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팔아드립니다
유명 옥션 하우스에서 미술 작품만 판다고? 천만의 말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준다. 당신의 옷장 속 낡은 가방까지도!
존 레논의 단편소설 친필 원고

2011년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유한 주얼리 컬렉션 옥션에 등장한 불가리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네크리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한 도로시의 루비 구두
소더비와 크리스티, 세계 옥션 시장의 양대 산맥인 두 회사는 주로 현대미술 관련 기사에 등장한다. 제프 쿤스, 바스키아, 앤디 워홀 등 대가의 작품이 얼마나 고가에 낙찰됐는지는 늘 화제가 되고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미술에 별 관심이 없거나 직접 작품을 구입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옥션 하우스에서 오직 예술품만 거래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옥션 하우스에서 거래하는 아이템은 상상 이상으로 폭넓고 다양하다. 미국 HBO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극장판 1편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보자. 극 중 사만다가 유명 패션모델이 급히 내놓은 소장품 컬렉션 옥션에서 플라워 다이아몬드 반지를 낙찰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에서도 이처럼 유명 셀레브러티의 유품이나 소장품 컬렉션으로 비정규 옥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2011년 전설적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난 후,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그녀가 생전에 소유한 주얼리 269점을 특별 옥션을 통해 공개했다. 당시 낙찰가 총액은 1억1600만 달러, 한화로 1340억 원에 달했다. 3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880만 달러,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로 불리는 진주 목걸이는 1180만 달러에 팔렸다.
옥션에는 정규 옥션과 비정규 옥션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미술 작품은 시대와 사조, 나라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에 따라 정규 옥션으로 진행한다. 정규 옥션에도 부동산, 와인, 음반, 영화 포스터, 하이엔드 슈퍼카, 우표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비정규 옥션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셀레브러티의 소장품 컬렉션, 자선 경매 등 특정 이슈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기획으로 열린다. 즉 소장가치가 있고 원하는 이가 있는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옥션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옥션의 특이한 거래 아이템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고, 집 안에 무언가 팔 것이 없는지 샅샅이 뒤져보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뮤지션 믹 재거의 머리카락은 자선 경매에서 약 686만 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전한다. 팔리기 위해선 유명세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미술품 컬렉션 세일에는 몬드리안, 마티스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미술품 컬렉션 세일에는 몬드리안, 마티스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미술품 컬렉션 세일에는 몬드리안, 마티스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유서 깊은 테디베어 제조사 슈타이프에서 만든 희귀한 테디베어 컬렉션
세상을 떠나도 소장품은 남는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 패션계의 슈퍼스타이자 레전드로 군림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생전에 만든 기념비적 의상과 평생에 걸쳐 모은 미술품 컬렉션이 크리스티 파리 옥션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1958년 악어가죽으로 만든 디올 드레스, 1970년대에 선보인 리브 고쉬(Rive Gauche) 브랜드의 니트 스웨터 등도 시선을 끌었지만 옥션의 절정은 그의 미술품 컬렉션이었다.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는 르네상스 시대의 보석과 19세기 샹들리에,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 등 수백 점에 달하는 예술품을 내놓았고 낙찰가 총액이 3억7350만 유로, 한화로 7290억 원에 달해 단일 경매 사상 최고 금액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6월 4일 뉴욕 소더비에서는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의 작품이 ‘You Might as Well Arsk’라는 제목으로 옥션에 등장했다. 미술품이나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그가 남긴 드로잉과 단편소설 원고 등 아티스트 존 레넌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아이템이라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레넌이 집필한 단편소설의 친필 원고는 20만9000달러, 안경 쓴 기타 연주자를 그린 드로잉은 10만9375달러에 낙찰되는 등 2시간 만에 모든 출품작이 총 290만 달러, 한화로 29억7000만 원 선에 거래되었다.
특급 테디베어
게임하고 경품으로 받는 곰돌이 인형이 아니라, 애지중지 관리해야 하는 특급 테디베어가 있다. 2000년 크리스티가 주최하고 모나코 왕실이 후원한 모나코 자선 옥션에서 약 2억3000만 원에 낙찰된 루이 비통 테디베어도 그중 하나다. 현재 제주 테디베어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신공항에는 높이 7m, 무게 15톤이 넘는 자이언트 테디베어가 전시돼 있다. 카타르 왕족이 크리스티 옥션에서 650만 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공항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같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테디베어도 있다. 2010년 크리스티 런던 옥션에서 낙찰가 총액이 175만 달러에 이른 1300여 점의 희귀한 테디베어 컬렉션 주인은 다름 아닌 고객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펀드매니저였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급 테디베어 제조사 슈타이프에서 1900년대 초반에 만든 것이 대부분으로 하나당 3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카타르 왕족이 구입해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만날 수 있는 자이언트 테디베어

런던 크리스티 옥션에 등장한 숀 코네리 주연의 007 제임스 본드 영화 포스터와 촬영 소품인 소형 공기총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가장 고가에 거래된 영화 포스터 기록을 세웠다.

런던 크리스티 옥션에 등장한 숀 코네리 주연의 007 제임스 본드 영화 포스터와 촬영 소품인 소형 공기총

뉴욕 크리스티 자선 경매에 등장한 에릭 클랩튼의 기타, Blackie
다시 보자, 무비 컬렉션
흑백 무성영화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화는 대중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예술이자 즐길 거리였다. 옥션 하우스에도 영화 관련 아이템 전담 부서가 있고, 자선 옥션이나 특별 기획을 통해 무비 컬렉션을 자주 선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입은 의상, 소품, 포스터, 필름 등 품목도 다양하다. 올해 초 소더비 런던 옥션에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손꼽히는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 시나리오 초안이 등장했다. 오슨 웰스 감독이 직접 타자기로 친 것으로 알려져 영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과거의 영화 소품을 우연히 구입한 개인이 이를 이베이 같은 온라인 경매에 내놓기도 한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의 루비 구두는 2000년 크리스티 옥션에서 66만6000달러에, 블루 드레스는 2011년 91만 달러에 거래됐다. 프리츠 랑 감독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4만3125달러에 팔렸다. 영화 포스터는 현대미술 작품만큼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진 않지만, 영화 팬들에게는 미술 작품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950만 달러에 낙찰된 1센트짜리 우표
어릴 때 취미를 물으면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독서에 이어 많이 나오는 것이 우표 수집이었다. 언제부터 유행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체국에서 특별 한정판 우표를 발매하면 그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대부분 마지막으로 우표를 사본 것이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이 소식을 들으면 집 서랍에 잠자고 있는 우표 수집 책을 꺼내볼지도 모르겠다. 지난 6월 18일 소더비 뉴욕 옥션에 액면가 1센트짜리 영국령 기아나 1센트 마젠타 우표(British Guiana 1c Magenta)가 등장했다. 옥션이 열리기 전부터 예상 낙찰가로 10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약 102억~204억 원)까지 점치며 화제를 모은 이 우표는 1873년 스코틀랜드의 열두 살 소년이 찾아낸 것으로 1856년 영국령 기아나에서 발행한 것. 1856년에 발행한 우표 중 단 한 장만 남아 있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우표다. 입찰 시작 즉시 역대 최고 가격인 950만 달러, 약 97억 원에 낙찰됐다. 1센트의 마젠타를 손에 쥔 행운의 주인공은 전화로 입찰한 익명의 수집가로 알려졌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속에서 입었던 드레스

펜디와 소더비 런던의 특별 자선 경매에 선보인 뮤지션 아델이 디자인한 피카부 백

소더비 뉴욕의 슈퍼 카 옥션에 출품한 페라리 데이토나와 탈보-라고의 카브리올레

소더비 뉴욕의 슈퍼 카 옥션에 출품한 페라리 데이토나와 탈보-라고의 카브리올레
펜디와 소더비의 착한 옥션
지난 5월, 펜디는 새로운 런던 부티크 오픈을 기념하기 위해 소더비와 함께 재미있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와 나오미 해리스, 뮤지션 아델, 건축가 자하 하디드,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 모델 카라 델레바인 등 당대의 여성 아이콘 10명을 선정해 이들과 함께 역시나 펜디의 아이콘과 같은 피카부 백 한정판을 만든 것. 이들은 로마의 펜디 아틀리에와 긴밀히 협력해 자신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근사한 피카부 백을 완성했다. 귀네스 팰트로는 블랙 & 화이트의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고, 자하 하디드는 두꺼운 종이를 말아 쥔 듯 겹겹이 쌓인 텍스처가 돋보이는 블랙 피카부 백을 완성했다. 아델은 자신의 그윽한 눈매를 닮은 속눈썹 디테일을 더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이 10개의 피카부 백은 일정 기간 펜디 매장에서 전시한 후 5월 1일부터 온라인 전용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났으며, 자선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거리에는 없는 슈퍼카
작년 11월 소더비 뉴욕에서 ‘Art of the Automobile’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옥션은 수수료를 포함한 낙찰가 총액이 약 648억7000만 원이라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날 옥션에 등장한 슈퍼카 중에는 1968년 생산한 페라리의 전설적 모델, 데이토나도 있었다. 페라리에서 단 32대만 제작해 수십 년 만에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디자인으로 카 마니아들의 심장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레드 컬러 데이토나는 1430만 달러, 한화로 147억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아르데코풍 비주얼이 근사한 탈보-라고(Talbot-Lago)의 컨버터블 자동차, T150-C SS 티드롭 카브리올레(Teadrop Cabriolet)는 1938년 최고의 디자이너 피고니안 필라시의 작품으로 주문 맞춤 제작으로 탄생했다. 그 당시 디자인 트렌드를 잘 반영한 덕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715만 달러, 한화로 약 73억8500만 원에 최종 낙찰됐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크리스티, 소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