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이 원하는 것
모든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답을 떠올렸다.

파르마 베르디 페스티벌의 안방인 레지오 극장 내부.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의 어른 버전이다. 흥미로운 부분을 꼽자면, 램프의 요정 지니(이드리스 엘바 분)는 자신을 불러낸 문학 교수 앨리시아(틸다 스윈턴 분)에게 자신이 갇히게 된 연유를 말해준다. 그것은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령(精靈)인 지니는 원래 시바 여왕과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여왕의 미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솔로몬이 그녀가 낸 수수께끼를 모두 맞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법을 쓰던 솔로몬은 지니를 램프에 가둬 바다 밑으로 던져버렸다. 사정을 들은 앨리시아는 나도 의아하던 것을 지니에게 물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간 게 아니라 반대였다고? 구약성서에 따라 헨델이 작곡까지 했는데?” 지니는 알려진 바와 다르다고 했다.
2024년 가을, 나는 베르디 페스티벌의 막바지 무대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 파르마에 도착했다. 뜻밖에도 그치지 않는 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기(雨期) 전인데도 한국의 장마나 기습 폭우처럼 쏟아져 포(Po)강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호텔 방에서 저녁 오페라 공연 시간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쩌면 페스티벌보다 더 기대한 것을 보려고 교구 박물관으로 향했다. 건축가이자 조각가 베네데토 안텔라미의 조각 작품 ‘솔로몬과 시바 여왕’은 과연 사진보다 흥미로웠다.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눈에 띈 두 사람은 마치 <3000년의 기다림>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지니의 말처럼 솔로몬이 여왕에게 구애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여왕은 왕에게 “모든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왕은 그것을 맞혔지만, 영화에서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안텔라미의 정지된 조각도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일까? 박물관 건너편의 팔각형 세례당 내부도 안텔라미의 작품으로, 황도 12궁에 맞춰 달과 계절의 조각을 배열했다. 독일 장난감 플레이모빌의 모델일 법한 농부 조각상은 노동을 신학적으로 해설한다.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나 고행하는 죄인이 아닌, 잘 차려입고 단정한 머리를 한 귀한 신분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신약 이후 구원받아 창조에 일조하는 중이다. 농부들은 해가 지지 않는 평화의 날 제8일을 향해 매진한다. 빗속에 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오페라극장은 10분 거리다.
베르디 페스티벌의 말미는 <맥베스>가 장식했다. 많은 비에도 레지오 극장(Teatro Regio)은 베르디 팬으로 가득했다. ‘파르마에서는 모두 평론가’라는 세평처럼 주세페 베르디를 낳은 지방이라는 자부심이 로비에서부터 느껴졌다. 최초의 베르디 전집 영상물로 큰 관심을 모은 <투토 베르디!>도 파르마 무대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그만큼 수준 높은 성악과 연출이 페스티벌을 24회까지 끌고 온 원동력이다. <맥베스>는 서른네 살의 베르디가 셰익스피어 원작에 붙인 첫 오페라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는 길에서 마주친 마녀들에게 예언을 듣는다. 곧 영주가 되고 이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막연한 야욕에 부채질한다. 연회에서 왕을 살해하고 얻은 불안한 자리도 잠시, 마녀들의 두 번째 예언대로 맥베스는 복수의 칼날에 스러진다. 제왕절개로 태어나 버넘 숲을 움직여 쳐들어온 맥더프에게 말이다.
연출가 피에르 오디는 왕위를 둘러싼 암투 전반부를 극중극으로 꾸몄다. 무대는 레지오 극장을 복제했다. 마녀들은 객석에서 맥베스 부부의 커가는 야심과 그것을 실현하는 폭력을 관찰한다. 후반부에는 감옥 창살 같은 격자가 내려오는데, 이는 맥베스 부부의 복잡한 심리와 환영(幻影)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맥베스 부인이 피 묻은 손을 허공에 씻으며 죄책감을 토로하는 광란의 장면에서 격자 뒤 가수 대역은 지나간 살인과 탐욕의 장면을 재현한다. 베르디는 그릇된 운명과 씨름하는 셰익스피어 등장인물의 심리를 청중의 가슴에 스며들게 했고, 오디는 그것을 다시 추출해 무대 위에 펼쳐냈다. 로베르토 아바도의 빈틈없는 지휘와 베테랑 성악진의 열창, 파르마 합창단의 뒷받침 덕에 페스티벌은 기립박수와 함께 마무리됐다. 파르네세 거리에는 고맙게도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오페라 <맥베스>와 파르마를 연결한 사람은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다. 파르마 태생의 그는 공산주의에 열광했던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혁명 전야>에 담으며 오페라의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영화의 더 큰 그림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로부터 가져왔다. 소설 <파르마 수도원>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파르마, 나아가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면밀한 보고서다. 파르마 태생의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는 출생부터 복잡했다. 델 동고 후작 부인이 나폴레옹 침략 무렵 프랑스 중위와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인 파브리스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일으킨 변화에 열광하지만, 이전 지배자였던 오스트리아에 은밀히 협력 중인 아버지 델 동고 후작은 그를 내쫓는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더불어 고모 지나 델 동고가 파브리스의 든든한 후견인이 된다. 또 파브리스는 블라네스 신부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맥베스가 마녀들의 예언에 휘둘린 것처럼, 파브리스 역시 신부의 점성술에 따라 워털루전투에 참전한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그는 전쟁다운 전쟁도 못 보고 돌아온다. 스탕달은 유럽의 무게중심을 결정한 역사적 현장에서 무의미한 존재에 불과했던 개인을 확대해 보여준다.
그러나 장기판 졸 신세인 파브리스의 인생 파고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궁정에 난무한 권모술수의 희생양이 되어 볼로냐로 추방된다. 파브리스는 한 백작의 연인이던 오페라 가수 파우스타와 사랑에 빠져 백작과 결투를 벌인 끝에 파르마로 피신했다가 탑에 갇힌다. 간수의 딸 클렐리아와 사랑에 빠진 파브리스는 클렐리아의 아버지에게 아편을 먹이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아편 양이 너무 많아 간수는 사경을 헤맨다. 클렐리아는 아버지를 살려주면 사랑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성모에게 기도한다. 기도대로 아버지가 살아나고 클렐리아가 떠나면서 파브리스는 다시 우울감에 빠진다. 그사이 고모 지나가 보낸 암살자가 파르마 공작을 독살하고, 지나의 내연남 모스카 백작이 실권자가 된다. 파르마로 돌아온 파브리스는 귀족과 결혼한 클렐리아와 밀회 끝에 아이까지 얻는다. 그러나 아이가 병으로 죽자 클렐리아도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 숨을 거둔다. 결국 파브리스는 세상을 등지고 파르마 수도원에 들어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슬픔에 빠진 지나도 뒤를 따른다. 나폴레옹 전쟁을 수습한 빈 회의가 주도하는 유럽에는 정치와 탐욕만이 남는다.

파르마 세례당 내부를 장식한 안텔라미의 ‘달과 계절의 조각’.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스코틀랜드 변방을 무대로 했다면, 스탕달의 세계는 이탈리아 거의 전역과 나폴레옹의 격전지까지 아우른다. 대적할 운명이 훨씬 거대해졌다. 스탕달은 등장인물을 안텔라미의 플레이모빌처럼 정교하게 움직여 치열한 삶을 살게 했다. 실험은 실패했을까? 소설 제목이자 파브리스가 물러난 ‘파르마 수도원’은 가상의 장소다. 수도원은 좁은 독방에 금욕적인 식사와 최소한의 소통만 허용되는, 사실상 감옥이다. 파브리스는 클렐리아를 사랑할수록 그녀와 멀어졌다. 지나와 파브리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파르마의 <맥베스> 무대도 격리된 극장인 동시에 초월적인 환영의 공간이다. <3000년의 기다림>에서 앨리시아는 학자로서 소원 성취의 미신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지니의 과거를 들은 그녀는 그의 순수한 마음에 사랑을 느끼고, 빌기 거부하던 소원으로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말한다. 그녀 덕에 지니는 저주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그가 전자파가 지배하는 현대에서 소멸한다는 것. 결국 그는 안전한 과거로 피했다가 가끔 찾아와 앨리시아와 짧은 사랑을 나눈다. <파르마 수도원>처럼 두 사람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구속과 격리를 택한다. 서로에게, 그리고 현실로부터!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