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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보는 미술

LIFESTYLE

현대인의 지친 영혼을 위로할 뿐 아니라, 건강까지 챙기는 요즘 미술관.

미술관 투어와 댄스 퍼포먼스를 결합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뮤지엄 워크아웃’.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이 아닌’ 이벤트는 다양하다. 영화부터 패션쇼, 파티, 요리, 여행, 반려견, 육아 등등. 하지만 요샌 ‘요가’가 인기다. 1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몇몇 미술관에서 소규모로 진행해오던 것이 지난 몇 년 대형 미술관으로 퍼지며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물론 이는 미술관에서도 반길 일이다. 미술관이 지루한 장소라는 인식을 깨고, 젊은 층을 끌어들여 ‘역동적 공간’으로 광고할 수 있어서다. 그리스 조각상과 루벤스의 누드화, 모네의 ‘수련’ 앞에서 즐기는 요가라니. 제아무리 미술관과 담 쌓은 이라도 어찌 끌리지 않겠는가?
현재 이 주제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미술관은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이다. 이들은 2011년부터 세계적 요가 강사 엘리나 브로워(Elena Brower)를 앞세워 워크숍 프로그램 ‘아트 오브 요가(Art of Yoga)’를 진행해왔다. 주말 아침 400여 명의 참가자가 19세기에 지은 웅장한 미술관 안에 모여 진행자의 몸짓에 맞춰 온몸으로 번뇌를 표현하는 것으로, 지난 몇 년간 점점 인기가 높아지자 최근엔 아예 유명 DJ를 초청해 요가 음악을 틀고, 소규모 클래식 밴드가 직접 라이브 연주까지 하는 모양새로 발전하고 있다. 요가는 아니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뮤지엄 워크 아웃(The Museum Workout)’도 눈길을 끈다. 미술관 투어와 댄스 퍼포먼스를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무용가 모니카 빌 반스(Monica Bill Barnes)가 10여 명의 참가자를 이끌고 45분 동안 미술관 내 36개의 전시장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니며 땀을 빼는 것이 큰 그림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들 사이에서 춤추며 운동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본래 지난봄 두 달 동안만 진행하려 했지만, 호응이 좋아 올 연말까지 연장됐을 정도다. 이와 함께 자존심 강한 유럽 곳곳의 미술관도 조심스레 요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은 ‘요가와 커피 모닝(Yoga and Coffee Morning)’ 강좌를 개설했고, 오스트리아 빈의 알베르티나 미술관(Albertina)도 최근 요가 클래스를 신설했다.

1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의 요가 강좌 ‘요가와 커피 모닝’.   2 ‘요가의 성지’로 통하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 ‘아트 오브 요가’.

이 같은 ‘뮤지엄 요가’는 올 한 해 국내 미술관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과천관은 관람객이 전문 트레이너에게 요가와 춤을 배우며 땀을 뺀 뒤, 학예연구사와 함께 작품을 관람하는 ‘에코판타지’를 진행했다. 경복궁과 청계산을 바라보며 춤추고, 미술관 주변을 달리는 ‘런클럽’ 그리고 야외 콘서트가 어우러진 행사. 신청 접수 2주 만에 매진된 이 프로그램은 한 달 동안 약 17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사립 미술관도 이 열기에 가담했다. 지난해에 스포츠 브랜드 리복과 함께 미술관내에서 플라잉 요가와 무용 등의 피트니스 프로그램 ‘밋업 챌린지 에디션’을 진행한 서울 한남동의 디뮤지엄이다. 이들은 올 초 <유스(Youth)> 전시와 연계해 필라테스 . 발레를 접목한 ‘탄츠플레이 워크숍’을 진행하며 인스타그램 피드를 거의 도배하다시피 했다. 디뮤지엄의 홍보 큐레이터 양진령은 “미술관 안에서 몸을 쓰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미술을 더 가까이 느끼고, 새로운 관람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며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한데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 하나. 새로운 관람객을 끌어들이기 위에 미술관과 스포츠를 결합한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왜 하필 수많은 스포츠 중 요가를 택한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요가는 본래 인도의 여러 철학 중 하나로 운동 이전에 ‘정신 수련법’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특정 자세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해 정신적으로 ‘초월적 자아’와 하나 되어 ‘무아지경’이나 ‘삼매경’, ‘황홀경’의 상태에 이르는 걸 목표로 한다. 정리하면, 요가는 ‘운동’이긴 하지만, ‘정신 건강’과 ‘명상(contemplation)’ 또한 중요시한다.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마주함에 있어, 요가만큼 심신을 신성하게 가꾸는 운동도 없다는 논리다.
하물며 요가는 미술관의 주요 고객인 여성에게도 인기가 높다. 고학력과 고소득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기도 한다. 심지어 요가는 ‘안전’하기까지 하다. 요가 매트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기 때문에 작품이 훼손되는 일은 거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굳이 ‘태권도’를 내세워 새로운 관람객을 찾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통홍보팀의 신나래 주무관은 “요가 프로그램은 보통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작품이 훼손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과 나이키가 함께 진행한 ‘에코판타지’.

덧붙여 요가의 ‘요’ 자도 모르는 에디터가 곰곰이 생각해본 바, 현재 국내외 여러 미술관이 운영하는 다양한 요가 프로그램은 그들의 짭짤한 수익 모델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색색의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부터 엎드린 개 자세까지 한두 시간 동안 몸을 쓰는 요가는 사실 일반 학원에서 배우더라도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운동이다. 한데 그것을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미술 작품이 펼쳐진 미술관 바닥에서 한다면?
지난 1월부터 시작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뮤지엄 워크아웃’은 1회 참가비가 75달러(약 8만6000원)나 된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 ‘아트 오브 요가’는 25달러(약 2만8500원)다. 또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일정 금액 이상의 기부금을 낸 사람만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의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30파운드(약 4만4000원)가 든다. 결국 미술관의 요가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 앞에서 심신을 가다듬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돈이 없다고 예술이 성립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돈을 비료 삼아 성장하는 것 또한 예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뮤지엄 요가는 참여자들의 격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시선 또한 받고 있다. 바로 “조용한 사색 장소라는 미술관의 역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요가의 ‘체화된 경험(embodied experience)’을 통해 미술관 관람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몸과 정신은 분리할 수 없으며, 몸을 통해 비로소 외부의 대상이 주어진다”고 한 프랑스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말을 떠올려보자.
뉴스보다 SNS 피드를 즐겨 보는 이 시대엔 ‘문화’의 정의도 조금씩 바뀌는 듯하다. 이제 사람들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성스러운 장소보다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활기찬 공간을 선호한다. 미술관이 관람객의 눈과 머리 뿐 아니라 근력과 순발력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예술 작품과 함께 뻥 뚫린 공간에서 깨달음을 얻고 싶은 사람, 뱃살을 빼는 코브라 자세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실현하고픈 사람은 지금 가까운 미술관으로 달려가보자. 거기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