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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담은 예술

ARTNOW

노르웨이 북부 사미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마렛 안네 사라는 순록 목축과 토착 지식을 바탕으로 생태와 존재 방식을 지키는 작업을 펼쳐왔다. 법과 제도가 외면한 목소리를 예술로 확장하며 직관과 상호성에 뿌리를 둔 사미 철학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다. 올해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된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는 10월 14일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서 만날 수 있다.

마렛 안네 사라 노르웨이 북부 카우토케이노의 순록 목축 가정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그곳에서 생활하며 작업하는 예술가이자 작가다. 사미 아티스트 네트워크인 다이다달루 아티스트 컬렉티브(Dáiddadállu Artist Collectiv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녀의 작업은 사미와 원주민 공동체, 특히 사미 순록 목축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2017년에는 프로젝트 ‘Pile o’Sápmi’를 카셀 도쿠멘타 14에서 선보였으며, 이후 그 작품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었다. 2022년에는 2명의 사미 예술가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노르딕관을 사미관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Photo by Peter Jülich.

노르웨이 북부, 카우토케이노에서 나고 자라셨죠. 많은 이들이 작가님을 ‘사미(Sámi) 아티스트’라고 소개하지만, 한국 독자에게는 사미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작가님이 자란 그곳의 환경과 문화는 어떤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구오브다게아이드누(Guovdageaidnu)의 순록을 기르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순록 목축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사미 문화의 핵심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모든 생명체의 근본적 권리를 존중하고, 상호 의존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관을 반영하죠. 이 삶의 방식은 대지와 맺는 깊은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미 문화에는 순록 목축뿐 아니라 해안 사미의 어업 문화, 소규모 농업과 수렵 문화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친 국가 주도의 동화 정책과 현대화 과정에서 사미들은 영적 신념, 언어, 토지와 권리에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순록 목축을 이어가는 사미는 이제 ‘소수자 중 소수자’가 되었죠. 사미인의 전통 영토 ‘사프미(Sápmi)’는 노르웨이 북부에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까지 이어집니다. 북유럽 국가의 사프미 식민화는 수세기에 걸쳐 진행됐고, 토지 수탈과 동화 정책을 통해 사미인의 문화, 정신, 정체성을 억압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위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라는 그늘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광산 개발과 재생에너지 사업이 우리 땅을 잠식하며 세대를 이어온 문화와 삶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사미 문화에서 순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보이는데, 작가님의 작품에도 순록은 자주 등장하며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사미 문화, 그리고 작가님 개인에게 순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순록 유목에는 삶에 대한 깊은 지식과 존중 그리고 책임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 땅은 우리가 균형을 지키는 한 모든 필요를 충족해줍니다. 그 철학의 핵심은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취한 것은 어떤 것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쓰임이 있죠. 사미인은 오래전부터 순록이 전하는 풍부한 지식과 선물을 이해하며, 이를 서로를 살리는 관계로 여겨왔습니다. 우리는 순록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포식자로부터 지키고, 순록은 자신의 몸과 생명을 우리에게 내줍니다. 이렇듯 상호성, 존중, 보살핌에 뿌리를 둔 관계입니다. 우리의 전통 수공예 ‘두오디(duodji)’는 장인정신, 사미의 가치, 영성과 환경 지식을 결합한 것입니다. 저도 작업에 식용이나 의복으로 쓰이지 않는 순록의 뼈나 가죽을 자주 활용합니다. 이는 동물의 희생을 기리는 예법이자, 순록의 몸이 죽음 이후에도 영적 · 창조적 힘을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순록은 사미의 인식론을 상징하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서로,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담고 있죠.
2016년 핀마르크 지방법원 앞에 설치한 작품 ‘Pile o’Sápmi’는 강한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작품이 어떤 배경에서 출발했는지 자세히 들려주세요. 나라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노르웨이 북부에 순록이 지나치게 많아 과도한 방목과 토지 훼손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이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당국은 강제 도축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에 따라 제 오빠 요브셋 안테 사라는 순록을 일흔다섯 마리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수치는 사실상 파산을 의미했죠. 이는 오빠의 생계뿐 아니라 우리 가족이 세습해온 문화와 권리, 전통적 영토에 대한 접근 자체를 빼앗는 행위였습니다. 오빠는 이 정책에 맞서 싸우기로 했습니다. 2016년 2월 1일 아침, 오빠가 법정에 도착했을 때 법원 앞에는 순록 머리 200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전날 밤, 오빠와 판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제가 카우토케이노 도축장에서 가져다 설치한 것이죠. 작품 제목은 캐나다 레지나의 크리어(Plains Cree) 지명 ‘Oskana ka-asastêki’를 영어로 번역한 ‘Pile o’Bones(뼈가 쌓인 곳)’에서 착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19세기 유럽 정착민이 북미 원주민을 굶겨 죽이기 위해 들소 5000만 마리를 무차별적으로 도살한 역사가 있어요. 우리는 인권과 문화 실천의 권리를 근거로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정부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7년 대법원에 상고해 이전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충격적일 만큼 권위적이었습니다. 정부가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알고 있으니 그들이 옳다는 논리였죠. ‘Pile o’Sápmi’는 오늘날 사미인이 직면한 문제인 우리의 권리, 땅, 지식 체계와 존재 방식,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유엔 인권위원회는 오빠의 손을 들어주며 개체 수 감축 명령이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같은 식민 국가가 국제기구의 윤리적 · 도덕적 가이드라인조차 존중하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도자로 제작한 순록 모양의 ‘Pile Power’ 주얼리. Photo by Talya Kantro.

Wear the downs as your ups, cause this dance will twist you inside out, 2021. Photo by Karl Alfred Larsen.

베니스 비엔날레 사미관에서 선보인 마렛 안네 사라의 작품 ‘Gutted-Gávogalši’, 2022. Photo by Michael Miller.

순록 뼈를 사용해 소용돌이 형태로 만든 작품. Photo by Marét Ánne Sara.

도자로 제작한 ‘Pile Power’ 주얼리. Photo by Talya Kantro.

북유럽 식민주의가 사미 공동체의 생활 방식에 미친 영향을 지속적으로 조명하고, 사미인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예술로 되살리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 작업은 사미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문화를 실천하고 표현하며 기릴 수 있는 틀과 언어를 제공해주죠. 오랫동안 저는 토지의 점유와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법과 정치 체계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역량도, 다른 논리를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자본주의 논리에 깊이 얽혀 있으며, 생태적 균형과 원주민의 권리보다 이윤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을 택했습니다. 예술은 법정, 공식 보고서, 정치적 협상 같은 형식을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정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명, 그리고 미래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세계관의 전환, 즉 철학적 재사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예술이 그 변화를 지지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노르딕관(The Nordic Pavilion)이 사미관(The Sámi Pavilion)으로 전환되는, 사미 예술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당시 어떤 감정과 의지를 품고 있었나요?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Pile o’Sápmi’는 가족과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서 비롯한 작업이죠. 그래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노르딕관이 사미관으로 바뀌었을 때, 처음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논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시스템과 맞서 싸우느라 지치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큐레이터 카티아 가르시아-안톤(Katya García-Antón)이 제 작업을 통해 예술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모색해보자고 설득했습니다. 저에게 그 ‘다음 단계’는 치유와 퓨처리즘이었습니다. 이 일이 사미적 인식 방식인 비언어적이고 직관적이며, 신체적이고 에너지적이며, 늘 풍경, 동물, 사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대화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향한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한 작품 중 ‘Gutted-Gávogálši’는 순록의 위장을 활용해 ‘gamus dovdat’라는 사미 철학의 핵심 개념을 형상화한 결과물입니다. 이 철학을 작업에 담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gamus dovdat는 직역하면 ‘본능으로 안다’, 혹은 ‘직감’이라는 뜻입니다. 사미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죠. ‘Gutted-Gávogálši’는 말린 순록의 위장을 모아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에서 위장은 인간과 순록 그리고 다른 생명을 연결하는 감정, 하나의 지성이 깃든 공간입니다. 이곳에 담긴 지식은 책이나 제도권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과 다른 존재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경험과 직관을 통해 전해지는 지식이죠. 이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지식 체계와 마주하도록 제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Based on a True Story〉전에서 소개한 작품 ‘Gielstuvvon’, 2018.

스위스 제네바 민족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Environmental Injustice – Indigenous People’s Alternatives〉에서 작품 앞에 선 작가. Photo by Johnathan Watts, MEG.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사미관 전경. Photo by Michael Miller.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 걸린 순록 뼈로 만든 작품. Photo by Annar Bjørgli.

Wear the downs as your ups, cause this dance will twist you inside out, 2021. Photo by Karl Alfred Larsen.

2016년 핀마르크 지방법원 앞에 설치된 작품 ‘Pile o´Sápmi’. Photo by Irig Egilsdatter.

같은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Du-ššan-ahttanu-ššan’은 스트레스를 받은 순록의 냄새를 구현했어요. 후각이라는 감각을 작품에 끌어온 배경, 그리고 그 감각이 관람객에게 전하길 바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그 작업은 어린 시절의 강렬한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마을에서 순록이 꽃을 뜯어 먹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경찰서에 불려간 적이 있어요. 저도 그때 함께 갔는데, 제복을 입은 고위 경찰이 앉아 있는 식민 권력의 공간에서 아버지는 그 순간 몸가짐, 목소리, 시선이 모두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아버지의 ‘냄새’가 변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순록도 스트레스나 고통을 받을 때, 예컨대 도축을 위해 울타리나 트레일러에 몰릴 때 비슷한 냄새를 풍깁니다. 이 냄새는 다른 동물에게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가 되죠. 인간도 같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는 그 감각에 거의 귀 기울이지 않기에 이러한 신호를 받아들이는 일이 드뭅니다. 저는 우리가, 특히 지금처럼 위기의 시대에 자연과 다른 생명에게 다시 감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다른 생명은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그것을 다시 물어야 합니다.
올해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셨죠. 오는 10월, 터빈 홀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요? 이번에도 사미 공동체와 전 세계가 직면한 생태적 문제를 다룰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토착 지식과 저항의 가치가 놓일 것입니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
사진 테이트 모던, O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