그렇고, 헤밍웨이가 그러하며, 찰스 디킨스와 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카포트, 레이먼드 챈들러, 더글러스 애덤스, 고종석, 김승옥 등이 모두 삶의 파고를 헤쳐가며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한 작가다. 이들은 모두 스타일이 좋기 때문에 독자에게 사랑받고,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스타일이라는 건 곧 쓰는 사람의 삶, 경험, 자세, 태도가 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좋아하는 작가가 글을 쓸 때 어떤 사고를 거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사고를 통해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는 걸 보며, 좋은 사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좋아하는 작가의 자서전과 대표작을 통해 그들의 생활을 엿보거나 필사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이런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은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예술 지향의 글쓰기를 한다면 이러한 영향조차 모방으로 이어질까 꺼리겠지만, 삶을 향한 글쓰기를 염두에 둔 이라면 모방이나 아류의 그림자가 조금은 스쳐도 괜찮다. 어차피 삶의 방식은 예술과 달리 유일성에 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여야만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게 결코 아니다. 그러니 이 책 저 책 펼쳐보다 흠뻑 빠져도 좋을 글을 만나길 바란다. 좋은 문장과 스타일이 묻어나는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교본이고, 표본이 되는 과정이며, 내가 배우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배우는 여정이다. 이런 변화의 여정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잘 모르겠거든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충고를 가슴에 새겨보자. “우리는 자신이 흉내 내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런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흉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대인의 삶이 그렇듯 글쓰기 역시 파편적으로 이루어진다. 생각이 어지러운 채로, 주변이 어수선한 그대로 종이 앞에 혹은 키보드 앞에 앉게 될 것이다. 생활인은 더 나은 설거지 기술이 나오기 전에 그릇을 씻어내고, 더 생산적인 화장실 청소 기술이 없어도 청소를 부지런히 해낸다. 할수록 나아지는 걸 바랄 뿐이다. 글을 쓰는 생활인은 더 준비될 걸 기다리지 말고, 글 쓰는 행위를 생활로 삼으며 글을 쓰는 사람 그 자체가 되면 그만이다. 말하자면 지금 쓰는 그 글을 계속이어서 쓰라는 것. 분명 글쓰기는 우리의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계속 쓰다 보면 우리의 생활양식도 의식처럼 그렇게 변화할 것이다. 그것이 자판 위에 내려놓은 손가락에 깃든 ‘평범한 우리’의 바람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박준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