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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예술이다

ARTNOW

예술은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아티스트 뱅자맹 보티에. 파리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에 앞서 그의 흥미로운 작품 세계와 독특한 집을 둘러봤다

프랑스 신사실주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뱅자맹 보티에

파리 7구에 위치한 마욜 미술관(Musee Maillol)은 2014년부터 진행한 내부 공사를 마치고 올가을 새로운 모습을 공개한다. 그 첫 번째 전시는 9월 14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개최하는, 프랑스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뱅자맹 보티에(Benjamin Vautier)의 대규모 개인전. 뜻깊은 전시인 만큼 규모나 내용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Sculpture Objet Suspendu et Boite Mystere, 콜라주, 105×60×50cm, 1958/1962

벤(Ben)이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뱅자맹 보티에는 1960년대에 ‘글쓰기(Ecriture)’ 작업을 중심으로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 운동인 누보레알리즘의 주요 멤버이기도 한 그는 ‘예술은 새로워야 하고 신선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는 과거 니스에서 잡화상에 가까운 서점을 운영하던 중, 1975년 서점 안에 ‘벤은 모든 것을 의심한다’라는 이름의 한 평짜리 작은 갤러리를 열고 외벽에 자신의 작품을 걸었다. 이후 그곳은 차츰 작가들의 아지트가 됐고 세자르, 아르망, 마르시알 레스 등이 활동했다. 벤의 가게가 프랑스 현대미술계에서 신선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셈이다. 벤은 유럽 작가 중 가장 먼저 예술을 거리로 끌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1959년부터 그는 ‘거리의 액션’이라는 퍼포먼스 시리즈를 통해 예술이 매 순간 존재하고, 높은 권위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즉흥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90년대부터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으로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 레터에 현 미술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특정한 오브제,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일기처럼 기록한다. 모든 것을, 혹은 아무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그의 뉴스레터는 젊은 시절에 해온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니스에 자리한 벤의 보금자리. 집의 모든 것이 작품이다.

태양 아래 한 예술가의 보금자리
이제 팔순을 넘긴 벤은 여전히 그가 창작 활동을 시작한 남프랑스 니스에서 그의 아내 아니(Annie)와 함께 살고 있다. 니스 어디에서든 택시를 타고 “벤의 집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려움 없이 생팡크라스(Saint-Pancrace) 지역에 위치한 집에 다다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벤의 집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오브제가 예술이며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지붕 바로 아래 건 커다란 간판에는 ‘아티스트의 집(La Maioun de l’Artista)’이라고 쓰여 있고, 건물 벽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용기’,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 등의 글귀로 완성한 벤의 텍스트 작품이 보인다. 그뿐 아니다. 깨진 타일 조각, 접시, 타이어, 마네킹 다리, 아기 인형, 녹슨 나팔, 버려진 세면대 등이 건물 외벽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며 정원으로 시선을 돌리자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한 자세로 서 있는 메탈 소재의 하얀 말이 한눈에 들어온다. 키치한 플라스틱 동상도 여기저기 놓여 있고, 낡은 카라반 위에는 ‘예술은 도처에 있다(L’Art est Partout)’라는 문구가 보인다. 집 안 풍경은 마치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를 보는 듯 흥미롭다. 물을 끓이는 포트도, 그의 아내가 차를 내오는 쟁반도 모두 작품인 것은 마찬가지. 그의 집에서 유일하게 혼돈 속 질서를 유지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지하 수장고다. 그곳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작품의 일련번호는 5000번대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 작품 중에는 개성 있는 자필 텍스트와 함께 그가 몇 년 또는 몇십 년에 걸쳐 발견한 오브제가 콜라주처럼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또 한쪽 벽면은 벤이 출간한 책과 전시 도록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쯤 되면 발에 차이는 돌멩이, 버려진 폐품 하나하나에도 예술성을 부여하는 그의 강박적 예술혼이 결코 억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벤은 이곳에서 삶과 예술은 곧 하나라는 철학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이번 마욜 미술관 전시에서는 벤이 지난 50년간 쉬지 않고 창조해온 작품 중 20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의 기획자 안드레아스 파르다이(Andreas Pardey)는 “벤이 간혹 난해하고 복잡한 설치미술을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는 늘 본질적이고 중요한 개념이 일관되게 존재해왔다. 그것은 해답을 갈구하거나 또는 그 자체에 해답이 들어 있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벤의 예술 세계를 설명했다. 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예술이다”라고. 한계를 두지 않는 그의 작품 세계와 끝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그의 삶 또한 이 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올가을 마욜 미술관 전시에서 그는 또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Avis Trou, 나무에 페인팅, 콜라주, 56×50cm, 1958

‘중요한 것은 바로 용기다’라는 문구를 쓴 그림,1987년에 제작했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 최선희(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