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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핀란드 아트

LIFESTYLE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력적인 전시를 둘러보거나,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핀란드로 아트 투어를 떠났다. 북유럽 트렌드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동경이 이곳에서 명료해졌다.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아테네움 국립미술관.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면 늘 설렘과 기대가 앞선다. 지난해 여름 헬싱키에서 짧은 여름휴가를 보낸 뒤 핀란드에 관심이 생길 즈음 아트 투어를 떠날 기회가 생겼다. 아직은 덜 알려진 핀란드 작가의 아틀리에, 헬싱키를 비롯한 핀란드 남부 일곱 도시의 뮤지엄과 갤러리를 돌아보는 여정. 자연과 교감하며 발전한 핀란드 아트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마음속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핀란드 아트의 시작, 헬싱키 아테네움
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가 < Stories of Finnish Art >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아테네움 국립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핀란드 아트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책이다. 주말에 틈틈이 읽다 보니 떠나기 직전에 완독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1917년 독립할 때까지 오랜 시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에는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핀란드인(Finnish, Finn)만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세기 중반 화가들은 핀란드의 자연, 사람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그리면서 민족의식을 드높였다. 특히 국경 근처 카렐리아 지역의 자연, 민속예술, 고풍스러운 삶의 방식은 화가들에게 핀란드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과 교류하는 작가가 늘면서 당시 유행하던 화법에 눈뜨게 되었다. 해외 문화를 접할수록 고국 핀란드의 문화에 대한 고민과 생각은 깊어졌고 러시아로부터 독립, 1.2차 세계대전과 내전을 겪으며 나라의 정체성을 찾는 데 예술이 큰 역할을 했다. 이 무렵 핀란드의 예술, 디자인, 건축에 모더니즘은 하나의 큰 주류로 부상했고,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나타났다.
헬싱키 중앙역 앞에 당당히 자리한 아테네움 국립미술관(Ateneumin Taidemuseo)은 19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작가의 작품을 연대별로 전시해 핀란드의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스 여신 아테네를 의미하는 이름과 클래식하고 장중한 외관과 중앙의 계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핀란드 미술을 해외에 가장 먼저 알린 알베르트 에델펠트(Albert Edelfelt), 핀란드 민족주의 서사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악셀리 갈렌칼렐라(Akseli Gallen-Kallela), 헬레네 쉐프벡(Helene Schjerfbeck), 엘렌 테슬레프(Ellen Thesleff) 등 핀란드 작가의 작품은 물론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등 유럽 작가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아모스 렉스의 크레스트 모양 돔 천장.

현대의 풍경, 키아스마 현대미술관과 아모스 렉스
티타늄과 구리, 함석으로 만든 외관이 독특한 키아스마 현대미술관(Nykytaiteen Museo Kiasma)은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의 공모전 출품작 ‘키아스마(Chiasma, 시신경 염색체 교차)’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립 때부터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올해 전시 주제는 베풀기, 나누기의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선량함(goodness)’이다. 4층에서 진행중이던 <무대는 너의 것이다(The Stage is Yours)>전처럼 관람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전시가 많았다. 또 다른 전시작 ‘일기예보(Weather Report)’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노르딕 파빌리온이 선보인 작품으로, 오늘날 가장 큰 이슈인 인간과 다른 생물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지난해 9월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맞은편 라시팔라치 건물이 핀란드 최대 사립 미술관 아모스 렉스(Amos Rex)로 재탄생했다. 핀란드 기능주의의 상징인 오랜건물의 단층은 그대로 살리되 지하층에 굴뚝 모양 돔형 창문을 만들어 빛이 들어오고 지상이 내다보이는 독특한 구조물 덕분에 개관하자마자 헬싱키의 명소로 떠올랐다. 디자인을 맡은 JKMM 아키텍츠는 사람들이 편하게 모이는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니 의도를 제대로 살린 듯했다.

1 시네브뤼코프 가족이 살던 1910년대 생활상을 재현한 하우스 뮤지엄.
2, 3 악셀리 갈렌칼렐라가 뭉크와 함께 참여한 베를린 전시 포스터와 악셀리 갈렌칼렐라 박물관.

4 로비자의 봉가갤러리에 전시 중인 자신의 태피스트리 작품 앞에 선 리타 넬리마르카.
5 비욘 벡스트룀의 브론즈 작품.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트 컬렉터 시네브뤼코프 &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
헬싱키 남쪽 블레바디 거리에 자리한 시네브뤼코프 미술관(Sinebrychoffin Taisemuseo)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브루어리와 식품 회사를 일군 사업가의 집이자 회사 건물이었다. 미술관 옆에 자리한 시네브뤼코프 공원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곳을 마련한 폴 & 파니 시네브뤼코프 부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핀란드 국립극장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수십 년간 900점에 이르는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1921년, 부부는 모든 컬렉션을 헬싱키시에 기증했고 시민들은 북유럽 최대의 프라이빗 컬렉션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층 전시실에서는 권력과 고귀함을 상징하는 골드와 블루 컬러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 열렸는데, 많은 작품이 아테네움 소장품이었다. 시네브뤼코프 가족이 살던 2층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천장과 벽지, 가구 등 1910년대 그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당시 부르주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헬싱키 중심부에서 트램을 타고 핀란드 남부 에스포에 위치한 갈렌칼렐라 박물관(Gallen-Kallelan Museo)으로 향했다. 핀란드 국민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의 집이자 스튜디오였던 이곳은 호숫가 전망이 뛰어나 소풍 나온 사람이 많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핀란드의 자연, 정체성에 대한 관심에 사로잡혔고,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에 저항해 핀란드의 오랜 민족 신화 칼레발라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핀란드인의 민족의식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유럽에서 활동한 그가 1895년 베를린에서 에드바르 뭉크와 함께한 전시 포스터도 볼 수 있었다.
에스포에 온 김에 현존하는 핀란드 최고 조각가이자 주얼리 디자이너 비욘 벡스트룀(Bjo..rn Weckstro..m)을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조금 더 달렸다. 1980년대부터 몰입해온 벡스트룀의 브론즈 조각은 현대 문명과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레아 공주가 착용한 실버 목걸이도 그의 작품이다.

6 투르쿠 미술관은 언덕 위 공원에 자리한다.
7 에델펠트의 작품이 걸린 매너 하우스 하이코의 룸.
8 투슬라 예술가 커뮤니티의 멤버인 페카 할로넨의 작품.

마을마다 숨은 재미, 로비자와 포르보 그리고 투슬라
헬싱키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로비자는 러시아 국경에서 가까워 포르보와 함께 예부터 러시아 황제와 귀족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즐겨 찾던 곳이다. 골목길의 작은 가게마다 핸디크래프트 소품을 팔고 수백 년 된 카페도 있어 구석구석 산책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곳에서 111년 역사를 자랑하는 봉가 캐슬이자 갤러리에서 교수 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리타 넬리마르카(Riitta Nelimarkka)를 만났다. 시인 알렉시스 키비의 ‘일곱 형제들(Seven Brothers)’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그녀는 밝고 경쾌한 색채로 아이들과 동물을 표현하는 작가다. 페인팅은 물론 글라스, 비디오, 태피스트리까지 그녀의 작품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봉가 갤러리를 돌다 보니 마음이 작품처럼 해맑아지는 듯했다.
포르보에서는 이번 여행 중 가장 로맨틱한 매너(Manor) 하우스, 호텔 하이코에서 여장을 풀었다. 중세 유럽, 영주들의 주거지를 일컫는 매너 하우스는 오늘날 정원을 갖춘 부티크 호텔로 쓰이고 있다. 14세기에 지은 핀란드 최초의 매너 하우스로, 포르보 화가 알베르트 에델펠트와 인연이 각별한 곳이다. 그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지만 어머니가 사는 고향 바닷가 언덕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2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름이면 포르보에 머물며 200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호텔 리셉션 데스크 옆 커다란 홀에도 에델펠트가 그린 포르보의 풍경이 걸려 있다.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다. 투슬라는 헬싱키에서 기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로, 20세기 초 이곳에 아티스트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비롯해 화가 에로 얘르네펠트, 페카 할로넨, 국민 시인 알렉시스 키비. 당시 유명한 예술가들은 헬싱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투슬라 예술가 커뮤니티(Tuusulanja..rven Taiteilijayhteiso..)는 이렇듯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문학, 음악, 그림을 통해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핀란드의 문화 정체성을 강화했다.
러시아에 저항해 핀란드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아 ‘핀란디아’를 만든 국민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와 그의 아내 아이노가 살던 집, 아이놀라(Ainola)는 연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투슬라의 명소다. 아르누보 건축가 라스 송크(Lars Sonck)가 설계한 집에서 소문난 살림꾼 아이노는 농사도 짓고 정원도 가꾸며 시벨리우스가 작곡에 몰두할 수 있도록 내조했다. 그녀는 계단아래 수납장과 사우나 건물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위대한 작곡가의 뒤에는 역시 현명하고 독립심 강한 아내가 있었던 것. 그녀는 나중에 아름다운 정원 한쪽에 남편과 함께 묻혔다.
아이놀라 근처 호숫가에 자리한 화가 에로 얘르네펠트와 페카 할로넨의 아틀리에 뮤지엄도 둘러보았다. 핀란드의 자연에 집중해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긴 에로 얘르네펠트와 페카 할로넨에게 이곳의 자연은 영원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호텔 크라피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모두 함께 사우나를 즐겼다. 스모크 사우나를 하다 호수에 들어가 수영하는 특별한 경험은 핀란드에서나 가능한 일! 호숫가를 거닐며 100년 전에 예술가들도 이 길을 따라 산책했다고 생각하니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9 피스카스 빌리지에서 올해부터 열리는 아트 앤 디자인 비엔날레 팩토리 전시장.
10 타피올라 지하철역에서 본, 킴 시몬슨(Kim Simonsson)의 작품 ‘Emma Leaves a Trace’.

피스카스 빌리지와 핀란드 작가의 세계
오렌지색 가위로 유명한 피스카스가 탄생한 곳이자 장인과 디자이너가 모여 사는 피스카스 빌리지에서 5월부터 9월 15일까지 ‘피스카스 빌리지 아트 앤 디자인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과 안니나 코이부(Anniina Koivu), 옌니 누르멘니에미(Jenni Nurmenniemi) 세 큐레이터가 엄선한 전 세계 100명의 아티스트 가운데에는 차(tea)를 주제로 참가한 우리나라 티 아티스트 김담비의 이름도 보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가에선 소셜 시팅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가 만든 다양한 벤치를 구경할 수 있고 옛날 타작 창고와 곡물 창고, 공장에서도 전시가 열렸다. 지도를 들고 여유롭게 산책하며 관람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번 피스카스 빌리지 아트 앤 디자인 비엔날레는 공존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아트와 디자인이 각각의 차이점을 살리면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며 공존할 수 있을까?
한때 러시아 황제와 시벨리우스가 휴가를 보낸 200년 된 스바르토 매너 하우스에서 하룻밤 더 머문 뒤 역사와 미각의 도시 투르쿠로 출발했다. 투르쿠는 헬싱키가 핀란드의 수도가 되기 전 수도 역할을 하던 곳으로,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건축물이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아우라강 주변에는 트렌디한 바와 레스토랑, 카페가 즐비한데 신선한 로컬 식자재로 만든 음식이 독특하면서 맛있다. 투르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투르쿠 미술관(Turun Taidemuseo)은 황금 시대 핀란드 화가의 작품과 현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박물관답게 화려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5일간 투슬라, 피스카스, 투르쿠를 돌아보고 다시 헬싱키로 돌아왔다. 아트 투어를 하면서 핀란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집과 스튜디오, 디자인 뮤지엄을 빼놓을 순 없는 일. 헬싱키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알바알토의 두 공간은 그 시대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모던하고 기능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특히 스튜디오와 집 모두 커다란 창을 통해 자연을 가까이 들여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헬싱키 시내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디자이너 듀오 아무 송(Aamu Song)과 요한 올린(Johan Olin)이 2007년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현지 공예가가 만든 예술품, 옷, 액세서리, 가구를 전시하고 있다. 점차 사라져가는 공예의 소중함과 장인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싶어 마련한 전시라고.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앞에 자리한 기프트 숍에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지난 7월 12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핀란드 웨이브>전이 시작됐다. 또한 내년 6월 헬싱키 발리사리섬에서 첫 비엔날레가 열린다. 2012년에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만큼 핀란드의 디자인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핀란드 아트는 아직 덜 알려졌다. 핀란드의 자연, 아트를 만끽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듯하다. 물론 필자도 다시 한번 가고 싶어 구글 캘린더에 입력해놓았다. 그 전에 우선 부산을 가볼 작정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윤경혜(눈이부시게 컨설팅 대표)   취재 협조 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 핀란드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